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의 화음이 있는 옛 정원 <명옥헌>을 찾아서

아름다움을 몇 개 단어로 표현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직접 보여줘

등록 2001.01.27 20:32수정 2001.01.2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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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가득한 날의 여행

겨울은 사람의 몸을 움츠리게 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덕택에 유별나게 활동적이지 않은 사람은 위축되기 마련이고 그렇게 집과 일터만을 좇다 보면 어느새 그 계절이 다 가고 만다.

그리고선 어느 새싹 파릇한 날 혹은 염천의 날씨에 하얀 눈 위에 도드라진 경관이 담겨 있는 사진을 보면 많은 후회를 한다. 왜 진즉 가볼 것을 가지 않았던고.

그 겨울에 내가 조금만 더 부지런했더라면 나도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면서 말이다.

눈이 올 예정이라는 보도가 며칠 계속되고 있다. 이번에 눈이 오면 우리는 무등산 자락의 하고 많은 정자중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후산마을에 있는 명옥헌을 찾아 볼 일이다.

그곳에 가면 우리가 보아왔던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감히 입으로 얘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명옥헌의 공간 배치

명옥헌(鳴玉軒)은 정자가 있는 정원이다. 그 면적은 1300여평에 달하며 소쇄원과도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명옥헌은 소쇄원에 비해 100살은 더 늦은 162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명옥헌을 이루고 있는 공간의 구성은 먼저 마을의 고샅길을 치고 들어가면 마을 공동 우물을 만나게 되고 그 바로 앞자락에 하나의 둔덕이 나타난다. 그 둔덕을 넘는 순간부터 일종의 전이적 공간구성과 마주치며 명옥헌에 도달하는 것이다.

언덕을 넘어설 때 차오르는 숨을 다시 내려가는 길에 "휴"하고 쏟아 부을 때 그때 명옥헌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길손을 맞아주는 것이다.

방형의 형태 즉 네모진 기다란 연못이 눈에 들어오고 그 연못 깊숙한 곳에는 원형의 섬이 만들어져 있으며 그 섬속에는 배롱나무와 석물 몇 개가 있다. 단초롬한 모습의 섬과 길다랗게 네모진 연못, 그리고 연못의 주변으로 300살을 더 먹어 보이는 배롱나무들이 훤칠한 키와는 달리 껍질마저 발가벗고 서 있다.

담장 하나 없이 어쩌면 밑밑하기까지 한 정경을 보호하기 위한 명옥헌의 담은 바로 연못 우측편에 기다랗게 서 있는 늙은 소나무들이 대신하고 있다. 그렇게 배롱나무와 소나무 사이의 길을 타고 가면 2000년에 새롭게 복원을 한 단정한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

현판의 글씨는 처마 밑에 달려 있는데 처마가 너무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탓에 쉬이 눈에 잡히지 않는다. 스스로 몸을 낮추거나 아예 마루 쪽으로 다가가 토방 위에 서면 그 명옥헌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그리고 정자의 왼편으로 가면 널직한 연못을 채웠던 물이 흘러오는 조그마한 계곡을 만나고 조금 더 올라가면 아주 조그마한 연못이 있다. 이 연못 또한 네모진 형태에 중간에 섬을 가지고 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조그마한 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도장사라는 사당의 유허비이다. 옛적 이곳에 도장사라는 사당이 있어 오희도라는 사람과 소쇄원의 주인인 양산보 등 소위 처사(나라에서 벼슬을 주어도 출사하지 않은 은자)들을 배향했던 곳인데 사당이 없어지게 되자 그 뜻이라도 기리고자 빗돌을 세워둔 것이다.

▲눈이 내린 겨울, 명옥헌 ⓒ 전고필
조금 더 관심이 있다면 계곡에 바짝 붙어 위쪽 연못으로부터 7m 정도만 더 가 보자. 그곳에는 계류 오른편으로 바위가 50cm 정도 땅 위로 솟은 것이 있는데 여기에 '명옥헌'이라는 아까 현판에서 보았던 글씨가 똑같은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현명한 옛 선인들의 모습이 그 바위벽에 있는 것이다. 텔레비전의 <진품 명품>이 방영되면서 현판을 떼어가는 도둑들까지 생겨날 정도였다고 하니 말이다. 하긴 담양의 식영정 바로 앞 노자암이라는 바위 일곱개 중 한 곳에 쓰여진 '노자암'이라는 글씨는 정으로 쏘아간 것도 있는데 이것도 보호각을 만들어야 할지.)

그리고 눈을 들어보면 밑둥이 요란한 소나무가 2m 정도의 높이에서 몇 개로 갈라진 흔치 않는 소나무 '반송'을 볼 수 있다.

푸른 소나무와 적색의 나무 등걸과 하얀 눈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눈이 시릴 정도이다.

