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당서점> 봄을 기다리는 헌책방

우리 마음에도 봄이 오길 바라면서

등록 2001.01.29 09:22수정 2001.01.2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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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헌책방에도 봄은 있는가

헌책방 <문화당서점>에서 책을 다 고르고, 무거워서 미처 다 들고오지 못하는 책을 남겨두기까지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시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산과 들이 맞붙은 곳으로... 걸어간다"고 외는 시. 갑자기 이 시가 떠오른 까닭은 다름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네 헌책방 삶은 `겨울'이거든요. 우리가 어제까지 몸살을 앓도록 겪은 그 춥디 추운 겨울이거든요.

헌책방만은 아닙니다. 동네에 있는 작은 새책방도 차디찬 겨울입니다. 도서대여점도 한때 반짝했지만 이젠 다들 시들해지는 판이지요. `책'으로 장사하면서 뭔가 건질 수 있는 일은 없다고도 할 만합니다. 제 살 깎아먹기일 뿐 아니라 건전한 책 유통질서를 깨고 작은 책방을 문닫게까지 할 뿐 아니라 어린이서점 같은 전문서점이 들어설 자리마저 뺏는 인터넷서점 또한 책을 몇 권 더 팔아먹을지는 모르나 아름다운 책 문화와는 거리가 멀 뿐입니다.

책을 팔아 돈도 벌고, 그렇게 번 돈을 다시 `책 장사'에 쏟아붓는다면 우리네 책 문화는 문화대로 아름답고, 책 장사를 하는 이도 자기 일을 아름답게 이어갈 뿐 아니라 집식구들 살림도 알차게 꾸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현실은?

사실 인터넷만 뒤져도 볼거리 다 있고, 자료 다 있는 판에 굳이 먼지 풀풀 나는 헌 책을 뒤질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뭐 남다른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우리네 젊은 사람들 삶은 `헌책방 찾아가서 책 읽기'와는 거리가 멉니다. 깨끗한 새 책도 잘 안 읽는 판인데 손에 까만 먼지가 묻고 코도 막히는 헌책방에 누가 가고파 하겠습니까.

나. 기다리는 이에게는 봄이 있을까

<문화당> 아저씨는 헌책방 하는 이들에게 아쉬움이 많다며,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기 앞서 자기 스스로도 게을러서 책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고 떨어진 책장을 풀이나 본드로 붙이고, 바닥에 깔린 책을 잘 갈무리해서 보기 좋게 하거나 아래와 위를 뒤집어 놓기라도 해야 하는데 못 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엇보다 이런 `게으름'을 떨쳐내야 하고 좀 더 깔끔하고 잘 갖추어진 상태에서 `한 권 팔 때 100원에 사서 1천원이나 2천원에 팔 생각'이 아니라 `새책방처럼 마진을 30%만 남기며 버려지는 책이 없이 알뜰하게 책방을 꾸미고 가꾸도록 애써야 하는 마음과 몸 가짐'이 있어야 한다고도 말씀하십니다.

지금 서울 노고산동에서 이태째를 맞이하고 있는 <숨어있는 책>이 바로 <문화당서점> 아저씨가 이야기하는 대로 책방을 꾸리는 곳이지요. 책을 퍽 비싸게 사오지만 그다지 비싸게 팔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새책방에서 남기는 차익'만큼만 남긴다고 볼 수 있도록 책을 팝니다. 그야말로 `골라서 책을 떼오고 알뜰하게 버려지는 책 없이 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책을 팔려면 무던히도 움직이고 바지런을 떨어야 하지요.

세상 어느 일이 바지런을 안 떨고 잘 되길 바랄 수 있겠습니까. 헌책방을 하는 분들도 바지런을 떨어야 무언가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여러 헌책방을 다니면서 가슴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나이로 보아 분명히 `정년퇴직'할 만한 분들은 아닌데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뵐까 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책을 찾는 젊은 사람'이 드문 탓이 아닐까 싶답니다. 젊은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와서 "이런저런 책이 있나요?" 하며 찾고 "아, 이런저런 책이 있었군요" 하고 깨달아가며 좋은 책을 찾아서 읽고 배우며 우리 사회에서 자그마한 빛 구실을 하는 모습을 지켜본다면 헌책방을 꾸리는 분들도 그네들 속생각처럼 `책장사 하며 골병든 몸' 추스리면서 더 바지런을 떨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실, 제 아무리 헌책방 임자들만 바지런을 떤다고 해 보아야 헌책방에 봄이 오겠습니까?

