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부화장이 어디에요?"

발트어에 대한 상식 몇 가지1

등록 2001.09.04 20:59수정 2001.09.0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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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a diena!
한 한국인이 이런 문장을 어딘가에서 보았다고 치자. 이 말이 어느 나라말인지, 행여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우리가 익숙한 서유럽권의 언어는 아닌 것 같고, 러시아어도 아니고, 그렇다면 이건 북유럽이나 우리가 모르는 슬라브어 중에 하나이려니 대충 생각을 하기가 쉽다. 위에 보는 문장은 여러분이 아마도 난생 처음으로 접하는, 발트어 중의 하나인 리투아니아어로, 그 중에서도 인사말이다. 라바 디에나! (안녕하세요!)

발트어라고 한다면 ‘공식적으로’ 지금 리투아니아어와 라트비아어 밖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현재 칼리닌그라드 지역에 살고 있던 프러시아인들과, 요트빙게이족 등 다양한 민족이 발트어를 쓰는 민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인접하는 슬라브인들 그리고 그 지역을 거점으로 무역을 했던 독일인들과의 융화 등으로 현재는 사라져버린 상태이다.

프러시아인들이라고 알려진 민족은 세계사를 풍미한 그 프러시아인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폴란드 동쪽지역에서 시작해 현재 칼리닌그라드와 리투아니아의 국경지대까지 넓게 걸쳐 거주했던 종족으로, 서유럽사람들이 접했던 최초의 발트인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대문서에 나타나는 발트인들에 대한 언급은 주로 이 지역에 살던 프러시아인들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프러시아인들은 현재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독일인들이 소리나는 대로만 기록해 놓은 문서 몇 개가 프러시아어의 자취를 보여주는 기록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리투아니아어와 라트비아어는 한 어군으로서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만, 각자의 언어로 ‘인사한 후, 소개하고, 이름 말하고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물으면’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차이가 있다.

리투아니아 인사말은 Laba diena, 반면 라트비아 인사말은 labdien(라브디엔)! 리투아니아어로 ‘내 이름은 ...입니다’는 Mano vardas yra ..... (마노 바르다스 이라 .....), 라트비아어로는 Mans vards ir ............. (만스 바르스 이르..........), 이 정도가 되면 ‘어 비슷하네’하는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리투아니아사람과 라트비아사람은 이쯤에 러시아어로 이야기를 시작하든지 아니면, 서로의 말을 배우든지, 통역을 써야 한다.

물론 비슷한 단어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정확한 의사소통이란 단순히 단어나열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기록상에 의하면 이 두 나라 말은 같았었는데, 16세기 정도부터 달라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스토니아어는 리투아니아어, 라트비아어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완전 다른 차원의 언어이다. 에스토니아어는 유럽 내 대부분 민족이 구사하고 있는 인도유럽어족에도 속하지 않는 언어로서 핀란드, 헝가리 등과 같이 ‘핀우구르’어라는 독특한 어족을 이루고 있다. 즉 에스토니아어는 발트어가 아니란 이야기이다.

리투아니아 사람이건 라트비아 사람이건, 에스토니아말을 들으면 정말 ‘한마디도’ 못 알아듣는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만나면 인사를 ‘Tere(떼레)’ 이런 식으로 인사하며, ‘내 이름은 ...입니다’라는 말을 하려면, ‘Minu nimi on....(미누 니미 온..)하는 좀 이상하게(?) 들리는 문장을 사용한다.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다른 두 나라의 언어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문법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언어의 느낌이나 어투로 볼 때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인다. 리투아니아어의 경우, 전반적으로 입술소리와 비음이 두드러지고, 그 소리들이 웅얼거리듯이 들리는 특징이 있다.

리투아니아어는 다른 언어와 좀 다르게 ‘성조’ 비슷한 것이 있다. 정확히 어느 위치에 떨어지는 액센트 규칙이 있는데 아니라, 단어마다 또 그 단어의 성과 격에 따라 액센트의 위치가 달라지므로 외국인에게는 그놈의 액센트 배우기가 아주 고역이다. 중국어처럼 뜻의 변화가 확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개중에 액센트를 잘못 넣어주면 이해를 좀 달리할 수 있는 단어가 있긴 하다.

