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아메리칸? 아니, 코리안 아메리칸

<미국 사는 이야기 35>

등록 2001.01.18 03:14수정 2001.01.1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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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작은 애마저 학교엘 가니 이쪽, 저쪽으로 다니기 바쁘다. 어딜 그렇게 다니느냐고? 지난 주말엔 초대받은 생일 파티에 애들을 데려다 주고 데려오고 선물과 카드, 준비물 챙기랴 정신이 없었어. 가연이랑 주연이랑 하필이면 같은 날 학급친구 생일 초대를 받는 바람에 시간 맞춰 이리 저리 뛰어 다니느라고, 아니 운전사 노릇 하느라고.


가연이가 킨더가든에 다닐 때부터 생일초대를 하고 또, 생일초대를 받고 하면서 여기 미국 애들 생일파티도 참 취향 따라 다르고 주제가(Theme Party) 있다는 걸 알았다.

본인이 모르게 깜짝 파티를 열어주는 '써프라이즈 파티'(Surprise Party), '수영파티'(Swimming Party), 작은 액자나 보석함, 양말 등 여러 가지 소품들을 만들고 아이들이 직접 피자를 만들어 먹게 하는 '만들기 파티'(Crafts Party), 푸들 스커트(poodle skirt)를 입고 50년대로 돌아가는 '50년대 댄스 파티' (50's Dance Party), 여자애들이 화장하고 잔뜩 멋 낼 기회를 만들어주는 '메이크업 파티'(Make Up Party), 차와 쿠키를 만들어 먹고 노는 '티 파티'(Tea Party), 2학년 이상 되면 가까운 친구들 불러 같이 재우며 우정을 길러주는 '슬립오버 파티'(Sleep Over Party).

이렇게 말하면 내가 여유깨나 있어 치마 바람이나 날리고 다닌다거나 아니면 미국 애들하고 어울리는 게 좋아서 그렇게 쫓아다니나 하는 사람 또 있을지 모르겠다. 차로 애들 데려오고 데려가고 하는 것도 이리저리 시간을 쪼개야 가능한 일이지만 애들 생일파티에 유난히 관심을 두는 건 사실이다.

여기서 나서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친구를 생일파티에 초대할 때쯤 되면 처음엔 모두 미국애들만 초대를 한대. 그러다가 점점 자라면서 검은머리에 둥그런 얼굴들이 한둘씩 보이다가 중, 고등학교에 가면 노란 머리는 아예 없어지고 검은머리들만 생일상에 둘러앉는다는 거야.
10년 전 처음 애틀란타에 왔을 때 우리를 맞이해 주었던 분이 자기 딸 얘기를 하면서 그렇게 말했는데 우리 딸 가연이를 보니까 그 말이 또 틀린 게 아니더라구.

그러니까 가연이가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생일 파티에 초대하고 싶은 친구들 이름을 물으면 모두 미국 애들이었어. 근데 2학년 되니까 한국계 아이가 하나 끼더니 올해는 딱 반반씩 나눠졌다. 한국애가 세 명, 미국애가 세 명 이렇게 말야. 가능하면 이걸 유지해 주고 싶은 게 내 욕심이다. 그래서, 애들 생일 때가 되면 꼭 미국 친구들도 초대를 하도록 하고 미국 친구들의 초대를 받으면 내가 좀 힘들어도 꼭 보내려고 노력하는 편이지.


생일파티에 어떤 친구들을 초대하는 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나는 중요해. 아이가 느끼는 자기 정체성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아서. 우리 가연이는 1학년 때까지만 해도 너는 '코리안 아메리칸'이라고 말해주면 자기는 미국에서 났으니까 '아메리칸'이라고 우겼거든. 그런데 2학년이 되면서 어느 날 갑자기 '코리안'으로 바뀌더라 구. '코리안 아메리칸'도 아니고 그냥 '코리안'으로 말이지.

미국에서 났으니 아이는 미국 시민이고 그렇게 따지면 '아메리칸'이라고 말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몰라. 근데 겨우 8년 살고 나서 자기는 '코리안'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8년 만에 벌써 여기서 100% 아메리칸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어떤 벽에 부딪혔나봐. 문화적 배경이 다른 부모와 함께 사는 것 혹은 다수와 다른 자신의 겉모습. 자기는 소수에 속한다는 걸 그 8년 동안에 가연이는 다 알아버린 건지.


자신을 '코리안'이라고만 규정짓는 아이가 걱정스러운 건 그 '코리안'의 의미가 긍정적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틀로 굳어져 자신을 그 안에 가둬놓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해서다.

그건 비단 나만의 고민은 아니야. 여기서 애들을 기르는 엄마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식의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는 것,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걸 몇 마디만 서로 오고가면 금방 알 수 있어.

대부분의 엄마는 이렇게 말해. 아이가 특별하게 뛰어나지 않으면 미국에서 50%로밖에는 못 살 것 같으니 그럴 바에야 다시 한국에 돌아가 살게 하고 싶다고 말이지. 영어를 잘하는 2세들이라 해도 100% 아메리칸으로 주류 벽을 뚫고 들어가 끝까지 남아 있기란 여간해서 힘들다는 말이다. 잘 나가다가도 어느 선을 넘지 못하고 도중하차하는 예가 많다는 거지.

그렇게 살 바에야 고등학교 졸업하면 대학은 한국에 가서 다니게 하고(왜냐면 한국 사회에 적응하려면 대학 선후배 줄이라도 있어야 하니까) 100% 한국사람으로 한국에서 살게 하겠다고.

그런데, 나는 좀 다르다. 꼭 100% 아메리칸, 100% 코리안으로 살아야 되는 걸까? 50% 코리안, 50% 아메리칸, 그게 더해져서 그야말로 100%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우리 아이들이 여기서 당당하게 살게 하고 싶은 게 내 꿈이다.

이쪽, 저쪽에 치우침 없는 문화 속에 너는 50% 코리안, 50% 아메리칸이라는 그 균형과 긴장감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출발선을 나는 어쩌면 애들 생일파티에서 찾는 건지도 몰라.

엊그제가 마틴루터 킹 데이였다.
그리고 이번 달은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이고. 학교에서 아이들은 인간은 겉모습에 상관없이 공평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것과 인간의 권리에 대해서, 그리고 평화적인 시위에 대해서 배우고 또 배운다. 흑인들의 메카라는 여기 애틀란타 방송에선 그 유명한 마틴 루터 킹의 연설 "I have a dream..."이 어김없이 흘러나오고.
"We shall over come..."
한국에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듣던 데모가, 바로 그 노래도 끊임없이 들린다.

그 사이를 지나 생일 초대한 아이의 집을 오가면서 나는 가연이와 주연이에게 또 되풀이해서 말하고 있었다. 너는 100% '코리안 아메리칸' 이라구. 그게 가끔은 너희를 울게 하고 힘들게 할지라도 그걸 포기하지 말라구. 나는 말하고 또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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