다. 골목 안 풍경

어느덧 환갑 나이도 지난 김기찬 씨가 쉰 살 때 처음으로 펴낸 사진책이 <골목 안 풍경>입니다.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죠. 촬영장비를 메던 이가 사진기를 잡더니 쉰 살 나이에 사진을 담아내서 사진책도 내고 전시회도 한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김기찬씨는 서울 토박이로 살면서 골목골목마다 자신이 보고 겪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사진을 찍습니다(지금도 찍지요). 꾸불텅 꾸불텅한 골목길을 찍는 사람은 자주 봅니다. 그러나 `골목'이라는 감(주제)을 가지고 꾸준히 찍는 사람은 찾아보기 드물죠. `예술성'도 `이름(명성)'도 얻기 어려운 감이니까요.

자신이 어릴 적 겪고 느낀 삶터를 쉰 넘은 나이에 좇아가면서 그 삶터를 사진으로 애틋하게 담아낸 <골목 안 풍경>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사진책을 즐겨 찾습니다. 안타까운 구석이 하나 있다면 사람들이 이 사진책을 `새 책'으로는 거의 안 사고 헌 책으로 산다는 구석입니다. 그래서인지 <골목 안 풍경>은 헌책방에서 아주 인기있고 금세 나가는 사진책이지만 김기찬 씨가 펴낸 <골목 안 풍경> 가운데 절판되지 않고 나오는 사진책은 한 권밖에 없지요.

김기찬 씨 사진책과 함께 <윤주영-동토의 민들레, 호영(1993)>도 봅니다. 이 책은 사할린 한인을 취재한 사진책입니다. 중앙 기득권층으로서 세상에서 알아주는 모든 직책 - 대통령을 빼고 - 을 거쳤던 윤주영 씨가 `조선인-일본인-소련인-무국적자'라는 네 가지 국적을 가지면서 조국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세 차례 찾아가서 찍은 사진을 모아서 펴낸 책입니다. 이 사진책이 나온 지 거의 열 해만에 사할린 한인 교포는 그토록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네들을 반긴 영구임대주택은 당신들이 바라던 조국 사람들과는 멀리 떨어진 외딴 곳에 덩그러니 놓인 아파트였습니다. 쉰 해도 넘게 그리워하고 바라던 조국은 `너희들은 이거나 먹어라' 하는 투로 따뜻함 하나 없는 차디찬 손길만 내밀었을 뿐이지요.

라. 헌책방도 모두 다릅니다

책방마다 모습이 다 다릅니다. 갖추고 있는 책도 모두 다르지요. <문화당>이란 이름은 70년대 경상도 예천분들이 올라와서 - <신동아> 유월호에 남재희 씨가 <문화당>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가게가 `상주' 사람들이라고 적었다지만 이는 잘못된 이야기며 `예천' 사람이 맞답니다 - 하나 둘 늘면서 서른 곳 가까이 퍼졌던 이름이지만 그렇게 이름이 똑같은 <문화당>서점이 갖고 있던 책들까지 같았겠습니까. 모두 달랐죠.

밑천이 없이도 교과서와 참고서와 몇 가지 책만 가지고도 문을 열 수 있었다던 헌책방이 이제는 웬만큼 수준높고 질 좋으며 깨끗한 상태를 가진 책을 알뜰살뜰 많이 갖추고 있지 않고서는, 그리고 높은 가게 임대삯을 내지 않고서는 문을 열 수 없는 현실로 달라졌습니다.

나라에 `책 문화'를 바라보고 헤아려 주는 생각과 마음 씀씀이가 없듯 헌책방을 꾸리는 이에게도 먹는 것 팔고 옷 파는 가게와 마찬가지로 가게세를 받습니다. 더불어 우리 문화정책 담당자들도 책 문화를 헤아리지 못하기에 새책방이든 헌책방이든 임대세에 죽어나는 현실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지요.

