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중과 소리꾼이 하나가 되는 판소리

서양성악가도 놀라는 우리의 판소리 (2)

등록 2001.04.26 12:55수정 2001.04.2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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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의 종류

판소리에는 원래 [춘향가], [심청가], [홍보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타령], [옹고집타령], [무숙이타령], [강릉매화타령], [장끼타령], [배비장타령], [가짜신선타령] 등 열두 가지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춘향가], [심청가], [홍보가], [수궁가], [적벽가] 만이 불려지고 있고, 나머지 실전된 것을 박동진이 많은 노력으로 여러 바탕을 복원한바 있다.


춘향가는 12 마당 가운데 가장 유명한 소리이며, 많은 이본(내용은 같으나 부분적으로 차이가 있는 책)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 '열녀춘향수절가', 신재효 작 '춘향가', 정북평 창본인 '옥중가', 이선유의 '춘향가', 이해조의 '옥중화' 등이 있다. 춘향가의 주제는 사랑과 자유의 숭고함, 그리고 조선조 여인의 정절을 계몽하는 설화이다.

'심청가'는 역시 '춘향가'와 같은 시대의 작품이다. '심청가'는 효가 그 주제이지만, 그 이면에는 유.불교의 틈바구니에서 고민하는 인간상을 부각시키고 있는 작품이다.

심청가는 춘향가 다음으로 많이 불려지는 판소리로 이야기의 문학성과 소리의 음악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심청가는 슬픈 대목이 많은 계면조로 된 노래이다. 감정을 풍부하게 하여 정교한 장식음을 구사하는 대목이 많아서 웬만큼 좋은 목을 가진 명창이 아니고서는 부르기가 어렵다고 한다.

'흥보가(박타령)'의 주제는 형제간의 우애이며, 실학의 영향을 입은 근대적 경제사상이 강조되었다. 흥보와 놀보 형제를 등장시켜 엮어 나가는 이 이야기 속에서는 서민다운 재담이 가득 담겨있어서, [흥보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서 가장 민속성이 강한 마당으로 꼽힌다.

흥보가에서 유명한 소리 대목은 놀보 심술, 돈타령, 흥보가 매맞는 대목, 중타령, 중이 집터 잡는 대목, 제비 날아드는 대목, 제비 노정기, 박타령, 비단타령, 화초장 타령,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 따위를 들 수 있다.


수궁가(토별가)의 내용은 별주부(자라)가 용왕의 병을 고치고자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데리고 간다는 것으로, 충성이 일종의 주제인 듯하면서도 문인과 무인의 다툼 속에 우매한 지도자를 풍자한 작품이다. 수궁가는 서민의 애환과 풍자가 넘치는 작품으로서 조선후기의 사회상을 예리하게 해부, 고발한 작품이다.

적벽가(화용도 타령)은 중국의 고대소설 [삼국지] 중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크게 패하는 대목이 그 내용으로 예부터 양반 귀족들이 즐겨들었다고 한다. 특히 빠른 장단에 웅장하고 씩씩한 호령조를 많이 사용하는 가장 남성적인 판소리이다.


조조가 일방적으로 강등되어 조롱거리가 되고 있으며, 권력에 의해 전쟁에 동원되어 죽음으로 내몰리는 민중들의 한(限)과 이에 대한 항의와 풍자가 주제이다. 이 적벽가는 [삼고초려], [장판교 싸움], [군사 설움타령], [적벽강싸움], [화용도] 이렇게 5대목으로 나눌 수 있다.

변강쇠가(가루지기타령, 횡부가)는 음탕한 변강쇠와 음녀인 옹녀의 음란한 생활을 묘사한 것인데, 표면적으로는 성과 육체를 부정한 듯한 내용이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오히려 그것을 긍정하려는 듯 보이며, 실학 사상의 흔적을 엿 볼 수 있다.

장끼타령(자치가)는 장끼가 까투리의 이야기로 남의 충고도 들어야 하며, 지나친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등의 교훈적인 내용이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여성의 정조관념에 대한 풍자와, 기층 민중에 대한 참혹한 수탈의 양상을 아울러 함축하고 있는 작품이다.