예를 들어, “여기 길 건너는 곳이 어디 입니까?”라는 말의 액센트를 잘못 넣으면, “여기 부화장이 어디에요?”하고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거리 한가운데서 이런 말을 하면 부화장이 어디냐고 이해할 리는 없지만, 주변에 양계장이 있다면 문제가 다르다.

에스토니아어와 라트비아어는 무조건 각 음절의 첫음절에 액센트가 오므로 액센트 규칙을 외우느라 고생할 염려는 없다.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어는 액센트의 모습이 비슷하므로, 라트비아어는 얼핏 에스토니아인이 자기식 액센트로 말하는 리투아니아어처럼 들리는 경우가 있다.

라트비아어는 이미 게르만어와 스칸디나비아어와의 영향으로 리투아니아어와 같은 고전적 모습은 많이 실종했고, 단어들도 게르만어와 스칸디나비아어와 유사한 것들이 많이 있다. 라트비아아는 혀 끝에서 맑고 짧게 발음하는 쯔, 스, 즈 소리가 많은 것이 특징이고, 그런 경쾌한 소리들이 명백한 액센트로 발음되므로 처음 듣는 경우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흉내내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가 있다(이건 100% 필자의 개인의견이다).

라트비아에서마저도 그나마 그 지저귀는 언어를 많이 들을 수 없는 이유는, 라트비아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러시아인들 때문이며, 사정을 잘 모르는 이방인은 라트비아어가 러시아어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는데, 그 사람은 러시아말을 듣고 있는 것이다. 라트비아의 러시아인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

라트비아말 느낌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문장은 가게에서 가격을 물어볼때. “찍 막사....” 한국어로 옮겨놓으면 좀 우스꽝스럽게 들릴지 몰라도 현지 라트비아인이 발음하는 문장은 정말 예쁘기 그지 없는 표현이다. 혀를 윗니에 대었다가 떼면서 '찍’하고 맑고 짧게 발음해보자.

라트비아어 같은 경우, 모음의 장단이 명사와 동사의 의미변화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동사변화에서 짧게 해야 할 모음을 길게 하거나 하면, 현재형과 과거형을 제대로 전달시켜 주지 못할 수가 있으므로 주의해야한다.

밥을 ‘먹을’ 것인지 밥을 ‘먹었는지’ 얘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밥하는 사람이 피곤하다. 모음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에스토니아어이다. 한국어에는 없는 여러 가지 다양한 모음들이 이어지는데, 그런 단어를 읽고 나면 목 깊은 곳이 칼칼해진다.

에스토니아어로 크리스마스 인사말을 배워보자. ‘Haid joulupuhi(해이드 외울루퓌히)’ 편의상 ‘외’자로 적었지만, 그 소리는 트림이 시작하는 목 깊은 곳에서 나오는 ‘외’와 ‘의’의 중간발음이다. 장단모음의 분화 역시 에스토니아어의 특징 중 하나이다.

이런 어려운 말을 전혀 모른다고 발트지역 여행하는 것을 겁낼 필요는 없다. 영어보급률이 비교적 높고, 혹시 러시아어를 알면 과거 이 지역이 소련공화국이었던 당시 공용어인 적이 있었으므로 수월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발트사람들은 발트어를 쓴다.

이 나라 사람들에게 러시아어를 쓰느냐고 물어본다면, 우리에게 한국사람들은 일본어를 쓰냐고 물어보는 것만큼 기분이 나쁠 것은 당연하다.

덧붙이는 글 | 지면에서는 별도로 표기하지 않았지만, 발트어에도 별도의 특별한 표기가 있음을 알아두기 바랍니다. 
발트3국에 대한 필자의 홈페이지 Http://my.netian.com/~perkunas

덧붙이는 글 지면에서는 별도로 표기하지 않았지만, 발트어에도 별도의 특별한 표기가 있음을 알아두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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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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