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적 금욕정신과 자본주의

<즐거운 책읽기>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등록 2002.04.25 10:55수정 2002.05.0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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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경제에 미치는 힘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며, 종교를 정의하는 것은 오히려 경제였다" 조르주 바다유 「저주의 몫」p.162

1904-5년 어간에 쓰여진 이 책은, 출간된 이래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켜왔다. 왜냐면, 저자는 이 책에서 근대적 자본주의 정신과 직업사상에 입각한 합리적 생활방식이 바로 기독교적 금욕 정신에서 탄생한 것이라 논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분량도 얼마 되지 않는 책이 그토록 유명해진 까닭은 뭘까(실제로 이 책은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각주를 빼고 나면 불과 147쪽 밖에 되지 않는다). 아마도 그 이유는 저자의 치밀한 논증과 일관성 있는 서술, 전에 없이 새로운 사회 분석 방법, 광범위한 사회과학적 지식의 동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저자 베버는 법학, 정치학, 경제학, 종교학, 역사학 등 다양한 사회과학 분야에 걸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베버의 해박함이 바로 이 책을 통해서 유감 없이 발휘된 것이다.

더구나 맑스주의의 유물적 역사관과는 달리 그는 다원주의적 설명 방식을 취함으로써 사회를 여러 원인들에 의해 규정되는 것으로 보는 총체적 사회분석의 길을 열어 놓았다.

저자는 다른 곳에서는 나타난 적이 없던 근대 서구 자본주의의 특이성에 주목한다. 즉 형식적으로 자유로운 노동의 합리적인 자본주의적 조직화가 그것이다. 오직 서구에서 시민,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가 존재했기에 규칙적으로 훈련된 노동력, 기업 안에서의 일상화되고 계산된 관리가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그때문에 저자는 노동의 합리적 조직화를 갖춘 착실한 부르주아 자본주의의 기원을 문제삼고 탐구하려 했던 것이다.

연구를 통해 그가 밝혀낸 것은 개신교도들이 이러한 자본주의 조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었다.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가, 그것도 루터파가 아닌 칼뱅파의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과연 칼뱅파의 영향을 받은 지역이라 할 수 있는 네델란드, 영국, 미국 등이 대체로 다른 지역보다 먼저 산업 발달을 이루어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저자가 보기에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칼뱅파에 속한 신교도들이 직업(소명)을 절대적인 자기 목적으로 여기도록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교육받아 내면화시켰기 때문이었다. 직업을 소명으로 여기는 자라면 어떻게 하면 되도록 편안하고 적게 일해서 정해진 보수를 받을까 하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직업 자체가 소명이고 보면, 근면하게 일하는 것은 신의 영광을 위함이요,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길이었다. 이는 세속적 직업에서의 의무이행을 도덕적 자기증명이 가질 수 있는 최고 내용으로 평가한 것이다.

이리하여 신교도에게는 노동 자체가 종교적인 의미를 갖게 되면서 신성시되었다 할 수 있다. 여기에다 예정설에 입각한 현세적 금욕주의가 덧입혀지면서 직업노동을 최고의 금욕적 수단이자 동시에 거듭난 자와 그 신앙의 진실성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명이라고 간주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단적인 예로 엄격한 칼뱅주의의 지배를 7년밖에 받지 않았던 네델란드에서도, 종교적으로 독실한 사람들은 거대한 부에도 불구하고 소박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막대한 자본축적열이 일어날 수 있었다.

맨 뒷부분에 부록으로 수록된 유명한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해설이 읽을 만하다. 그는 베버와 이 책이 갖고 있는 위치, 이 책에 대한 논쟁 지점들을 조목조목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기든스는 이 책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갖기 쉬운 오해로 베버가 칼뱅주의만이 근대 자본주의 발전의 유일한 원인으로 간주했다고 보거나, 아니면 일본과 같은 근대 국가들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유사한 것이 없이도 급속한 경제발전을 경험했다는 지적을 꼽는다. 그는 이에 대해 베버의 의도와 논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평가라는 점에서 무가치하다고 일축하고 있다.

다만, 기든스 자신이 이 책에 대해 지적하는 문제는 루터교에서 '소명' 개념의 독특성, 가톨릭과 규칙화된 경영활동간의 친화성의 결여라는 주장, 테제의 핵심인 칼뱅주의 윤리가 현실적으로 베버가 상정한 방식으로 부의 축적을 존엄시했던 데 기여한 정도 등이다.

말미에서 베버는 프로테스탄트적 금욕이 그 형성과 특성에서 사회적 문화 조건 전반, 특히 경제적 조건을 통해 영향 받은 방식도 밝혀져야 할 것이라면서 하나의 과제를 남겨 놓았다.

따라서, 저자가 말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가 근대 서구 자본주의를 형성하는 데 중요하게 기여했다는 점과 함께, 그 밖의 다른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했다는 것도 함께 심도 있게 연구되어야 할 것 같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인문사회과학총서 1

막스 베버 지음, 박성수 옮김,
문예출판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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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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