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WTO 딜레마

<차이나소프트-경제1> 개방 앞두고, 안밖 문제 해결에 고심

등록 2002.05.29 18:09수정 2002.05.30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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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부터 마오쩌둥의 방조 아래 자행된 문화대혁명은 부자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심어준 10년이었다. 하지만 마오의 사망 이후 나약한 화궈펑 정권을 넘어선 덩 샤오핑은 무서운 속도로 중국 경제 발전을 추진했다.

덩샤오핑의 유산은 장쩌민은 물론이고 그의 경제발전 파트너인 주룽지에 의해 가속을 붙여왔다. 97년 말부터 시작된 아시아 금융위기는 물론이고 각종 위기 앞에서도 중화호의 속도는 꺽이지 않았다. 이미 몇 년 안에 일본을, 몇 년 안에는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반면에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중국 경제는 빈부격차 문제나 환경재앙 등의 원인으로 위기를 맞을 거라는 전망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이런 예측이 상당 부분은 서양에 의해 만들어졌고,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말이 오가는 순간에도 중국 제품은 동아시아 경쟁 국가들의 상품을 제치고, 서서히 세계시장에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중국 경제의 화려한 외양과 더불어 잠재되어 있는 지뢰밭을 살핌으로써 중국경제에 접근해 간다.

경제 부분에는 중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사안인 WTO가입 등의 현안을 비롯한 기본적인 문제를 포함해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문제 및 한국기업의 중국 진출 등의 이슈를 집중적으로 점검한다.

경제 1 -중국의 WTO 딜레마

2001년 중국에는 2008년 하계올림픽 개최권 획득과 사상 첫 남자축구의 월드컵 본선진출이라는 중대한 일이 있었다. 이 두 소식이 들렸을 때 중국인들이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리고 11월 11일에는 중국의 WTO 정식가입 소식이 들렸다.


이미 두 번의 거친 축제가 지났기 때문일까. WTO가입은 중국인들에게 그다지 큰 이슈로 작용하지 못했다. WTO 전신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가입하려 시도한 지 15년만에 이뤄진 성과지만 왜 중국의 이면에는 적잖은 불안함이 도사리고 있었을까. 100년만에 자율적으로 세계에 문을 열면서 근대에 겪었던 불행했던 역사가 다시 생각났기 때문일까.

베이징의 명동인 왕푸징에 자리한 왕푸징서점은 홍콩자본가에 의해 지어진 초호화 백화점 신둥팡스창(新東方市場)의 바로 옆에 자리한 6층짜리 건물이다. 5~6층에 위치한 음반이나 시디매장을 빼도 각 층이 우리 대형서점에 버금갈 만큼 크다.


지난해 이 왕푸징 서점의 입구에 있는 진열대에는 거의 모든 시간 중국의 WTO시대에 관한 연구 서적이 자리를 차지했다. 진열된 책의 종류만해도 200여종에 달했다. 각종 백서까지 합치면 중국의 WTO관련 서적은 천여종 이상이라고 봐도 된다.

물론 그 내용을 떠들어보면 형편없는 이야기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포스트WTO시대에 각종 세제의 변화에서부터 산업별 경쟁력 문제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점검되어 있다. 물론 모두가 WTO가입에 환호성만을 지른 것은 아니다. 소장파 경제학인 한더지앙(韓德强) 등은 중국의 대외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 등으로 WTO가입에 환호작약하기보다는 좀더 세심히 접근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리고 반년 정도가 흐른 지금 중국의 모습은 사실상 큰 변화가 없다. 과거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던 시기에 영국 등 서구 제국주의세력에 무참하게 당하면서 문호를 열었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중국은 만전을 기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포스트WTO시대 구상의 큰 축중의 하나는 경제주권을 지키면서 수년째 지속하는 7~8%대의 성장률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경제주권 문제는 아직까지 상처를 받지 않았다. WTO 가입 협상의 실무자인 롱잉투(龍永圖) 대외무역경제합작부 부부장은 2002년 5월 24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WTO와 21세기 중국경제' 토론회에서 WTO의 규정들이 개발도상국에게 불리하고, 분쟁조정 기구가 너무 유약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등 WTO에 대한 불만을 토론했다.

미국의 301조에 대응하는 유럽이나 일본의 조치가 WTO에 제소하기보다는 보복관세로 해결하는 것을 예로 들며 중국 역시 비슷한 입장을 취할 계획이다. 이미 미국의 철강제품 수입규제에 대해 중국 역시 수입규제로 대응하는 것에서도 그들의 전략이 나타난다. 특히 지적재산권에 대한 지나친 규제에 불만을 표시했다. 중국으로서는 WTO에 의존하기보다는 국제사회가 지역중심의 자유무역기구로 간다는 것을 감안해 중국 역시 아시아에서 자유무역기구를 만드는 안을 숙고하고 있다.