배비장타령은 소설 배비장전이 남아있어 내용을 상세히 알 수 있다. 양반의 비장인 배비장은 도덕군자인 체 하는 사람으로 주색을 멀리하고 도도하게 지내는데, 기생 애랑과 방자의 계교에 의해 애랑의 집에 찾아갔다가 알몸으로 뒤주 속에 갇힌 채 온갖 망신을 당한다는 내용으로 유교의 형식주의적인 관념에 대한 비평이다.

옹고집타령은 내용은 인색하고 고집세고 욕심많은 불효자인 옹고집을 한 도사가 도술로서 개과천선시킨다는 것인데, 조선조 후기에 등장하기 시작한 서민 부자층의 극단적인 이기심과 사회의 일반적 통념을 벗어나는 행동이 서민들의 반감을 사게되어, 신랄한 풍자의 대상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릉매화타령은 1992년 [강릉매화타령]의 사설을 바탕으로 한 [매화가]라는 소설이 발견되어 그 전모를 알 수 있게 되었다. 타락한 인물인 골생원에 대한 풍자와 희화화를 통하여, 삶의 건전성과 균형감각을 일깨우고자 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왈자타령(무숙이타령)은 서울 장안의 왈자(술과 노래와 기생들을 즐기던 사람) 무숙이의 얘기로 새로이 등장한 평민 부호층의 삶에 대한 균형 감각을 일깨우고자 하는 의도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숙영낭자타령(가짜신선타령)은 한 어리석고 못 생긴 이가 신선이 되려고 금강산에 들어가, 한 늙은 선사의 지시로 천세해도(복숭아)와 견일주란 술을 얻어먹고 신선이 되는 줄 알았으나, 결국 죽고 말았다는 내용이며, 현실에서 도피하여 무릉도원에 일신을 맡기려는 조선조의 지식인들을 풍자한 작품이다.

판소리의 구성요소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소리꾼'은 소리판에서 소리판을 이끌어 가는 주체. 창자(唱者) 또는 광대(廣大)라고도 한다. 소리꾼은 오른손에 부채를 들고, 창과 아니리, 너름새, 발림을 섞어가며 소리를 한다.

'창'이란 판소리에서 노래로 부르는 부분을 가리킨다. 판소리는 창과 아니리를 번갈아 부른다. 창은 어떤 장면을 확대 부연하여 정서적 긴장과 감흥을 유발시키는 구실을 한다.

'아니리'는 소리를 하는 도중에 북은 치게 놓아두면서 말로 하는 부분을 말한다. 아니리는 시간의 흐름이나 장면의 전환 등 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구실을 하고, 특히 해학적인 대목은 아니리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리 중 노래처럼 부르는 대목도 있는데 이는 '도섭'이라고 한다.

'너름새'는 판소리 창자가 소리하는 도중에 하는 몸짓을 말한다. 소리꾼이 하는 우는 연기는 우는 흉내만 낼뿐이다. 이처럼 비사실적이며 극도로 상징화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연극과 다른 점이다.

'발림'이란 판소리를 하는 도중에 춤추는 동작을 말한다. 이 발림은 거의 제 자리에 서서 하는 미미한 동작으로 지나쳐서는 안 된다.

'고수(鼓手)'는 소리꾼의 소리에 장단을 맞춰주는 사람이다. 고수는 연출가인 동시에 지휘자로 북반주는 명창의 소리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고수는 추임새를 넣어 소리꾼이 소리를 신명나게 할 수 있도록 이끈다. '북장단'은 적벽가 등에서 수많은 군사들이 싸우는 장면은 북가락을 힘차고 복잡하게 쳐주고, 심청가에서 떡방아 찧는 소리를 부를 때는 떡방아 소리같이 들리게 쳐준다.

