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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로 돈을 잘 벌지만 괴팍한 성질에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하는 아버지 로얄 테넌바움. 슬하의 세 남매는 놀랍게도 어린 나이에 금융, 희곡, 테니스 분야에서 이름을 날린 천재들이다. 남편의 불성실함에 아내는 이혼을 요구하고 별거에 들어간다.
가족과 떨어져 22년 동안 호텔에 머물러온 아버지. 일에서 실패하고, 가지고 있는 돈이 바닥나자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에 아버지는 남은 시간이 6주밖에 없는 시한부 생명임을 내세우며 집으로 들어온다. 흩어져 살던 세 자녀도 집으로 모이게 된다.
두 아들과 딸. 어린 천재는 간 곳 없고 모두들 자신의 상처에 파묻혀 힘들기만 하다. 큰 아들 채스는 비행기 사고로 아내를 잃고, 살아남은 두 아들과 함께 긴급 대피 훈련을 하며 그 기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입양된 딸 마고, 그 누나를 사랑하는 작은 아들 리치. 모두 아프기만 하다.
빈털털이가 돼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를 받아들이기란 당연히 불가능한 일. 그러나 아버지는 애를 쓴다. 손자 둘을 데리고 나가 악동짓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자녀들에게 무언가 말을 붙이며 다가가려 노력한다. 그러나 22년 세월은 너무도 긴 시간. 자녀들의 마음은 꽁꽁 얼어붙어 있을 뿐이다.
말기암 환자라는 것이 거짓으로 드러나고 아버지는 가방을 챙겨들고 집을 나온다. 그리고는 자신이 머물던 호텔 엘리베이터 안내원으로 취직한다. 찾아온 아들이 이제는 엘리베이터 안내원이냐고 묻자 아버지는 대답한다. '가족에게 존경받고 싶은 거지. 누군가 좀 알아 주었으면 하는 거다…'
로얄 테넌바움은 22년 동안 혼자 아이들을 기르며 살아온 아내를 붙잡고 싶었으나, 결국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재혼식에 참석한다. 그 자리에서 교통 사고를 당할 뻔한 손자들을 구하게 되고 큰 아들 채스와도 화해한다.
아버지가 자신이 살아온 시간들을 후회하며 무작정 가족들 사이로 들어갔을 때 아무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 사이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 주었을까. 그것은 다 버리는 것이 아니었을까. 빈 손, 빈 몸으로 엘리베이터 안내원이 되기로 한 것처럼 아내의 앞 날을 위해 기꺼이 이혼 도장을 찍어주고, 자녀들의 좌절과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 빈 마음이 아니었을까.
첫 아이를 낳았을 때 무한한 기쁨과 함께 밀려드는 두려움이 있었다. '아, 이제 이 아이를 내가 죽을 때까지 벗을 수 없는 책임과 사랑으로 돌봐야 하는구나' 그런 어마어마한 부담 때문에 아이는 그렇게 예쁜 짓을 해서 두려움을 지워주는 모양이다.
그 아이가 자라서 또 다시 자신의 가정을 이루고, 나이 들어가는 부모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느끼게 될까. 받은 사랑과 함께 노년을 돌봐드려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리지 않을까. 가족은 이래서 때로는 짐이며, 때로는 가장 든든한 울타리인가….
그렇기 때문에 로얄 테넌바움 가족들의 이야기는 평범한 내 가정의 이야기일 수 있겠다.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 보려고 노력하는 마음만 있다면 말이다. 자꾸 받으려고만 하는 내 마음을 끊임없이 비우려고 한다면 말이다.
잘못 살아왔다고 후회하며 가족에게 돌아오고 싶어했던 아버지. 자신이 가족들간의 연결 고리가 돼서, 마지막 땅에 묻히는 날 가족들을 빠짐없이 모이게 한 그는 분명 웃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The Royal Tenenbaums 로얄 테넌바움 / 감독 웨스 앤더슨 / 출연 진 해크만, 안젤리카 휴스톤, 기네스 팰트로, 대니 글로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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