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사구시의 좀 더 깊은 뜻 (2)

<평미레> 실사(實事)는 '참되게, 힘있게, 쓸모있게 일을 이루기'

등록 2002.05.28 10:32수정 2002.05.2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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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實事)

'수학'이나 '호고'와 마찬가지로 '구시'도 '동사+명사(목적어)'의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사(實事)'라는 말의 구성도 그와 같을 것이라는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실(實)은 동사이고 사(事)는 명사로서 실(實)의 목적어가 된다는 말입니다.

물론 앞의 국어사전들은 이런 해석방식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냥 실사(實事)를 사실(事實)이라는 복합명사로 풀어버렸습니다. '실사'를 '실제의(實) 일(事)'이라고 푸는 것은 그 문법구조를 '관형사+명사'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대구를 이루는 네 개의 구절 중에서 다른 세 개는 '동사+명사(목적어)'의 형태인데, 실사(實事)만 '관형사+명사'의 구조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사(實事)도 역시 '동사+명사(목적어)'의 구조를 이루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실사(實事)의 사(事)는 명사로서 목적어를 이룹니다. 사(事)가 명사일 때에 보통 '일'이라고 새깁니다. 존재론적인 개념으로서의 사(事)는 보통 물(物)과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물(物)이 오감으로 감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상이라면 사(事)는 사고와 추리로 인식이 가능한 추상적인 대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물(事物)이라고 하면 구체적이고 추상적인 모든 인식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 됩니다.

'일'로서의 사(事)가 목적어라면 그 목적어를 취하는 동사 실(實)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실(實)의 동사적 의미를 보기 위해서는 그 어원적 의미와 한국어 새김상의 의미와 어법상의 의미들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글에서 저는 실(實)의 어원적인 뜻이 '집에 쌓아둔 돈꿰미'이며 그로부터 '벼리로 관리되는 가용한 자원'이라는 해석을 이끌어 냈었습니다. 또 실(實)자의 한국말 새김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서 '여물다/영글다'라는 서술어 새김이 '열매'라는 명사어 새김으로 바뀌는 과정을 추적했습니다. 그러나 '여물다/영글다'와 '열매'의 의미론적인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음도 밝혔습니다.

한편 저는 실(實)자가 들어간 한자어 90여개를 살피면서 이를 통해 실(實)자의 어법적 의미를 여섯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있는 그대로이다,' '씨가 있다,' '꽉 찼다' 등의 세 가지 뜻은 다소 구체적인 의미입니다. '참이다,' '힘(영향력)이 있다,' '쓸모가 있다'는 세 가지 뜻은 다소 추상적인 의미입니다.

또 각각의 구체적, 추상적인 실(實)의 뜻 사이에는 연관관계가 성립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이다. 그래서 참이다,' '꽉 찼다. 그래서 참이다,' '씨가 있다. 그래서 힘이 있다'는 식의 의미쌍이 형성됨을 보였습니다.

실(實)이 가진 이런 다층적이고 다차원적인 의미를 고려하면 실사(實事)의 뜻이 좀더 명확해 지고 풍부해 질 수 있습니다.

우선 한국말 새김 '여물다/영글다'를 이용하면 실사(實事)를 '일을 여물게 만들다' 혹은 '일이 열매맺게 만들다'는 뜻으로 풀 수가 있습니다. '일이 되게 한다' 혹은 '일을 이룬다(成事)'는 말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일을 이룬다'는 성사(成事)의 뜻만으로는 실사(實事)의 뜻을 다 담아낼 수가 없습니다. 실사의 뜻을 다 보기 위해서는 한자어 어법에서 추출된 세 가지 의미쌍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실사(實事)란 일을 이루되(成事) 그 이루어진 일이 '참이어야 하며, 힘이 있어야 하며, 쓸모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다시 말해 '참되게 힘있게 쓸모있게 일을 이루는 것'이 바로 실사(實事)의 포괄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뜻입니다.

이 정도의 깊은 뜻을 가진 실사(實事)라는 말을 그저 사실(事實)정도의 뜻으로 격하시키는 것은 대단한 의미상의 낭비라고 봅니다. 적어도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말을 사용할 때만이라도 실사(實事)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사용하면 좋겠다는 것이 제 바램입니다.

