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사진이야기 4> 책 들어오는 모습 (1)

홍제동 <대양서점>에서

등록 2001.02.01 09:49수정 2001.02.04 18:07
0
원고료로 응원
헌책방에 책이 들어오는 일은 늘 있는 일이나 가장 바쁘며 즐거운 일입니다. 책방으로선 새로운 `헌 책'을 갖추는 일이며 책손님으로선 또 다른 `헌 책'을 만나는 첫 길이랍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책방으0` 들어오는 책 질(높낮이)이 썩 좋지 않다는군요. 헌책방으로 들어오는 책은 모두 `사람 손을 거친 책'이기 마련인데 `사람들이 좋은 책을 사읽는'다고 말하기 어려운 사회로 자꾸 뒷걸음질치고 있으니까요.

인문사회과학 책이나 사상철학 책은 많이 들어와도 반갑지 않답니다. 이제 이런 책을 굳이 찾아 읽으려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쏟아지는 책이 많긴 하지만 한번 보고 버리는 책이 부피를 많이 차지합니다. 이 탓에 헌책방에 책이 많이 쌓여가도 책손님이 즐겨 찾을 만한 책도 줄어들지요.

그래도 헌책방에서는 책을 사는 일을 즐겁게 맞이합니다. 이번엔, 오늘은 책손님들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책이 있을까 하는 생각과 바람을 안습니다. 오늘 이번에 들어온 책을 어떤 책손님들이 골라갈까 하고 생각합니다.

책장이 뜯어졌으면 풀이나 본드로 조심스럽게 발라서 다시 붙입니다. 아예 떨어져 나갔으면 두꺼운 종이나 흰 종이로 깨끗하게 새로 겉장을 만듭니다. 먼지를 너무 많이 탔다면 걸레질로 먼지를 훔쳐냅니다. 물에 젖은 책은 난롯가에 잘 세워두고 말립니다.

헌책방으로 들어오는 책을 보노라면 그 책을 본 `첫임자'가 책을 어떻게 보았는지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너덜너덜하며 지저분한 책이라면 그 임자는 책을 마구 보았겠죠. 부지런히 공부한 흔적을 남기기도 했을 테고, 비상금을 꽂아두기도 했을 테며-그러나 이런 일은 이제 아주 드문 일입니다- 학교 적 시험지나 신문기사 오려둔 것, 책갈피, 나뭇잎 말린 것, 소중한 편지, 전단지나 광고지, 영화나 연극표, 영수증, 처음 쓴 사람만이 알 수 있을 듯한 쪽지.

이런 것들은 헌책방 임자들이 새로 들어온 책을 갈무리(정리)하면서 거의 모두 빼내어 버립니다. 이런 것을 모으는 분도 계시나 많은 손님들은 책 사이에 너저분한 것이 끼워져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더군요. 이런 너저분한 것이 한 때(시대)를 보여주고 남기는 흔적이기도 한데.

<대양> 2매장 형은 작은차(소형차)를 몰고 책을 한 가득 싣고 옵니다. 어느 신문사 기자분이 집을 옮기면서 더는 보지 않는 책을 내놓는다고 했답니다. 그 기자분 댁에서 나온 책을 보니 교육쪽과 사회-문화 책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이 70년대에 쓴 기사를 모은 파일도 열 넘게 있군요.

지하매장으로 책을 옮길 무렵 <대양서점>을 자주 찾는 단골손님 한 분도 젊은 형이 차에서 내려 지하매장으로 책을 옮기는 일을 도와주십니다. 아저씨는 나이를 퍽 드셨지만 손 하나 더 있어 책뭉치를 하나라도 함께 나르면 많은 책뭉치를 나르는데 도움이 되니까요.

이렇게 새로 들어온 헌책은 하나하나 `점검'을 받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찾을 만한 책인지를 살핍니다. 내용에 따라 나누기도 하고요. 모든 책을 다 진열할 수는 없고 폐지로 넘겨질 책 또한 있을 테죠. 책 안에 껴놓은 너저분한 것도 걸러냅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책은 삼십 분 남짓 걸려서 갈무리를 마칩니다. 이제 갈무리를 마친 책은 저마다 자기 자리에 가서 꽂히거나 눕겠죠.

<대양> 1매장엔 아까 책짐을 함께 날라 주신 단골 아저씨와 다른 손님 한 분이 오셔서 자리에 조촐히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눕니다. 다른 책손님 여럿은 조그마한 책장 틈을 비집고 다니면서 책을 고릅니다.

몇 평 되잖은 자리 가운데에 책장 둘을 꼼꼼히 챙겨놓았기에 그 사이엔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른 분이 뒤편 책을 보고파 하면 책장 사이에 있던 사람이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대양>은 천장도 낮아서 같은 평수를 가진 다른 가게보다도 좀 더 작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작은 만큼 아늑하기도 하죠.

쉰 해에 걸친 연구와 발품팔기와 그림그리기를 그러모아서 냈다는 <식물대보감, 일흥>도 보고 이원수 문학전집 서른 권도 봅니다. 브리태니커에서 펴낸 <배움동산> 가운데 세 권도 봅니다. <정서법 자료>와 <노금도-땅의 아들> 1권도 보고요. 이 책들 또한 처음 책을 산 사람들 손길을 거친 뒤 헌책방 임자 손길을 거쳐 책장에 꽂혔고 이제는 제 손으로 들어옵니다.

앞으로 이 책들이 또 어떻게 누구에게 갈지 모를 일이지만 제 손에 있는 동안은 잘 보고 잘 새기면서 책을 만든 사람이 `이 책을 본 사람들이 사회에서 하길 바라는 일'을 가슴으로 안아야겠습니다. `함(실천)' 없는 `앎(지식)'이 아니라 `앎'을 얻으면 곧바로 `함'으로 꽃피워내야 한다는 말을 다시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홍제동 대양서점] 02) 394-2511 / 019-437-8901 (1매장) / 011-9993-7901 (2매장)

덧붙이는 글 [홍제동 대양서점] 02) 394-2511 / 019-437-8901 (1매장) / 011-9993-7901 (2매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파묘' 최민식 말이 현실로... 백두대간이 위험하다
  2. 2 도시락 가게 사장인데요, 스스로 이건 칭찬합니다
  3. 3 이사 3년 만에 발견한 이 나무... 이게 웬 떡입니까
  4. 4 '내'가 먹는 음식이 '우리'를 죽이는 기막힌 현실
  5. 5 제주가 다 비싼 건 아니에요... 가심비 동네 맛집 8곳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