현실은 참말로 징허도록 힘듭니다. 그래서 이렇게 징헌 현실을 견디다 못해 뛰쳐나가 헌책방 문을 닫은 곳이 많답니다. 그 많던 <문화당서점>도 이제는 세 곳밖에 안 남았다는군요. 책도 책대로 안 팔리고 뭐 얻거나 거둘 수 있는 게 없어서 제 앞가림도 집식구들 살림도 할 수 없으니 문을 안 닫을 수 없겠죠.

그러면서 헌책방이 하나둘 사라지고, 그러는 가운데 저마다 다 다르게 살림을 꾸리고 책을 가주던 헌책방이 사라지며 어슷비슷하게 겨우 목숨줄만 잇는 헌책방으로 달라지기도 합니다. 살아남으려면 `뭔가 돈도 되고 팔리는 책'만 두게 마련이니 `금세 팔리지는 않아도 좋아서 오래도록 두면 제 임자를 만나는 책'은 잘 안 갖추거나 사서 갖추지도 않게 마련이지요.

마. 봄을 기다리는 헌책방에 무엇이 있는가

힘들고 어려워 나자빠질 때도 헌책방이란 길을 놓지 않고 이어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연신내 <문화당서점>도 1975년 11월 19일부터 이제까지 무려 스물여섯 해라는 시간 동안 이어온 곳이죠. 아침 열 시면 문을 열어 저녁 열 시면 문을 닫는 책방 살림을 이어온 지 스물여섯 해.

농사꾼은 봄여름가을겨울에 맞춰 농사일을 합니다. 봄이 오면 씨뿌리거나 모내기를 하고 여름이면 김매고 가을이면 거두고 겨울이면 지붕 덮고 메주 다는 농사꾼은 지며리 자기 할 일을 해갑니다. 우리네 헌책장이들도 낡거나 버려지거나 처분하는 책을 고이 받아들여 책방에 가지런히, 아니면 되는대로 쌓아가며 갖춥니다. 이렇게 하는 일을 두고 남다른 목적의식이나 사명을 갖는다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농사꾼이 남다른 목적의식과 사명으로 씨 뿌리고 김매고 거둘까요. 자기 삶이니까, 살아왔고 살아갈 삶이고 뿌리니까 하는 일입니다. 헌책 장사도 농사짓는 농사꾼 마음과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남달리 사명과 목적을 느낄 까닭도 쓸모도 없으나 자기 일을 바지런히 하고 즐겁게 하고, 자신이 책방 일을 하며 만나는 사람과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책을 널리 나누면서, 자신이 나눈 책을 보는 사람이 온누리에서 조촐한 빛 한 줄기 구실을 한다는 생각으로 흐뭇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런 마음을 가지는 헌책장이들은 봄을 기다리지요.

인터넷 시대에, 젊은이들이 책과는 나날이 거리가 멀어져가는 시대에도 봄을 기다리고 맞이할 채비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봄은 애타게 찾는 이에게 찾아갑니다. 다만 그 봄이 언제 찾아갈지를 모를 뿐이지요. 애타게 찾는 이에게 자기도 모르게 찾아가는 봄입니다. 추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헌책방에 과연 봄이 올지 안 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봄이 오는 그 날까지 봄을 찾아서 부지런히 애쓰고 땀흘리며 일하노라면 봄은 어느새 우리 옆에서 어깨동무를 하려고 한 팔을 살짝 올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덧붙이는 글 | [연신내 문화당서점] 02) 384-3038 / 02) 354-3038 / 011-9756-3038

 * <문화당서점>은 지하철 3호선이나 6호선 연신내역에서 내려서 6번 나들목으로 나와 `롯데리아'가 있는 건물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서 들어가는 골목길을 따라가다가 첫째로 맞이하는 작은 네거리에서 왼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

덧붙이는 글 [연신내 문화당서점] 02) 384-3038 / 02) 354-3038 / 011-9756-3038

 * <문화당서점>은 지하철 3호선이나 6호선 연신내역에서 내려서 6번 나들목으로 나와 `롯데리아'가 있는 건물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서 들어가는 골목길을 따라가다가 첫째로 맞이하는 작은 네거리에서 왼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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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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