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성악가도 놀라는 우리 판소리

판소리의 재미에 빠져 봅시다 (1)

등록 2001.04.17 22:33수정 2001.04.18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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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놈은 발가락 빨리고, 똥누는 놈 주저앉히고, 제주병에 오줌싸고, 소주병 비상넣고, 새망건 편자끊고, 새갓 보면은 땀때 띠고, 앉은뱅이는 택견, 곱사동이는 되집어 놓고, 봉사는 똥칠허고, 애밴 부인은 배를 차고..."

이것은 홍보가 중 포복절도할 놀부 심술부리는 대목이다. 이렇게 우리의 판소리는 기막힌 해학이 있다. 하지만 판소리가 해학뿐인 것으로 안다면 그건 오산이다.


"선인(船人)들을 따라간다, 선인들을 따라간다. 끌리는 치마자락을, 거듬거듬 걷어 안고, 비같이 흐르는, 눈물 옷깃이 모두가 사무친다. 엎어지며 넘어지며, 천방지축(天方地軸) 따라갈제..."

이것은 심청가 중 심청이 뱃사람들을 따라 인당수로 가는 대목이다. 이 부분을 들으면서 오열을 삼키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다음과 같은 대목도 있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이이이 내 사랑이로다. 아마도 내 사랑아 네가 무엇을 먹을랴느냐... 저리 가거라 뒷태를 보자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빵긋 웃어라 잇속을 보자 아마도 내 사랑아"

이 대목은 춘향가 중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사랑가>중 일부이다. 에로틱한 이도령과 춘향의 사랑놀음인데 성적 농담도 예사롭게 등장한다.

"충간(忠奸)이 공립(共立)허고 정족(鼎足)이 삼분헐새 모사는 운집(雲集)이요 명장은 봉기(蜂起)로다. 북위모사(北魏謀士) 정욱(程昱) 순유(筍攸) 순문약(筍文若)이며 동오모사(東吳謀士) 노숙(魯肅) 장소(張紹) 제갈근(諸葛瑾)과 경천위지(經天緯地) 무궁조화(無窮造化) 잘긴들 아니허리."


그런가 하면 이 적벽가의 대목처럼 한문 고사성어 투성이인 경우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우리의 판소리인데 우리 겨레의 많은 사람이 모르거나 잊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판소리는 또 서양 성악가들이 놀랄 정도의 대단함이 있다.


우선 서양 성악은 각자의 성부가 있다. 테너, 바리톤, 베이스가 있는가 하면 여성은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앨토 등으로 나뉘어 있다. 각자 자기의 노래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판소리는 혼자서 전 성부를 다 소리내야 한다. 더구나 판소리 한마당을 완창하려면 혼자서 3~4시간 정도 소리를 해야 하는데 정말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성악은 곱게 목소리를 다듬어 노래를 하지만 판소리는 소리를 내지르고 있다. 폭포소리를 이겨내고, 피를 토하는 악전고투 끝에 걸걸한 소리로 변해야 만이 제대로 득음을 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럼 판소리는 무엇일까?

판소리란 부채를 든 한 사람의 창자(唱者:소리꾼)가 고수(鼓手:북치는 사람)의 북장단에 맞춰 창(소리), 아니리(말), 너름새(몸짓)를 섞어 이야기를 엮어가는 극적인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소리꾼이 부르는 서사적인 노래를 한문으로는 잡가(雜歌), 본사가(本事歌), 창가, 극가(劇歌) 등으로 부르고 있으나 우리 말로는 판소리라 한다. 판소리란 넓은 마당을 놀이판으로 삼고 판을 벌여 하는 놀이를 판놀음이라 하고, 이 판놀음에서 하는 소리를 판소리라 한다.

