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국 설에 등장한 새로운 유행들

<베이징 리포트> 중국의 종합예술장터, 미아오후이

등록 2002.02.14 09:10수정 2002.02.16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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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벌써 설연휴가 끝났다고 하는데, 중국은 아직도 삼일이나 더 남아 있다. 공식적인 연휴는 이번 주 금요일까지이지만 토, 일요일이 원래 공휴일인지라 앞으로도 삼일은 더 놀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베이징 거리는 지금도 ‘설축제’ 분위기로 가득하다.

설 며칠 전부터 은근히 ‘끼’를 보이던 감기기운이 급기야 설을 불과 이삼 일 앞두고 온 몸을 기습하더니 그대로 꼬박 사나흘을 몸져 눕고야 말았다. 계절마다 한 번씩 걸렸던 감기가 어째 이번 겨울에는 무사히 넘어가나 했더니, 재수없게도 설날을 골라 습격할 건 또 뭔지.

다행히, 초반에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독한 약을 열심히 복용한 덕분인지 오늘 아침에는 입맛도 돌고 제법 기운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사나흘을 누워만 있었더니 허리도 아프고 머리도 지끈거리는 게 아무래도 햇살을 쬐야지만 정신이 맑아질 것 같다.

설 전야에 곳곳에서 쏴댄 폭죽소리도 안 들릴 만큼 약에 취해 잠들었는데, 지금은 그 폭죽소리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기도 하다. 귀청이 떨어질 것 같아서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중국에서 맞는 설은 이 폭죽소리를 안 들으면 어째 설을 쇤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늦은 아침을 먹고 거리로 나오니 햇살이 아주 따뜻하다. 내가 누워 있던 며칠 동안에도 이렇게 따뜻했을 햇살과 그 햇살 아래로 설맞이 축제를 즐기러 나왔을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니 영 배가 아프다. 그래도 감기란 놈이 설연휴가 끝나기 전에 물러가 준 것이 고맙기만 하다. 안그랬으면, 그나마 남은 축제도 즐기질 못했을텐데.

중국 설날에 서는 종합예술장터, 미아오후이(廟會)

ⓒ 박현숙
중국에서는 설을 춘지에(春節)라고 부른다. 이 춘지에 기간 동안 베이징을 비롯하여 중국 전역은 온통 빨간색이다. 집문 앞마다, 창문마다 붉은색의 춘리엔(春聯)이 걸리고 거리에는 홍등이, 식당과 상점 등에도 갖가지 길조를 나타내는 문양이나 그림 등이 모두 붉은색을 한 채 내걸린다. 사람들이 입는 설빔의 색깔도 붉은 색깔이 가장 많다. 그래서 중국의 설연휴 동안 눈 앞에 펼쳐지는 색깔은 거의가 다 붉은색이다.

올해, 중국인들이 맞는 설은 지난 해보다도 훨씬 더 풍요롭고 행복해 보인다. 아무래도 지난 해 좋은 경사들이 많아서인 것 같다. 특히 올림픽 유치에 성공을 한 베이징인들이 맞는 설은 유난히 더 행복해 보인다. 이러한 풍경은 설을 전후해 열리는 곳곳의 미아오후이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금도 한창 성황중에 열리고 있는 올 설 미아오후이는 그 행사내용들이 예년보다 훨씬 다채로워지고 국제화된 느낌마저 주고 있다.

