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신지요.
복철에 산고(産苦)들을 치르시느라 고생들이 크실 줄 압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요즘 소설보다는 '언론 개혁' 관련 글들―소설보다 더 생생하고 생명력이 있을 것으로 확신하는 '산 글'의 생산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젊은 문학도)의 지적처럼 거의 폭발적으로 글을 쓰고 있지요.
지금까지 (단시일 동안) 20여 편의 글을 썼는데, 앞으로도 수십 편은 더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제가 그만큼 '언론 개혁'이라는 이름의 화두를 오늘의 최대의 명제로 인식하고 있기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언론 개혁은 오늘의 가장 중요한 대명제이자 시대적 당위입니다.
오늘의 이 기회에 언론 개혁만 잘 이루어 낸다면 우리는 잃었던 민족 정기를 되살릴 수 있는 터전을 닦는 계기도 힘차게 가져올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의 언론 개혁 운동에 모아지고 있는 '민중적 에너지'가 참으로 소중하고 숭고하게 느껴집니다.
또 그래서 저는 더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뜨거운 사명감으로 이 '민중적 에너지'를 보태고 키우는 일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언론 개혁은 결코 정치 차원의 일이 아닙니다. 안티조선 운동으로부터 시작되어 언론 개혁 운동으로까지 발전한 이 민중적 에너지의 압력에 굴복한 정부가 드디어 언론사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단행함으로써 언론 개혁은 새로운―한 차원 도약할 수 있는 전기를 맞게 되었고, 아직도 언론 권력에 도취해 있는 족벌 신문들의 후안무치한 저항과 여기에 오로지 정략적인 술수만을 가지고 부화뇌동하는 한나라당의 반역사적인 작태로 말미암아 일부 국민들에게는 정치 문제, 또는 당파 싸움의 한 양태로 비치고 있을 뿐이지요.
그리고 여기에 족벌 언론들이 그들의 충실한 하수인인 일부 문인들과 얼빠진 교수 학자들을 동원하여 악령이니, 홍위병이니 하는 난삽한 궤변들을 퍼뜨리는 바람에 지식인 사회에서 (또는 인터넷 세상에서) 일대 논쟁이 벌어지는 상황이 전개되어 그것이 일부 국민들에게는 국론 분열 현상으로 보이는 것이지요.
또 병든 족벌 신문의 대표격인 조선일보가 '국론 분열'이라는 허접쓰레기 같은 화두를 무슨 비장의 무기인 양 단단히 틀켜쥐고 확대재생산을 계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저는 조선일보 등 족벌신문들이 국론 분열, 과열 논쟁, 적 만들기와 편가르기 현상을 안타까워하는 척하면서 오히려 그것을 조장하는 행위를 가소롭게 보는 한편, 차라리 잘됐다 싶은 느긋한 마음으로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이 다수 국민 여론과 맞서며 조세정의를 우습게 알고 부정하면서 탈세 언론사들을 악착같이 비호하려는 그 작태는 족벌 신문들의 영향력과 함께 내년 말로 다가온 차기 대선에서 DJ혐오증의 진구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영남쪽의 지역감정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저의를 깔고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사실 그것을 가장 많이 염려했습니다. 이 숭고한 언론 개혁 운동 속에 '지역감정'이라는 이름의 악령이 끼어들어 훼방을 치고, 민중적 에너지를 훼손하면 어쩌나 하고 몹시 노심초사했지요.
그래서 저는 우리 나라의 지역감정 문제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가장 겸허하게 성찰을 해야 할 영남 사람인 이문열씨가 아직까지 한 번도 그 문제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뇌를 해 보지도 않고, 오히려 언론 개혁이라는 숭고한 시대적 명제를 훼방하며 영남의 지역감정에 안주하고 부추기는 행태를 보이는 것에 대해 더더욱―참으로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그래서 그 부분을 적시하여 언급하는 글을 쓰기도 했고요.
