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회 증언대에 선 '언론사 오보'

<아메리카 전망대>한국 언론은 '자율개혁?'

등록 2001.02.23 22:12수정 2001.02.2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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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들은 개표 오보를 해명하라"

미국의 주요 방송사 대표들은 지난주 줄줄이 의회 증언대에 서야 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오보를 내보내 대선을 대혼란으로 몰아가는 데 일조한 것이 그 이유였다.

CNN과 팍스 뉴스, NBC ABC CBS 등 언론사 사장들은 연방하원 상무위원회 청문회에 불려나가 빌리 토진 위원장 등 수많은 패널 위원들로부터 준엄한 꾸지람을 들었다. 토진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앞으로의 자숙을 경고하고 "한 번만 또 이러면 가만 안두겠다"며 관련 규제법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패널 위원들은 앞으로 특정 언론사들이 선거당일 방송한 테잎을 소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저 지나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미 언론사 대표들의 반응이다.

"진실이 아닌(untrue), 어리석기 짝이 없는(rather foolish), 흐리멍텅한 소문에 불과한(just a dopey rumor) 보도였습니다" - NBC 뉴스 사장 앤드류 랙

"우리가 시청자들을 농락했습니다" - 폭스 뉴스 사장 로저 에일스

"플로리다주 선거는 우리를 정말 창피하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 CBS뉴스 사장 앤드류 헤이워드

청문회장에서 오른손을 치켜든 후 진지한 재발방지책을 설명한 미국의 언론사 사장들에게서는 변명이나 책임회피는 전혀 없었다. CNN의 경우 대선 직후 언론전문가 3인으로 된 패널을 구성하고 보도방식을 대폭 수정하는 제도적인 재발방지책을 위해 노력하는 등 미국언론들은 아직도 '1건의 오보'를 놓고 고민중이다. '어떤 식으로 보도해도 지나가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겨운 국내언론의 안하무인식 자기방어 논리


최근 우리 국내에서 언론개혁을 촉구하는 분위기가 가열되자 국내언론이 보인 반응들은 정말 가관들이다. 과연 '사회적 공기'인지 물건을 내다파는 '장사꾼'들인지 분간조차 어려운 지경이다. 그 논리란 것이 "왜 당신들이 장사 못해 먹게 막아 나서냐?"는 식이다.

언론개혁과 관련한 국내언론들의 반응, 특히 신문보도들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자기방어에 급급해 있는가가 드러난다. 갖은 해괴한 논리와 야당이라는 '입'을 통해 언론개혁 '음모'에 대한 전쟁을 선언하고 있다. 이들의 논리는 한마디로 "정부나 시민단체가 나서서는 안될 일" "언론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해결해 나가고 시장논리에 맡겨 독자들이 판단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변한다.


언론 개혁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언론개혁의 주체는 기본적으로 시장, 즉 독자가 돼야 한다는 논리이다. "내용이 별볼일 없으면 시장논리가 그것을 쇠퇴하도록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이 그것이다. 말이야 그럴싸하다.

그러나 언론의 '권력음모' 운운은 국민의 개혁의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정부와 국민들을 분리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국민적 합의를 국가정책으로 나타나지 못하게 하려는 언론권력의 또 다른 횡포에 불과하다.

국내언론의 '언론탄압'논리는 결국 스스로의 존재이유 자체를 부인하는 격이다. 국민의 뜻을 위임받아 존재하는 3권분립 체제하의 정부나 의회의 사회개혁 기능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반대로 언론의 권력에 대한 감시비판기능이 왜 필요하다는 말인가. 자신들이 없이도 국민들 스스로 판단해서 투표하면 될 것 아닌가. 그래서 국민(독자) 스스로(시장논리)가 정권이 교체(쇠퇴)하도록 맡겨두면 되지 않는가?

이것은 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자신들에 주어진 비판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사회적인 우려를 희석시키기 위해 '필요는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교묘한 논리일 뿐이다.


언론이 '대접'받는 것은 정상적인 구실을 할 때만 가능한 것

한국언론은 마치 자신들이 무슨 '성역'이기라도 한 것처럼 강변하고 있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는 감시자 비판자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언론은 항상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독립'이라는 의미를 '비판으로부터의 제외'라는 엉뚱한 개념으로 몰아 붙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언론은 대체 누가 감시한다는 말인가.

언론이 무슨 성역이라도 되는 것인 양 '모든 것은 자율에 맡겨달라'는 오만이 나라의 혼란을 여기까지 불러오고 있다. 만약 한국에서 언론사 사장들을 국회로 불렀다고 가정해 보자. 사실 미국의 의원들처럼 그럴 만한 배포나 용기도 없는 것이 한국의 의회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것은 당장 '언론탄압의 신호탄'이고 '신성한 언론자유'를 위축시키려는 '정치권의 음모'로 다음날부터 지면에 등장할 것이 불보듯 뻔하다. 정작 문제의 본질에 대한 분석은 없고 각 정치권의 '의도'가 선보이고 각당별 이해득실에 대한 분석들이 다음날부터 줄을 이을 것은 한국언론의 '공식'이다. 이미 정권에만 넋이 팔린 야당은 언론개혁 논쟁에서 발빠르게 언론의 들러리를 서고 있지 않은가.

미국의 언론에서는 청문회에서 언론사 사주들이 심지어 일부 의원들의 '조롱' 대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탄압'이라든가 '언론 길들이기'라는 주장이 단 한마디도 나오질 않았다. 그것은 대선보도가 '명백한 오보'이기 때문에 경우가 다를 수도 있다고?

오보로 따진다면 미국언론은 한국언론에 비할 바가 안된다. 한국언론들처럼 일상화된 졸속보도 오보 관행도 드물 뿐더러 이들의 공신력은 체질화되어 있다. 단 한차례의 '오보'정도를 가지고 의회에 불려나가 '어김없이' "잘못했다"고 털어놓고 그것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처럼 허구한날 곳곳에 오보투성이로 나가도 '반성문'하나 쓸 줄 모르는 언론들이 버젓이 행세하려 한다면 이 사회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마도 얘기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칼럼니스트 벤 와텐버그는 CNN의 대선보도를 뉴스 재앙(news disaster)이라고 표현했다. 오보와 엉터리 보도로 지새는 한국언론 현실은 이들에 비하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 뉴스재앙이 아니라 '뉴스 암흑기'라고 해야할 판이다.

한국언론은 왜 자신들이 존경받지 못하는지, 왜 신뢰받지 못할 집단으로 '매도' 되는지 반문해 보아야 한다. 더 이상 이것보다 어떻게 비참해 질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것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갈수록 초라해질 뿐이다.

반성의 목소리가 나와야 그것이 참된 언론이지 어찌 '언론개혁'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향해 선전포고를 하고 나서는가. 박정희 전두환시대에나 가능했던 '언론탄압' '정권의 음모' 운운은 이제는 듣기에도 역겹다. 알량하고 백해무익한 특권의식에 빠져 앞으로 나아가려는 국민적 여망의 뒷다리나 잡고 늘어지는 그 추태에서 하루속히 깨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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