판소리는 송흥록대(代)까지는 정확한 대본없이 스승으로부터 익힌 사설에다 구전가요나 재담 등을 즉흥적(卽興的)으로 삽입하여 구연(口演)되어 왔다고 한다. 이는 청중의 흥을 중시한 방법으로써 소리꾼(唱者)의 가변적(可變的), 즉흥적(卽興的)인 내용 바꿈을 허용하는 판소리의 특성이며 멋이다.

판소리의 역사

판소리는 18 세기 초(숙종-영조, AD 1674-1776)에 발생했다. 판소리는 그 발생의 바탕이 되는 옛날이야기(설화)를 바탕으로 하여 구전가요, 무가, 공연 현장에서의 흥을 위한 재담 등 여러 문화적 요인들이 첨가되어 발전돼왔다.

19세기에 판소리는 양반 청중들을 대상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이중 19세기 전반기를 권삼득 등에 의한 '전기 8명창시대'라 하는데, 각기 특색 있는 창법과 선율을 개발하고, 각 지역의 민요 선율을 판소리에 담아냄으로써 판소리의 표현력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이후 19세기 후반기를 박유전 등에 의한 '후기 8명창시대'라고 부른다. 이때 박유전에 의해 서편제 소리가 등장하였으며, 판소리는 더욱 다양하고, 흥행성 있는 예술이 되었다.

19세기 후반에 고종과 흥선대원군으로부터 많은 소리꾼들은 벼슬을 받기도 했다. 19세기부터 판소리의 주요 청중이 양반으로 바뀌면서 판소리는 사설, 음악, 무대 등에서는 진전을 이루었으나 민중적, 반봉건적 문제의식은 상당히 줄어들게 되었다.

조선 고종 때의 판소리 작가 신재효는 중인 출신으로서 판소리 광대를 적극 후원하면서, 양반들의 눈높이에 걸맞는 판소리의 개작을 시도했는데, 이때 판소리 6마당의 사설집이 만들어졌다.

20세기에 들어오면 김창환, 이동백, 김창룡, 김채만, 정정렬 등의 5명창 시대가 된다. 1902년 기생. 광대 등의 단체인 협률사가 만들어지면서 판소리는 극적 요소가 강한 창극으로 변신했다. 본래 광대는 남자들이 하던 것이었는데 진채선, 허금파, 강소춘, 이화중선, 박녹주 등 여창이 다수 등장하게 되었다.

8.15해방 후 판소리는 여성국극단(우리식 오페라)의 등장으로 한때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으나 1960년대에는 다시 쇠퇴했다. 그러다 1964년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여 판소리는 1970년대 이후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함께 새롭게 발전하고 있다.

판소리의 유파(제)

판소리가 전승되면서 전승 계보에 따라 음악적 특성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를 [제]라고 한다. 판소리의 전승은 대부분 도제형식 즉 직계, 친인척 등 혈연을 중심으로 가문 내에서 이루어져 왔으나 후대로 내려올수록 여러 스승에게 배워 섞어지기도 했다.

유파에는 동편제(東便制), 서편제(西便制), 중고제(中高制), 강산제(岡山制)가 있다.

동편제는 대체적으로 장단에 충실하고, 빠르며 발림이 적어 이른바 "들려주는 판소리"라 한다면, 서편제는 잔가락이 많고 장단이 느리며 발림이 많아 "보여주는 판소리"라 하겠다.

송홍록을 중심으로 운봉, 구례, 순창, 홍덕 등지에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지리적 구분은 후대에 와서 동.서 양쪽 가객들이 서로 이동하게 됨으로써 큰 의의는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동편제의 근대명창으로는 권삼득, 송홍록, 박기홍, 김세종, 송만갑을 꼽을 수 있다.

동편제는 통성(뱃속에서 바로 위로 뽑아내는 소리)과 우조(웅장하고 화평한 가락)를 중심으로 소리를 한다. 감정을 절제하는 창법을 구사하며, 소리가 웅장하고 힘이 들어 있다. 또한 발성의 시작이 신중하며, 귀절의 끝마침이 명확하고, 소리는 쭈욱 펴며, 계면조 가락이 별로 없다.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서 동편제의 창법과 가장 잘 조화되는 것은 '적벽가'이다.

