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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과 분쟁, 갈등과 다툼, 정쟁과 당쟁의 갈퀴가 우리 삶의 발목을 잡고 있는 어수선한 21세기에 가장 맞춤한 단어는 <평화>가 아닐까요. 평화, 운만 띄워도 차분히 가라앉혀지는 단어... 제가 마을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평화를 여는 마을>이야기를...
이 마을은 지난해 8월 6일부터 12일까지 국내외 자원봉사자 1500여명의 땀으로 지어진 곳으로 현재 경남과 전남출신 무주택 서민 각각 16가구 등 모두 32가구가 입주해 살고 있습니다.
영·호남 접경지역인 전남 광양시 다압면 신원리에 들어선 <평화를 여는 마을>, 집 없는 설움으로 뿌리뽑힌 삶을 살아야 했던 주민들은 난생 처음 안주할 거처가 생겼다는 기쁨으로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여는 마을> 앞에는 섬진강이 흐르고 뒤에는 백운산 자락이 포근히 감싼, 영화 세트장처럼 예쁘게 꾸며진 마을. 마을 동구 밖을 잠깐 벗어나면 경남 하동과 전남 광양을 잇는 섬진교가 놓여져 있으며 이 고장의 유명한 향토상품은 섬진강 재첩과 광양 매실과 밤나무입니다.
마을 주민들은 동서갈등 극복의 진원지가 돼 주길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평화를 여는 마을>에는 아직 평화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막 씨를 뿌려놓고 열매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라를 망치는 '망국병(亡國病)'인 지역감정이 온 나라를 끔찍하게 갈라놓았는데 한두 달 섞여 산다고 극복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입주 초반 당시에는 언성과 삿대질도 오갔습니다. 쓰라린 세상살이와 상처를 갖고 살아온, 매우 다양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찰떡 궁합의 신혼처럼 달콤하게 살 수 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 사는 일은 '동서화해'라는 구호처럼 외쳐서 이뤄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애초의 갈등은 생계가 팍팍한 탓에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일 뿐, 경상도와 전라도라는 지역감정에 의한 갈등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주민들은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500시간∼700시간 가량의 집 짓는 노동을 했습니다. 입주자로 선정된 주민들은 500시간 이상의 노동과 주택원가를 15년 동안 무이자로 갚는다는 약속을 <한국사랑의집짓기운동연합회>와 체결한 뒤 마을에 입주했습니다. 일부에서 '공짜'로 집을 주는 것으로 잘못 알려졌으나 실제는 노동과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평화를 여는 마을>이 형성된 뒤 나타난 초기 현상은 밥상공동체였습니다. 특히 아이들은 함께 뒹굴고 놀다 함께 자는 이불공동체를 즐겼습니다. 한솥밥에 둘러앉아 살아온 애환과 살아갈 날의 생계방법을 함께 걱정하고 혹은, 닭싸움으로 푸닥거리를 했던 주민들은 3개월이 지난 현재 삶의 제 자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생계를 잇기 위해 노가다와 공공근로에 나서고,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기도 했습니다. 큰 병에 걸린 이웃을 위해 헌혈운동에 나서고, 이웃과 함께 김장을 담궈 김치를 나누었습니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마을 일이라면 열 일을 제쳐두고 앞장서던 '정씨 아저씨'가 난생 처음 누리는 내 집의 기쁨을 뒤로 한 채 일자리를 찾아 가족과 헤어져 객지로 떠난 것입니다.
이렇듯 마을 입주 3개월 여의 짧은 시간에도 크고 작은 일이 많았으며 안타까운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평화를 여는 마을>의 마을 총무직을 떠맡은 저 또한 난생 처음 얻은 거처의 평안을 누리며 이웃과 함께 사는 방법을 익히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웃은커녕 제 한 몸 추스리지도 못 한 부초 같은 삶을 살던 몸이 아이들 발가락에 사마귀 돋아난 이야기까지 들려오는 공동체 삶에 덥썩 섞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새로운 삶의 방식이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기까지 한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사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본성을 지녔습니까?
사람 사는데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특히 영·호남의 접경지역에 세워진 <평화를 여는 마을>에는 섬진강처럼 굽이치는 사람살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마을의 이야기를 오마이뉴스 가족들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귀 기울여주시고 격려해주시길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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