세계시장에 서서히 문을 열기 시작한 중국의 현재 상황은 거의 변화가 없다. 중국거시경제연구원 바이허진(白和金) 원장은 2002년 5월 27일 열린 '남방경제논단'에서 중국이 WTO가입후에도 7~8%의 성장을 하고 있으며 이 속도는 앞으로도 5~7년 가량 지속될 것으로 봤다. 다만 노동인구의 공급이 줄어드는 10년 후를 기점으로 성장이 둔화될 것으로 예상돼, 앞으로 이 시기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경제학자 샤오주오치(肖灼基)도 중국은 향후 7년간 7.2% 가량의 성장을 거듭해 2010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불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것은 중국이 개방이라는 단어를 경제로만 한정하고, 다른 요소를 배제할 때 나타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경우의 수다. WTO는 단순히 시장의 개방만이 아니라 모든 것의 개방을 말한다. 그린 라운드나 블루 라운드로 대변되는 이런 부수적인 문제에 대해 중국은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황사나 세계10대 오염도시 가운데 7개를 보유한 불명예를 가진 중국에게 그린 라운드는 치명적이다. 더욱 심각한 것이 노동문제다. 지금은 상당한 통제에 있는 노동문제만 하더라도 이미 심각한 수준의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 중국 노동자의 최저임금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보통 월 400위안이다. 선전(심천)이나 상하이 푸동 등 특구 가운데는 600위안에 달하는 곳도 많다.

하지만 중국 대부분 지역에서 최저임금에 못미치는 지역이 상당수다. 열악한 지역은 1시간에 1위안(한화 160원 가량)도 못미치는 가격에 일하는 노동자도 많다. 그들이 이 열악한 조건을 숙명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도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을 어디서나 쉽게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것은 경쟁력을 잃어버리는 산업에서 생산되는 실업자 문제다. 소장경제학자 한더치앙 등은 일찌감치 중국 석유산업의 경쟁력 문제를 지적하며 따칭(大慶) 등 중국 내 국영기업의 문제를 지적했었다. 그리고 그의 묵시록을 증명이나 하듯이 2002년 2월초 따칭(大慶)과 랴오닝성(遼寧省) 라오양(遼陽) 시에서 대규모 노동자 시위가 발생했다. 참가 인원은 각각 5만여 명과 3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질 만큼 거대한 시위였다.

중국 정부가 애를 끓이는 파룬궁 문제도 실업문제 등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멀린다 류 뉴스위크 베이징 지국장이 실업 급증과 보건제도 붕괴로 인해 파룬궁이 확산된다고 본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파룬궁 문제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헤어롱지앙이나 허난(河南)성은 동부나 중부에 있지만 낮은 생산기반으로 인해 실업자가 많고, 파룬궁 신도들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경제 자체의 관점에서 봤을 때도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미 무한 경쟁시대로 치달은 백색가전의 경우 하이얼 등 몇 개 기업이 선전하고 있지만 뛰어난 마케팅 능력을 가진 LG나 삼성 및 소니 등과 경쟁하기에 중국 기업의 능력이 아직 못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자동차의 경우 낙후한 시설과 운영체계를 가진 기업들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매수와 합병을 거듭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최근 중국의 3대 자동차메이커인 이치(一汽)■상하이(上海)자동차■둥펑(東風)자동차를 중심으로한 자동차그룹을 만들 계획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톈진(天津)자동차를 장춘(長春)에 있는 이치와 합병하고 베이징(北京)자동차를 후베이(湖北)성에 있는 둥펑에, 난징(南京)의 위에진(躍進)자동차를 상하이자동차에 각각 합병하는 계획이다. 6개의 큰 회사를 3개로 만드는 거지만 사실상 난립한 120여개 자동차 회사를 2~3개로 만들려는 계획으로 보면 된다. 규모가 큰 자동차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 합병을 거치지 않으면 중국에 눈독을 들이는 세계 자동차 선진국의 외풍을 막기 힘들다는 상황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빚어질 구조조정 문제는 갈수록 부담이 더해지고 있다. 이밖에도 농업문제는 물론이고, 선진국의 타깃이 되기 쉬운 금융문제 등도 중국의 부담이 적지 않다.

중국의 WTO가입은 대외신인도 향상은 물론이고, 자국의 경제체제의 개혁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노린 것이다. 거기에 무역최혜국대우를 통해 수출을 향상시키고, 개도국에 주어지는 일반특혜관세(GSP)의 혜택을 향유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혜택의 이면에 주어지는 독소를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이 이 독소를 풀어내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길로 갈 수 있을지가 향후 세계경제가 나아가는데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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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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