또 소리꾼의 소리가 느려진다면 고수는 약간 빨리 쳐주어 빠르게 이끌어가고 빠르면 늦춰주면서 속도를 조절한다. 반대로 소리꾼이 기교를 부리기 위해 속도를 늘일 때 북장단도 같이 늘어지기(따라치기)를 하고, 소리꾼이 잘못하여 박자를 빼먹거나 늘였을 경우 얼른 이를 가늠하여 맞춰주기도 하는데 이를 '보비위'라고 한다.

'추임새'는 소리 도중에 고수와 청중이 하는 '얼씨구','좋다!', '으이!', '그렇지!','아먼' 등의 감탄사를 가리키는데, 이 추임새는 민요, 잡가, 무가 등 여러 성악곡에서도 볼 수 있다. 추임새라는 말은 '추어주다' 에서 나온 것으로 칭찬해주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추임새는 소리꾼과 청중의 흥을 돋구는 중요한 요소로 판소리에서는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북을 치는 대신에 추임새를 넣기도 하며, 상대역의 대사를 대신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춘향가 중에서 어사와 장모가 상면하는 대목을 볼 수 있다.

소리꾼: "어디를 갔다가 인제 오는가 이 사람아 ! "
고 수: "서울갔다 오네, 이 사람아.'

부채는 판소리에서는 의미있는 소도구로 사용된다. 오른손에 든 부채는 바람을 부치는데 사용하기도 하지만, 편지 읽는 대목에서는 편지가 되고, 노를 젓는 대목에서는 노가 되며, 톱질하는 대목에서는 톱이 된다. 심봉사가 어린 심청이를 안고 다닐 때는 심청이 이기도 하는 고도의 상징성을 띠는 물건이다. 발림시에 부채를 활짝 폈다가 접기도 하면서 상황을 유도하는 등 아주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청중'은 소리판의 중요 요소이다. 청중과 소리꾼, 고수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됨으로 소리판이 완성된다. 청중도 추임새를 하는데 놀보가 흥부를 두들겨 패는 대목에서 "저런 나쁜 놈 !"이란 말매(말로 때리는 매)를 놓으며, 소리를 친다.

최근에는 창작판소리가 발표되기도 했다. 김지하의 담시 '오적(五賊)', '똥바다', '소리내력' 등은 '소리꾼 광대' 임진택과 고수 이규호에 의해 판소리로 불려졌다. 지난 1980년대 국내외에서 모두 160여 회에 걸쳐 공연을 가짐으로써 많은 대중들이 판소리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판소리의 소리꾼으로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은 사람은 정광수(수궁가), 박동진 (적벽가), 한승호(적벽가), 오정숙(춘향가), 성창순(심청가), 조상현(심청가) 등이 있다.

우리의 판소리는 서양성악과는 많이 다르다. 앞편에서 얘기했듯이 혼자서 전 성부를 감당한다든지, 곱게 다듬어서 내는 소리가 아니라 내질러서 피를 토하듯 내는 소리임이 다르다.

그것뿐이 아니다. 성악은 성악가가 노래하면 조용히 듣고 있다가 다 끝난 다음에 박수를 치고 격려를 하지만 판소리는 소리를 하는 도중에 청중들이 추임새로 소리꾼과 하나가 된다. 청중은 감상을 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처음부터 소리판을 같이 이끄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이 크게 다르다.

풍물굿처럼 연주자와 관객이 따로가 아니고 하나가 되는 즉 '대동 한마당'이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는 우리 문화의 중요한 뿌리가 된다. 우리는 이제 판소리의 재미에 빠져 민족문화의 한 복판에 서 있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참고

판소리 : www.pansoree.com
판소리의 다섯마당 : www.pansori5.co.kr
Kevin의 우리사랑 : www.etckorea.com/1_dream/main_frameset.htm
디지털 국악신문 : www.kukak.co.kr

덧붙이는 글 참고

판소리 : www.pansoree.com
판소리의 다섯마당 : www.pansori5.co.kr
Kevin의 우리사랑 : www.etckorea.com/1_dream/main_frameset.htm
디지털 국악신문 : www.kuka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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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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