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들 모두에게 컴퓨터 한 대씩을 보급하겠다던 공약이 그야말로 공약(空約)이라는 걸 학교에 있는 사람 치고 모를 이가 하나도 없다. 교사에게 정말 컴퓨터가 한 대씩 주어지기는 했다. 486부터 펜티엄 쓰리까지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보화 기기만 주어지면 교육의 정보화가 다 이루어진다는 생각, 이것이야말로 교사와 행정가의 인식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다.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만나고, 자기 교과를 가르치는 일이다. 그런데 컴퓨터로 과연 인간과 인간의 만남을 어떻게 정보화하겠다는 것인가? 아이들 면담 기록을 작성하고, 가정 환경을 입력하고, 그런 것으로 끝일까? 컴퓨터로 정보화 할 수 없는 아이들과 교사의 정서적 교감, 가슴 찡한 울림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긴 컴퓨터를 이용하면 잡무의 정보화는 가능할 것이다. 모든 공문을 전산 처리하고, 통계를 내 보고하기는 수월할 테니까.
또 컴퓨터를 자신의 교과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기계만 주어진다고 교사가 교과와 관련된 소프트 웨어를 모두 만들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교과서 원문조차 전산화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교사 일인당 컴퓨터 한 대가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교단 선진화 작업이라며 멀티 미디어 시스템을 구축하느니 어쩌느니 하는 짓거리들이 자꾸 컴퓨터 업계와 교육관료 사이의 유착쯤으로만 생각되는 것은 나의 지레짐작일까?
하여튼 교사 일인당 컴퓨터 한 대의 공약은 비담임에게까지 한 대의 컴퓨터를 주는 것으로 넘어간다. 하긴 컴퓨터를 준다고 해도 놓을 자리조차 만만치 않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노트북을 주는 게 낫잖아. 데스크 탑은 놓을 자리조차 없는데 말야."
"걱정하지 마. 곧 사무기기 어쩌구 하며 책상도 큰 걸 줄 거야. 그래야 또 물건 구매를 할 수 있고, 구매를 해야 기업도 먹고 살 거 아냐."
"새로 주는 컴퓨터? 그거, 사회에선 이미 퇴물 돼버린 처치 곤란 컴퓨터 몇 대 버리는 셈잡고 주는 거 뿐이에요."
몇몇 선생들의 이야기 끝에 전산 담당 최 선생이 마무리를 한다. 하긴 최 선생 말처럼 사회에서 486 컴퓨터가 유행하면 학교에는 286이 들어온다. 펜티엄이 유행하면 386이다. 하긴 286이든 586이든 소용 닿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처음 컴퓨터가 등장했을 때, 어느 학교 한문 선생이 시험 문제를 컴퓨터로 찍어 깨끗이 뽑아 제출했단다. 일부러 대학가 앞의 복사집에 찾아가 레이저 프린터로 인쇄한 것이었단다. 그 당시만 해도 시험 문제는 으레 교사가 친필로 써서 복사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글씨체가 엉망인 선생은 시험 문제 내는 것이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그 한문 선생도 글씨가 별로여서 남보다 먼저 컴퓨터를 배웠단다.
출제된 문제는 고사계를 거쳐 교무부장 결재를 얻고, 마침내 교감에게 넘어갔다. 교감은 자기 전공과 다른 교과의 문제 내용을 알 턱이 없고, 그저 '다음 중에서 무엇이 아닌 것은 어느 것인가?'하는 식으로 부정으로 물어보는 문제의 '아닌'에 밑줄이 그어지지 않은 것이나 혹은 이원목적분류표의 수정한 것에 수정 날인이 제대로 되었나, 문항 배점이 맞게 되어 있나 하는 정도를 확인할 뿐이다.
그런데 결재 넘어온 시험 문제지들을 검토하던 교감이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한문 출제교사를 황급히 호출했다나. 영문도 모르고 불려온 한문 선생에게 교감이 노발대발하며 야단을 쳤다는데.
교감 왈,
"아니 이 선생, 아무리 시험 출제하기가 귀찮아도 그렇지. 참고서 문제를 그대로 복사해내면 어떡합니까? 선생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교감은 출제 원본을 마구 한문 선생 코앞에 흔들어대며 소리를 질렀는데,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하던 한문 선생 마침내 내막을 알고는 그만 배꼽을 잡고 자지러졌단다.
교감 선생은 너무나 깨끗이 인쇄된 문제지를 컴퓨터로 쳤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문제집을 오려 복사한 것이라고 오해하고 화를 낸 것이었단다. 한문 선생, 교감 선생에게 그 원안지는 문제집을 복사한 것이 아니라 컴퓨터로 쳐서 레이저 프린터로 뽑은 것이라고, 자기가 한자 글씨가 엉망이라 일부러 정성들여 친 것이라고 설명을 하자 비로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 했단다.
"아니, 한문도 컴퓨터로 찍을 수 있어요? 거 참 신기한 일이네."
그러더니 몇 년만에 정보화가 어떻고, 교사 일인당 한 대씩의 컴퓨터를 주겠다는 대통령 선거 공약까지 등장하더니, 급기야 생활기록부와 건강기록부를 비롯한 학교의 모든 문서를 전산화하겠다는 발표를 한다.
생활기록부 양식이 바뀌었으니 이미 지나간 학년까지 새로운 양식에 맞춰 새로 작성하라고 지시하여 교사의 노동력을 단순 옮겨쓰기 업무에 투입한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컴퓨터로 다시 생활기록부와 건강기록부를 입력하라는 타자 기능에 또 다시 교사를 활용할 것이 틀림 없다.
자동차를 너무나 애지중지하여 불면 날세라 들면 꺼질세라 늘 자동차 곁을 맴도는 사람이 있다. 조금만 차에 흠집이 가도 '어떤 놈의 새끼가 내 차에 이따위 짓을 해놓았느냐'며 펄펄 뛰는 사람, 그래서 퇴근 후 한 잔 하자면 차 때문에 안 된다고 지레 발뺌을 하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가끔 한 마디씩 한다.
"사람이 차를 부리며 살아야지 차가 사람을 부리며 살면 되나?"
무릇 학교 정보화도 마찬가지리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통해 교육이 이루어질진대, 정보라는 미명 아래 인간 관계를 기계화하는 것이 교육의 바탕이라는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학교 현장의 일들은, 결국은 컴퓨터라는 기계에 종속된 인간을 만들어낼 뿐이다. 인간이 기계를 다룬다는 생각 없이는 참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 기계란 어디까지나 인간의 사고와 정서적 관계를 보조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까.
모든 교사에게 컴퓨터 한 대씩 보급, 세계 최초로 전국 학교에 인터넷망 구축, 각 교실에서도 정보 검색 가능 어쩌구 하는 기사를 보며 갑자기 한숨이 나오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제 몇 달만 지나면 교실의 프로젝션 티브이는 먼지만 자욱하게 뒤집어쓰고 있을 것이고, 컴퓨터는 소프트 웨어가 없어 수업에는 전혀 소용이 없을 것이고, 그저 학년 말에 비디오나 보여주는 고급 모니터의 역할만 담당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정보화를 완수한 교단으로 자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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