그러나 저는 이제 그것을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미 너무도 저차원의 문제로서 우리가 너끈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언론 개혁 운동을 잘만 추진하며 승화를 기한다면, 우리 운동 속의 요소요소에 잠복해 있는 지역감정 문제를 훌륭히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조선일보가 보여 주고 있는 요즘의 태도에서 저는 그것을 간파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지역감정'이라는 이름의 보도(寶刀)는, 또 거기에다가 '색깔론' 이라는 이름의 장검도 이미 녹슬고 날이 무딜어진 무기로 파악했는지, 아니면 자기네들은 가만히 있어도 한나라당이 그 낡고 이빨 빠진 무기를 도맡아 양손에 들고 대신 계속 써먹느라 진땀을 빼고 있기 때문인지, 그쪽으로는 바람을 일으키지 않고 '국론 분열'과 '편가르기'만을 부각시키느라 애를 쓰고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일이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모두>에서 읽은 '흠' 선생의 글에서도 같은 생각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만, 아주 이참에 '편가르기' 구도를 좀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지역감정 구도만 아니라면 다 좋다는 생각입니다.
개혁세력과 반개혁세력, 통일세력과 반통일세력으로 오늘의 편가르기 구도를 명확하게 하자는 얘기지요. 그런 편가르기 구도만 확실하게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망국적이고 비극적인 지역감정 구도를 말끔히 퇴화시키고 극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분명한 하나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다소 불필요한 이야기입니다만, 제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지와 격려를 보내 주는 분들의 다수는 놀랍게도 경상도 분들입니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지요하의 참된 세상 꿈꾸기'라는 고정 코너가 만들어지게 된 것도 경상도에서 사시는 한 분 기자님의 안내 덕분이고요. 전 이런 사실들이 그저 흥겹기만 합니다.
한국의 소설작가 여러분 님들.
오늘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언론 개혁을 포함한 총체적인 '개혁'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다음의 가장 중요한 명제는 무엇이겠습니까? '민족 통일'이 아니겠습니까?
오늘의 언론 개혁을 추진하는 진보세력은 개혁세력이고 통일세력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항하고 훼방을 놓으려는 세력은 반개혁세력이고 반통일세력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참에 그런 구도의 편가르기를 아주 명확하게 해 놓는 것이 백번 좋습니다.
진보에 대항하는 것은 보수세력이라고요? 천만에요.우리 나라에 진정한 보수가 있습니까? 보수라는 이름의 틀거지 안에 진정으로 보수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절대로 없습니다. 있다면 속이 훤히 보이는 수구일 뿐이고, 조선일보식의 썩은 기득권일 뿐입니다.
우리는 오늘 진구렁 속의 수구와 가시덤불 속의 썩은 기득권을 말끔히 청산해야 합니다. 우선은 참된 언론 개혁으로 그것의 시초를 열고 터전을 닦아야 합니다.
저는 이런 생각과 신념으로 언론 개혁 운동에 동참하고 최선을 다해 저의 의견과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같은 문인으로서 복거일, 이문열, 이인화 씨 등의 망발과 요설을 가만히 참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우선은 가짜 지식인들의 궤변과 망발과 요설들을 주요 타킷으로 삼았습니다.
한국 문단에서 덩치가 매우 크거나 어지간히 큰 편인 그들은 발행 부수가 무려 200만부가 넘는 대형 신문들을 포대 삼아 메가톤급 대포를 쏘아대는데, 시골 반딧불이 같은 이 소졸한 문사가 겨우 인터넷 상에서 소총 들고 싸우는 형국이어서 참 멋적고 힘드는 노릇이었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저의 양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소총 진지나마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 여러 사이트들을 부지런히 돌아다녔습니다. 처음에는 인터넷이라는 무기에 익숙치 않은 50대의 이 늙은 병정에게 여러 유명 사이트들로 안내해 준 고마운 젊은 병사들 덕분이었지만요.
그러나 우리 <한국소설가협회>의 홈피는 제게 이미 익숙해져 있는 진지였습니다. 저는 안티조선 운동 사이트인 <우리모두> 다음에는 으레 '한소협'의 진지로 달려오곤 했습니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지요하의 참된 세상 꿈꾸기'라는 이름의 제 포대가 마련되기 전까지는 그랬지요.
물론 조심스럽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많이 망설이기도 했고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명색이 대한민국 소설가들의 모임체인 <한국소설가협회>라는 이름의 사이트에 오늘의 최대의 화두인 언론 개혁과 관련하는 글들이 하나도 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이상한 적막감도 느꼈습니다.