서편제는 철종 때의 명창인 박유전에 의해 창시된 판소리 양대 산맥의 하나로, 광주, 나주, 보성, 강진, 해남 등지를 중심으로 이어져 왔는데, 이 지역이 전라도 서쪽에 있다 하여 서편제라 한다.

서편제의 특징은 동편제와 대조적으로 소리의 색깔이 부드러우며 구성지고 애절한 느낌을 준다. 소리의 끝도 길게 이어지며, 부침새의 기교가 많고 계면조(슬프고 애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음조로 서양음악의 단조에 가깝다)로 정교하게 부른다.

서편제의 창법과 잘 어울리는 창으로는 '심청가'를 꼽을 수 있다. 서편제의 명창으로는 박유전, 김채만, 이날치, 정창업, 김창환 등이 있다.

중고제는 김성옥으로부터 시작되어 김정근. 김창룡 등이 계승한 것으로 경기도 남부와 충청도지역에 전승된 소리인데, 그 개념이 모호하여 '비동비서(非東非西:동편제도 서편제도 아님)'로 표현된다. 창법은 동편제와 서편제의 절충형인 듯하나, 소리의 특징으로 보아 동편제에 가깝다.

강산제는 서편제를 시작한 박유전이 나이 먹어서 만든 유파로, 체계가 정연하고 범위가 넓다. 특색은 너무 애절한 것을 지양하여 점잖은 분위기로 이끌었고, 삼강오륜에 어긋나는 대목은 없애거나 고쳤다. 강산제의 대표적 판소리는 '심청가'이며, 명창으로는 박유전, 정재근, 정응민, 박춘성, 성창순, 성우향, 조상현 등이 있다.

판소리는 마당의 분위기에 따라 음악적 특징이 다른 조(調)로 소리를 낸다.

'우조'는 웅장하고 화평한 느낌을 주며, '적벽가' 중 적벽강에 불지르는 대목이 대표적이고, '평조'는 명랑하고 화창한 느낌으로 '수궁가' 중 토끼가 꾀를 부려 세상에 나오는 대목에 잘 맞다. 또 '계면조'는 슬프고 부드러운 느낌이어서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에 적절하고, '경드름'은 서울 가락이며, 경쾌한 느낌으로 몽룡이 춘향을 달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설렁제'는 경쾌하고 씩씩하며, 호탕한 느낌을 주어 '흥보가' 중 놀보가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에 잘 맞고, '추천목'은 경쾌한 느낌이어서 '수궁가' 중 토끼가 수궁을 빠져나와 자라에게 욕을 하는 대목에 기가 막히며, '석화제'는 평조와 비슷하여 명랑하고, 화창한 느낌으로 '수궁가' 중 토끼가 뭍으로 다시 돌아오며 기뻐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판소리에 쓰이는 장단은 가장 느린 진양조부터 시작하여 중몰이, 중중몰이, 잦은몰이, 휘몰이 등으로 빨라진다. 이 장단들은 박자, 빠르기, 북치는 법이 서로 다른데, 한가하거나 여유로울 때는 진양조로 하고, 긴박한 상황에는 휘몰이 장단으로 소리를 엮어 나간다.

덧붙이는 글 | 참고

판소리 : www.pansoree.com
판소리의 다섯마당 : www.pansori5.co.kr
Kevin의 우리사랑 : www.etckorea.com/1_dream/main_frameset.htm
디지털 국악신문 : www.kukak.co.kr

덧붙이는 글 참고

판소리 : www.pansoree.com
판소리의 다섯마당 : www.pansori5.co.kr
Kevin의 우리사랑 : www.etckorea.com/1_dream/main_frameset.htm
디지털 국악신문 : www.kuka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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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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