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늘 신보에 대한 리뷰만 써오다가 이렇게 손때 묻은 옛앨범에 대해 얘기하려니 약간의 어색함도 들게 되네요. 사실 블러(blur)라는 영국밴드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99년 2월경, '브릿팝씬의 최강밴드'라는 거창한 선전문구와 함께 대형 음반샵에 비치된 이들의 여섯번째 앨범 '13'을 접하게 된 게 계기였고 이것이 저와 블러의 첫번째 만남이었던 것이죠.
'13'에서 접했던 블러의 음악은 우울함, 몽롱함이 배어있는 사운드였습니다. 대단히 난해하다고 느껴지면서도 제 귀에는 이상하게 질리지 않는, 마치 마력을 끌게끔 하는 매력이 엿보이더군요. 이렇게 제가 블러의 음악과 인연을 맺으면서 이들이 그동안 발표한 앨범을 한장, 한장씩 모으게 되었고 그러면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작품이 지금 얘
기하고자 하는 이들의 94년작 'Parklife'입니다.
먹이감을 향해 미친듯이 질주하는 두 마리의 사냥개를 앨범 커버로 하고 있는 본작은 이 커버 자체만으로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죠. 데이먼 알반(보컬), 그레이엄 콕슨(기타), 알렉스 제임스(베이스), 데이브 로운트리(드럼)로 구성된 블러는 이 작품을 통해 일약 브릿팝을 대표하는 밴드로 급부상하게 되었는데 본작의 매력은 록을 기본으로 추구하면서 그 안에서 듣는 이들의 귀를 끌만한 다양한 관악기, 현악기 사운드, 댄스음악을 연상케 하는 경쾌한 멜로디, 장난끼를 느끼게 할 정도의 온갖 이펙트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다양한 음악적 실험정신이 본작이 나온지 7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도 90년대의 명반 중 하나로 평론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컬렉터스 아이템으로 각광을 받는 이유라 할 수 있지요.
브릿팝을 알기 위해서는 바로 블러의 'Parklife'부터 들어야 한다는 기본 철칙(?)이 생기게 되었구요. 울나라 나이트클럽에서 들리면 딱 일거 같은 느낌의 'Girls & boys', 언제 들어도 유머스러움을 잃지 않는 'Parklife', 팝적인 멜로디가 비틀즈를 연상케 하는 'Tracy jacks'..16곡의 트랙 모두가 빠질 수 없을 정도로 꽉찬 알맹이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 있어 블러의 'Parklife'가 끌리는 이유는 다른데 있습니다. 블러의 앨범을 저처럼 꾸준히 모아온 매니아라면 느끼셨을지 모르겠지만 이 'Parklife'는 블러 음악의 전환기를 암시하고 있는 작품이면서 가장 대중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는 마지막 작품이기도 합니다.
'Parklife'이후 블러는 점차 미국 인디록에 영향을 받아가면서 97년 셀프타이틀 앨범 'blur', 99년 '13'을 통해 완전히 변모된 음악을 들려주게 되지요. 저는 블러가 점점 사이키델릭적으로 변해가는데 대해 특별히 아쉬운 마음은 없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들이 내놓은 6장의 정규앨범과 작년에 나온 베스트앨범을 통틀어 이 'Parklife'만큼 블러만이 들려줄 수 있는, 블러의 매력을 온몸으로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을 찾기가 어렵다는 거죠.
이들이 새앨범을 낼 때 과연 어떤 음악을 들고 나올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어떤 음악이든 계속해서 블러만이 할 수 있는 음악으로 나와주기를 바라고 싶네요. 무섭게 질주하는 앨범커버의 개들처럼 앞만 보며 질주하기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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