자유게시판 화면에 내 글만 연달아 계속 오르는 현상에서 야릇한 고독감도 느껴야 했습니다. 내 글에 아무도 지지하고 격려하는 말 한마디 달아주지 않는 현실에서 가슴 뻐근한 오기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한국 소설가 사회가 왜 이렇게 조용할까요? 사실은 한갖 실수일 뿐인 이문열씨 등의 메가톤 급 포탄이 너무 무서워서였을까요? 같은 문인들끼리 서로 싸우는 형국을 보이기가 싫어서였을까요? 아니면 매사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타성 때문이었을까요?
그런 의문들에 시달리면서도 저는 계속 한소협의 진지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저 혼자서만이라도 한소협의 진지에서 살아 있는 '언어의 총'을 계속 쏘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 그러기로 어기차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제동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월하인'이라는 익명을 쓰시는 분이 제게 '그만하기를' 권고했던 거죠. 저는 그분이 익명을 쓰는 것이 좀 서운했고, 또 내 글들을 '정치적인 발언'으로 파악하는 것이 못내 아쉽고 안타까웠지만 ("평화로운 소설가협 게시판이 선생님의 정치적 발언으로 소란스럽게 느껴지네요."라는 표현에서 '무풍지대의 너겁이 가득한 우물 속 정경'이 연상되었지만), 저는 그의 권고가 비교적 '예의'를 갖춘 것이어서 일단 그 권고를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지요. 그리고 그날로 '한소협'의 진지에서 철수한 다음 곧장 새 진지로 삼은 <민족문학작가회의>사이트로 달려갔더랬습니다.
거기에서는 환영받는 느낌이 실팍하였습니다. 저를 열렬히 지지하고 격려하는 답변글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부지런히 소리를 질러대고 났더니 마치 그 덕분인가 싶게 언론 개혁에 대한 <민족문학작가회의> 명의의 '성명'이 나오더군요.
내가 마치 그 일에 큰 몫을 한 듯싶기도 하고, 참으로 흐벅진 기분이었습니다. 나도 <민족문학작가회의>의 회원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다행스럽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한소협'의 진지에서 철수를 한 후로도 매일같이 틈만 나면 '한소협'의 홈을 열고 진지를 살펴보곤 했습니다. 혹 회원 작가 한 분이라도, "어떻게 한 사람의 한마디 말에 그렇게 쉽게 철수를 할 수 있느냐. 계속 글을 올려 달라"는 말을 올릴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혹시나가 역시나더군요.
그리고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언론 개혁지지 성명을 발표한 후 며칠이 지나도록 <한국소설가협회>는 그저 '꿀먹은 벙어리' 형국이로군요.
저는 정말이지 '한소협'의 홈에서 '무풍지대의 너겁 가득한 우물 속 정경'을 보는 것만 같은심경입니다. 이런 느낌을 갖는 제가 나쁜 걸까요?
저는 오늘을 사는 작가들이 당대의 현실 문제에 둔감하거나 눈을 감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무감각 무관심 모두가 작가로서는 '죄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언론 개혁 정도의 사안이라면 작가님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발언을 해야지요. 전면에 나서기가 싫으시면 내 발언에 간단하게 답변 한마디라도 달아주셔야지요.
현실 발언은 절대로 소설가들의 금기 사항이 아닙니다. 그리고 소설만이 발언의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고 황순원 선생님이야 오로지 모든 발언을 소설 하나로 국한시키셨지만, 그것은 그분의 독특한 고집이었을뿐 전적으로 옳은 것만도 아니라고 전 봅니다. (그것과 관련하여 족벌신문 <중앙일보>에서 '미당문학상'과 함께 '황순원문학상'을 제정하는 것에도 아주 특이한 의미 구조가 스며 있지 않나 하는 의심도 듭니다.)
<한국소설가협회>의 회원 작가 동지 여러분, 우리의 소설문학을 위해서, 소설문학의 좀더 질적인 현실 지평을 위해서 우리 다같이 언론 개혁 운동에 동참합시다. 그저 '평화롭기만 한 소설가협의 게시판'에 언론 개혁을 소망하는 발언들 좀 올립시다. 몹시 추해진 김동길 씨의 말을 흉내내는 것이 썩 즐겁진 않지만, 도대체 "이게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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