이렇듯 명옥헌은 아래쪽의 연못 부분과 중간 부분의 정자 그리고 계곡과 위쪽 연못으로 큰 세 가닥의 공간 안배를 하였음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집 이름과 내력

명옥헌이라는 이름은 울 명(鳴)자에 구슬 옥(玉), 집 헌(軒)자를 쓰고 있다. 즉 계곡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가 마치 옥구슬 소리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하지만 명옥헌은 이런 이름말고도 다른 여러 가지의 이름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삼고(三顧), 도장정, 장계정 등이 함께 사용되고 있는데 흥미진진한 것은 바로 삼고라는 이름이다.

이 정자를 지은 사람은 장계 오이정이라는 사람인데 그는 자신의 부친인 명곡 오희도가 이곳에서 망재(忘齋)라는 서실을 짓고 학문에 힘쓰며 후진 양성을 했던 것을 기리고자 부친이 죽은 후에 정자를 짓게 된 것이다.

오희도는 인품과 학식이 빼어나 소문이 자자했는데 광해군의 폭압에 시달리다 못해 반정을 꿈꾸던 인조가 왕자였을 때 지사를 규합하고자 이곳 서실에 들려 함께 해줄 것을 당부하였다고 한다.

물론 오희도는 나서지 않았지만 몇 번의 행차가 있자 오희도는 그와 교분이 있는 다른 이로 하여금 인조를 돕도록 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하였다고 한다.

인조가 왕이 되기 전 행차가 있을 때마다 타고온 말을 매어두었던 은행나무가 지금도 남아있는데 그 나무는 '인조대왕 계마행수'라고 하여 아직도 이 마을에서 존중되고 보호받고 있다.

이런 상황을 기억한 사람들은 인조의 행차를 유비가 제갈량의 초가를 세 번 찾았던 고사에 비유하여 '삼고'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고 그것이 명옥헌의 또 다른 이름이 된 것이다.

'도장정'이라는 이름은 바로 옆에 도장사가 있어서 갖게 된 것이고 장계정은 정자를 지은 오이정의 호일뿐만 아니라 바로 옆 계곡의 이름이 장계여서 갖게 된 집 이름인 것이다.


명옥헌의 두 가지 승경

명옥헌은 두 번 아름다움을 빛낸다.

하긴 이런 소담한 시골의 산자락에 기대어 앉은 정자가 아름답지 않은 적 있겠는가만 그중에서 가장 아름답게 그 모습을 보여주는 계절을 꼽으라면 바로 명옥헌의 삼백여년 묵은 배롱나무가 꽃잎을 활짝 피우는 7월 말에서부터 8월 중순까지이다. 비단 그 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떨어진 꽃들이 그 연못을 마치 사찰의 연등처럼 붉게 물들이고 있는 모습이 남아있는 9월까지도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명옥헌은 조용히 그 화려함을 후산 마을의 감나무에게 옮겨 주고 깊은 잠의 나락으로 빠져 간다.

여지껏 그 스스로 아름다움을 꾸며 왔다고 하면 명옥헌이 두 번째 빛나는 순간은 바로 주변의 감들이 자취를 감춘 겨울이 오고부터다.

하얀 눈발들이 세상 모든 것을 덮을 기세로 내려오시는 날, 이미 발가벗어 버린 배롱나무의 미끄러운 가지조차도 이 눈만은 예외 없이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 붉었던 연못은 눈이 제 몸속에 눈물로 변하는 것을 아쉬워하는지 스스로 살포시 얼어붙어 그 위에 눈을 받아들인다.

정자의 검은 기와는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눈을 이고 있으며, 푸른 소나무가지도 제 팔이 부러질 정도로 눈을 흠뻑이고 있는 것이다.

눈이 없었다면 황량하기 그지없었을 이곳이 순백이 주는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치장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얼마나 초라한지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그런 모습이다.

이 겨울 눈 내린 오후에는 명옥헌에 가 볼 일이다.

지치고 쓰라리고 따끔한 내 어깨와 내 가슴과 내 눈에 상생의 아름다움으로 짜릿한 전율처럼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광주에서 가는 길

자가용은 망월동을 지나 고서 사거리에서 창평(곡성)쪽으로 1km 정도 가다보면 명옥헌이라는 표지판이 보입니다. 그 길을 따라 200m 들어가면 마을이 나오는데 후산 마을입니다. 그 마을의 가장 안쪽에 명옥헌이 있으며, 인조가 말을 매어 놓았다는 은행나무도 다른 안쪽 길에 있습니다.

버스는 서방 시장에서 103번이나 303번을 타셔서 명옥헌이 있는 후산 마을에서 정차하셔서 걸어가시면 됩니다.

덧붙이는 글 광주에서 가는 길

자가용은 망월동을 지나 고서 사거리에서 창평(곡성)쪽으로 1km 정도 가다보면 명옥헌이라는 표지판이 보입니다. 그 길을 따라 200m 들어가면 마을이 나오는데 후산 마을입니다. 그 마을의 가장 안쪽에 명옥헌이 있으며, 인조가 말을 매어 놓았다는 은행나무도 다른 안쪽 길에 있습니다.

버스는 서방 시장에서 103번이나 303번을 타셔서 명옥헌이 있는 후산 마을에서 정차하셔서 걸어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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