중국의 설풍경 중에는 요란한 폭죽소리 외에도 미아오후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독특한 풍경이 있다. 미아오후이는 옛날에 젯날이나 정해진 일정한 날에 절안 또는 절 부근에 임시로 설치하던 시장을 뜻한다. 이것은 또한 중국 민간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던 가장 오래되고 전통적인 시장의 하나이기도 하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차오양공원에서 열리는 미아오후이에 갔더니, 이곳에서는 중국의 전통적인 설 미아오후이 풍경보다는 각국의 특색 있는 음식들을 파는 노점도 눈에 띄고 러시아 가무단의 공연, 그리고 서양의 광대 분장을 한 사람들이 공원 안을 행진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중국의 미아오후이가 점차 국제화돼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아오후이는 아직도 중국의 전통적인 민간문화예술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 박현숙
잠시 미아오후이가 생기게 된 유래를 살펴보면, 중국 봉건시대에는 도시 내에 일반서민들의 일상적인 모임과 교류를 위한 비교적 규모가 큰 공공장소가 매우 적었다고 한다. 때문에 서민들은 주로 절을 찾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사람들은 복을 기원하고 근심을 없애는 등 심리적인 위안을 찾는 한편으로 각종 종교적 기념일에 즈음해 신을 맞는 대회나 모임을 열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미아오후이의 기원인데 즉 이러한 모임을 계기로 해서 여러 민간단체들이 조직되었고 새로운 민간오락문화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미아오후이는 중국 일반서민들의 민간풍속활동 및 놀이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고대의 도시 안에는 오늘날과 같은 상업적인 판매망이 없었기 때문에 이 미아오후이를 중심으로 정기적인 시장이 형성되었으며 각 사찰마다 교대로 돌아가면서 미아오회이를 개최함으로써 미아오후이는 도시 내의 상업적인 연결망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미아오후이가 열릴 때마다 이곳에서는 각종 민간예술공연도 열렸는데 예를 들면 서커스나 가무대회 등이 그것으로 오늘날까지도 중국민간예술의 정수로 내려오는 것들이다. 즉 미아오후이는 본격적인 중국 민간예술을 탄생시킨 요람이기도 했다.

오늘날 미아오후이는 보통 설날을 전후하여 열리고 있으며, 그 의미와 내용도 많이 변화되었다. 즉 옛날과 같은 종교적 행사나 장의 역할, 오락장의 구실이라기보다는 다분히 볼거리와 먹거리 등이 풍성한 설맞이 세속행사로 변화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미아오후이는 중국의 전통적인 풍경들을 간직하고 있는 서민들의 축제의 공간임에는 변함이 없다.

설 기간 중 중국의 거의 모든 주요 공원과 사찰 등에서는 이러한 미아오후이가 개설되며, 이곳에서는 각종 전통민속놀이뿐만 아니라 전통음식, 설용품들을 판매하기도 한다. 때문에 최근에는 베이징을 중심으로 설 기간에 미아오후이 관광상품도 개발되고 있을 정도다.

올해 베이징의 설 미아오후이는 최근 년 들어 가장 규모가 크고 각 미아오후이마다 다양하면서도 독특한 행사내용을 가지고 열리고 있는데, 이것은 역시 베이징의 위상이 예년과 같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라도 설 기간 중 중국을 여행오는 사람들이 있다면, 반드시 한 번쯤은 이 미아오후이를 구경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보는 재미와 먹는 재미, 그리고 함께 참여해서 어울려보는 재미가 정말로 여간 재미있는게 아니다.

게다가 이 미아오후이는 중국의 전통적인 민간오락문화들이 총 집합되어 있기 때문에 몇 군데 특색 있는 미아오후이 관광만으로도 중국의 전통문화와 놀이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감기로 놓친 며칠간의 설축제들이 아쉬워 느즈막이 나선 미아오후이 관광에서 의외로 많은 즐거움들을 보상받고 왔다. 미아오후이는 굳이 동행이 없더라도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는 공간들이며 혼자서도 무료함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많은 흥겨운 볼거리들이 기다리고 있다.

