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종이 길게 울린다.
저놈의 종소리는 꼭 오뉴월 쇠불알처럼 척척 늘어진단 말야. 이왕 시작 종인데 활기차게 행진곡 풍이면 좀 좋아. 아니면 차라리 왈츠로 하든지. 수업 시작부터 김 빠지게 저게 뭐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사방을 둘러본다. 대부분의 선생들이 주섬주섬 수업 자료를 꺼내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침 이번 시간은 비어있던 터라 나는 교무수첩과 학기 초 아이들이 쓴 자기 소개서를 펴들고 책상 가까이로 의자를 당겨 앉는다. 요즘들어 말썽을 피우는 아이들이 늘었다. 또 몇 녀석은 무슨 고민이 있는지 영 자리를 못 잡는 것 같다. 그 아이들에 대한 무슨 낌새라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학기 초 자기 소개서까지 다시 들춰보려는 마음에서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이들 사진을 뜯어보기도 하고 면담 때 기록한 사항들을 점검해보기도 하는데, 교무부장인 말뚝이의 자리 쪽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슬쩍 들어보니, 말뚝이가 여선생 한 명과 잡담중이다.
"노처녀가 좋아하는 차가 뭔지 알아, 김 선생?"
"글쎄요."
"하긴 김 선생은 유부녀니까 노처녀 얘기야 알 턱이 없지."
말뚝이 담배까지 척 빼물고 빙글거린다. 교무실은 금연구역이라고 해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담배 피울 권리도 있다고 오히려 큰소리니, 지금처럼 교무실에 자기와 여선생 한 명만 있을 때는 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아마도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하긴 책꽂이에 가려 엎드려 있는 내가 보일 리도 없겠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말뚝이의 농담에 점점 가속이 붙는다.
"녹차요? 아니면 대추찬가?"
김 선생이 맞장구다.
"대추차 좋지. 대추차야말로 정력에 좋다던데, 김 선생도 남편 대추차 좀 끓여 주나?"
말뚝이 농담이 진해진다.
"그러지 말고, 노처녀가 좋아하는 차가 뭐예요?
김 선생, 평소에 말뚝이와 친분관계를 유지해 온 터라 손발이 척척 맞는다. 그 친분관계 덕분에 김 선생은 늦게 출근하기도 하고 전일제 특별활동을 하는 날에는 아예 자기 반을 내팽개치고 남편과 어디 여행을 떠나기도 하지만, 교무부장인 말뚝이가 묵인하고 넘어가니 아무 문제가 없다.
"노처녀가 좋아하는 차는 아벨라."
말뚝이 천연덕스럽다.
"아벨라? 아밸라? 어머, 부장님도 참. 호호홋."
되묻던 김 선생이 꾸며낸 것 같은 웃음을 터트린다.
"노처녀니까 얼마나 애를 배고 싶겠어. 그러니 아벨라지."
말뚝이 친절하게 설명까지 덧붙인다.
의기양양해진 말뚝이의 농담은 이제 악셀레터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질주한다.
"유부녀와 무의 공통점은?"
".........."
"바람이 들면 버린다."
"호호홋."
"마누라와 팝콘의 공통점은?"
".........."
"첫째 공짜다. 둘째 맛은 없지만 자꾸 손이 간다. 셋째 다른 안주가 나오면 먹기 싫어진다."
"아이고, 나 참. 부장님 정말 웃기셔."
김 선생, 정말 우스워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그냥 웃어주는 건지 시시껍절한 농담에도 반응이 즉각적이다.
나는 더 못 들어주겠다 싶어 일부러 의자를 소리나게 밀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말뚝이 깜짝 놀라는 표정이더니 금방 여유를 찾고는 자리에서 역시 일어서며 기지개를 켠다.
"으으아. 이제 그럼 슬슬 교실에나 올라가 볼까."
그는 느릿느릿 교무실을 빠져나간다. 그가 무기로 사용하는 슬리퍼 소리가 갑자기 적막해 진 교무실에 가득 울린다.
수업이 없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가보다.
두 사람의 즐거웠던 잠깐 동안의 농담 덕분에 대한민국 중학교 수학시간 반이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 이내 교무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침묵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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