완당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이상에서 실사구시(實事求是)가 '사실을 바탕으로 진리를 탐구한다'는 전통적인 해석을 충분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 대신 실사(實事)는 '일을 이루되 참되게, 쓸모있게, 힘있게 이루어내는 것'이며, 구시(求是)는 '사실을 밝히거나 정확한 개념정의를 내리는 것'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그럼 이런 새로운 해석은 그야말로 완전히 새로운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실사구시학파의 대표자로 불리는 완당 김정희의 저술에서도 비슷한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해석이 발견됩니다. 완당은 실사구시의 방법론을 중시한 나머지 <실사구시론(實事求是論)>이라는 책을 집필한 바 있습니다. 이 책은 불과 5백여자(한자)로 구성된 짧은 책이지만 실사구시의 개념을 파악하는 데에 중요한 단서를 줍니다.

이 책에서 완당은 "실사구시(實事求是)는 학문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길(學問最要之道)"이라고 전제하고, "사(事)에 실(實)하지 않고서 공허한 학문(空疎之術)을 쫓거나, 시(是)를 구(求)하지 않고서 자기가 먼저 받아들인 말(先入之言)만 옳다고 주장한다면 성현의 가르침(聖賢之道)에 어긋나지 않음이 없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사(事)에 실(實)하다'거나 '시(是)를 구(求)하다'는 표현은 앞에서 본대로 '동사+명사(목적어)'의 구문형태로 본 해석입니다. 앞서 본대로 '사(事)에 실(實)하다'는 것은 '일을 이루되 참되고, 쓸모가 있고, 힘있게 일을 이루다'는 뜻이고, '시(是)를 구(求)하다'는 말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찾는다' 혹은 '개념을 정확하게 규정한다'는 뜻으로 풀 수 있습니다.

또한 실사구시의 목표가 진리나 이치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런 궁극적인 학문과 실천의 목표로 이끌어 주는 방법론이자 하나의 단계라는 점도 완당에 의해 강조된 바 있습니다. 그는 <실사구시론>에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사용한 바 있습니다.

"성현의 길(聖賢之道)은 큰 집(甲第大宅)에 비유할 수 있다. 주인이 거하는 방에 들어가려면 대문(門)에 들어서 뜰(逕)을 지나야 한다. 훈고는 대문과 뜰과 같다. 일생동안 대문과 뜰에서만 분주하여 마루(堂)에 오르고 방(室)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이는 하인(僕)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학문을 할 때에 정밀하게 훈고하는 것은 방에 들어가는 일에 잘못됨이 없게 하려는 것이지, 훈고만 하고 끝내려는 것이 아니다."

실사구시라는 방법론으로서의 훈고란 궁극적인 학문, 즉 성현의 길(聖賢之道)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말이지요. 그 과정은 엄밀해야 하지만 거기만 머물러서도 안 된다는 것이 완당 선생의 가르침입니다.

한가지 지적해 둘 것은, 완당 선생이 학문 방법론으로서 푼 실사구시 개념은 사실 앞에 본 바대로 '구시(求是)'만 가지고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훈고라는 것이 결국 '사실의 추구와 개념 정리'라는 뜻이라면 구시(求是)만으로도 그 뜻을 넉넉히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참되고, 알차고, 쓸모있고, 힘있게 일을 이룬다'는 뜻의 '실사(實事)'는 한편으로는 학문을 위한 방법론 뿐 아니라 삶을 사는 방법론으로도 이해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학문의 내용과 목적으로 삼아도 부족함이 없는 개념입니다.

어쨌든 완당 김정희 선생도 실사구시의 뜻을 풀면서 '사(事)를 실(實)하고 시(是)를 구(求)한다'는 해석 방식을 사용한 바 있고, 그것을 궁극적인 학문을 위한 방법론으로 이해했던 것을 보았습니다. 이 글에서 제시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해석이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며 적어도 완당 선생의 해석을 훈고한 것이며 그것을 조금 수정하고 더 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덧붙임: 실사(實事)와 구시(求是)의 관계

끝으로 실사(實事)와 구시(求是) 사이의 관계를 살피고 글을 마치겠습니다. 앞서 보았듯이 '실사'와 '구시'의 관계를 반드시 인과관계로 보아야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앞의 '수학'과 '호고'를 반드시 인과관계로 볼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실사구시'를 반드시 '실사함으로써 구시한다'는 뜻으로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실사하고 구시한다'로 풀어도 그다지 틀린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실사구시는 '참되게 힘있게 쓸모있게 일을 이루고, 개념은 정확하게 정의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오늘날의 관행인 것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관행에 따른다면 실사구시는 '참되게 힘있게 쓸모있게 일을 이루어 냄으로써 개념 정의를 정확히 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저라면 여전히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정하지 않은 첫 번째의 해석을 따르고 싶습니다. '실사'는 '실사'대로 '구시'는 '구시'대로 좋은 말임에 틀림없으므로 어느 하나를 다른 하나의 수단이나 제한 조건으로 삼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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