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부터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3000여 명이 내 개인 홈피 <글나라>를 다녀갔다. 그저 호기심으로, 또는 인사 치레로 한 번씩 다녀가신 분들이 다수겠지만, <글나라>를 장식하고 있는 갖가지 수많은 글들을 고루 읽어보기 위하여 여러 차례 방문하신 분들도 꽤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매일같이 평균 10명 정도의 방문객 수가 기록되고 있다.
내 개인 홈피 <글나라>에는 아직 내용물을 채우지 못한 일부 '주막'을 포함하여 도합 46개의 주막이 설치되어 있다. 이들 중에 가장 최근에 신축한 것으로 '성인방'이라는 간판이 걸린 집이 있다.
이 집에 대한 홍보를 최근 여러 인터넷 사이트와 태안군청 홈피의 '홍보 마당'에도 올렸고, <태안문학회> 홈피 <백화 마을>의 '자유 게시판'에도 올려놓았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신 문화의 가치를 추구하고 사회 공동선을 지향하기 위한 것이므로 좀더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개인 홈피 <글나라>에 '성인방'을 신축하게 된 동기 역시 우연한 착상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해미에 있는 천주교 '생매장순교성지'에 가서 깨끗하고 맛좋은 물을 내 승합차 가득 길어다가 도합 열다섯 집과 나누어 먹는 일을 6년째 하고 있는데, 최근 생매장순교성지를 새롭게 꾸미는 공사 상황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나와 순교성인들과의 각별한 '인연'을 떠올린 탓이었다.
한국천주교 200주년이었던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우리 한국에 오시어 103위 순교 성인들에 대한 '시성식'을 거행하시던 그 광경을 지켜보았던 내 기억은 언제나 명료하다. 그때 그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103위 순교 성인들의 생애』라는 5권으로 된 책이 출간되었는데, 영광스럽게도 풋내기 작가였던 나도 필자로 참여하여 17분 성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그 일의 현실적인 보람으로 또 한번 '가난 고개'를 넘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내 약력 소개가 나가는 지면마다 '성인전' 집필 사실을 감추곤 해왔다. 특정 종교에 관련하는 사항인 데다가 창작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런 것이지만, 천주교 계통 지면에서도 굳이 그래온 것은 내가 과연 성인전을 집필할 만한 사람인가라는 신앙인으로서의 일종의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주제넘고 외람되다는 생각에서 정말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물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실 나는 신앙인으로서 너무도 부족함이 많다.
그럼에도 나는 올해부터는 '성인전' 집필 사실을 내 약력에서 감추지 않기로 했고, 급기야는 개인 홈피에 '성인방'을 새로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주제넘고 외람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참으로 성인들을 본받는 삶을 살고자 하는 내 의지의 적극적인 표현이기도 할 터이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는 사순 시기이다. 천주교 신자들이 극기와 절제와 기도와 단식 등으로, 일년 중에서 가장 열심히 자신의 신앙을 꽃피우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사순절을 의식하고 내 홈피에 '성인방'을 신설하는 작업을 한 것은 아니었다. 작업을 하다가보니 내가 올해 사순절에 이런 작업을 하게 된 것에서 한결 즐거운 기분도 갖게 되었다.
나는 방금 '즐거운'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내게 있어 인생은 참으로 '고해(苦海)'다. 기쁜 일보다는 슬픈 일이 너무도 많다. 울울창창한 가시덤불이고 진구렁이기도 한 슬픔의 강을 허우적이며 살다보니 남들이 이해하지도 동정하지도 않는 신세 타령도 많이 하며 산다.
그런데 풋내기 작가 시절에 내가 집필했던 열일곱 분 순교 성인들의 이야기를 컴퓨터로 다시 정리하여 홈페이지에 올리는 작업을 하면서 새롭게, 참으로 죄스러워지는 현상을 경험했다. 내 삶을 슬퍼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나를 크게 각성시켰다. 순교 성인들의 비참함과 처절함이 극에 달한 그 삶과 죽음 앞에서 어찌 내가 내 생활을 슬퍼할 수 있는가! 어찌하여 나는 내 현실의 목적을 위해 기도하는가! 내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그런 생각들이 바늘 끝처럼 내 가슴을 찌르는 듯함을 참으로 통절히 경험했다.
그리하여 이제부터는 내 삶의 곡절들에 대해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겸허와 관용과 인내와 온유의 가치만을 생각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박해에 의해 순교하는 시대가 아니므로, 스스로 자신을 죽이며 사는 것이 순교적 삶이므로, 그것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달아 나의 모든 욕심을 버리며 살기로―회오와 갱신의 의미를 뜨겁게 되새겨볼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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