올 설, 중국에 나타난 새로운 유행들

ⓒ 박현숙
미아오후이 관광을 나서면서 길거리에 지나가는 중국인들의 설빔을 보니 많은 사람들이 당나라 시대의 전통의상들을 입고 있다. 지난 해 10월에 열린 상하이 APEC회의에서 각국의 정상들이 바로 이 ‘탕쭈앙’(唐裝)이라고 불리는 당조시대 전통의상을 입었는데 그 이후 바로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이 탕쭈앙이 유행되었다. 올 설에 길거리에서 최신 유행하고 있는 설빔도 바로 이 탕쭈앙이다.

처음에 각국 정상들이 입고 선보였을 때만 해도 참 신선하다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일종의 유행패션이 되다보니 그 신선함이 다소 떨어지는 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탕쭈앙이 풍기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 때문인지 설연휴 베이징 길거리에서 유행하고 있는 탕쭈앙의 물결도 유행이 내포하고 있는 획일적인 느낌보다는 아직은 상큼한 인상을 많이 주고 있다.

올 설에 유행하고 있는 또 한 가지 현상은 기이하게도 얼마 전에 새로 나온 유로화이다. 이 유로화로 아이들 세배돈을 주거나 주변 친우들에게 선물을 하는 것이 올 설 중국의 최신 유행 중 하나라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상하이의 한 신문에서는 “올해 설에는 무엇을 선물할까요? 유로화를 선물하세요”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각 은행창구마다 설을 앞두고 유로화를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는 보도도 있다. 참 기이한 일이다.

왜 유로화를 선물하는 것이 최신 유행이 되었는지 그 구체적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중국신문들의 해석에 따르면, 새로 나온 유로화가 이쁘기도 하고 화폐가치도 있을 뿐더러 이제 막 새로나온 돈이기 때문이란다. 탕쭈앙의 유행은 얼핏 이해가 가겠는데 뜬금없는 유로화의 유행이라는 것은 조금 알쏭달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이것 역시 올 중국 설에 유행하고 있는 신풍속도라고 한다.

ⓒ 박현숙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면 말과 관련된 사자성어 덕담들을 주고 받는 것. 이들 말과 관련된 사자성어 중 가장 쉬우면서도 흔하게 쓰이는 새해 덕담은 바로 ‘馬到成功’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달려오는 말처럼 올 한해동안 빠른 성공을 이루라는 뜻이다. 연초 중국인들이 주고받는 연하장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성어이기도 하다.

올 한해 동안 이 사자성어의 뜻처럼 빠른 성공을 이룰 수 있을지는 장담을 못하겠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에게는 벌써 좋은 일이 생겼다. 귀여운 첫 조카가 이제 막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다는 것이다. 설 내내 온식구들을 애먹이고 자기 엄마를 며칠간 많이 아프게 했던 이 귀여운 조카님이 오늘 새벽에 드디어 얼굴을 보였다는 기쁜소식이 전해져 왔다.

공주님이란다. 나는 고모가 되고, 우리 엄마 아빠는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우리 엄마가 그러시는데, 나의 이 첫 조카의 출산과정이 날 낳을 때랑 상황이 너무나 비슷하단다. 나도 엄마를 꼬박 삼일간 애를 먹인 뒤에야 세상에 삐죽 얼굴을 내밀었다고 하는데 이 조카님도 바로 그렇단다. 그러면서 이 조카가 날 닮은 것인지 아니면 며느리가 당신을 닮은 것인지 모르겠다며 여하튼 첫 조카에게 줄 선물을 꼭 사오라는 당부를 하신다.

아무렴요. 그나저나 말의 해에 났으니 말인형을 사가야 하나 아니면 말들이 그려진 이쁜 옷들을 사가야 하나. 아니면 또 말들이 하늘에서 달리고 있는 말모빌을 선물해줄까.

내일은 우리 조카님 줄 선물을 사러 다시 한번 미아오후이에 가봐야 할 것 같다. 중국사람들은 자신들의 첫 조카에게 무엇을 선물하는지, 물어봐서 괜찮다 싶으면 우리 말띠 공주님에게도 중국에서 온 고모의 첫 중국식 선물을 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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