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 밖에 서서 콜라 '원샷'하기

<맛있는 추억> 콜라에 관한 두 번째 추억

등록 2002.07.30 13:47수정 2002.07.3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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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처음 프로야구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인천 어느 변두리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나와 내 친구들이 좋아하는 팀은 당연히 인천에 연고를 두고 있던 '슈퍼스타즈'였다.

그리고 이름 그대로 커다란 별 안에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긴 슈퍼맨이 야구배트를 들고있는 모양의 슈퍼스타즈 마스코트가 우리 동네 아이들의 공책과 책받침과 가방과 모자까지 가득 가득 넘쳤다.

그런데 뭔가를 가리고 호도하기 위한 방송의 노력도 꽤나 치열했는지 밤과 낮, 주말과 주중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는 TV프로야구 중계를 보면서 우리 동네 꼬마들이 그렇게 응원을 해도 슈퍼스타즈가 이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마도 투수력이 빈약했기 때문이었던 듯한데, 개막 전까지 슈퍼스타즈의 '에이스'라고 소개되던 '감'모라는 투수의 시즌 성적이 1승 10패였던 기억이 난다. 슈퍼스타즈가 아주 아주 현격한 차이로 전후반기 통산 꼴찌였음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그 이듬해, 재일교포투수 장명부를 영입하면서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비록 홈런타자는 없었지만, 슈퍼스타즈는 일주일 여섯 경기중 네 번 선발로 나오는 장명부와, 나머지 두 번 나오는 임호균이라는 투수의 호투에 힘입어 시즌 초반부터 '타이거즈'팀과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내가 난생 처음 현장에서 운동경기를 관전한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쓸데 없이 돈 깨진다'는 이유로 보이스카웃 입단도 허락하지 않았던 어머니가 나를 슈퍼스타즈 어린이 회원에 가입시켜주신 사연은 지금도 분명치 않다. 부모님 당신들부터 그 무렵의 '3S 정책'에 포섭되어 슈퍼스타즈의 팬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지만, 또 생전 운동이라고는 좋아할 것 같지 않던 심약한 안방사내 아들이 그나마 운동경기에 흥분하는 모습을 보고 고무되셨을 수도 있다.

어느날 30분 길을 걸어 학교에 도착해 책이랑 공책 따위를 책상 속으로 옮겨넣고 있을 때, 뒤따라온 옆집 어느 녀석이 조그만 쪽지 하나를 전해주었다.
"니네 엄마가 너 갖다 주래."

금방 얼굴 떼고 학교 보낸 아들에게 무슨 급한 사연이 있어 뒤늦게 등교 길 서두르는 옆집 꼬마에게 맡겨가며 쪽지를 보내셨을까, 갸웃거리며 열어본 쪽지에는 엉뚱하게도 이런 내용이 들어있었다.
"은식아. 슈퍼스타즈 어린이 회원 가입해도 된다."

참 재미있는 아줌마. 그날은 회원접수 마감일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어린이 회원에 가입시켜 달라고 졸라대며 애걸복걸한 것도 아니고, 언젠가 한 번 부럽다는 듯이 같은 반 친구가 어린이 회원 가입했더니 팀 자켓과 사인볼과 회원증 등등 선물이 푸짐하더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을 뿐이었다. 아마 그것도, 지금에야 생각하는 것이지만 아들이 이런 쪽지를 받으면 얼마나 좋아할까 하고 언뜻 생각하다가 즉시 행동에 옮긴 한 예일 것이다.

어쨌건 나는 그렇게 슈퍼스타즈 어린이 회원이 되었고, 그 어느 날 친구 한 녀석과 함께 슈퍼스타즈 모자와 자켓을 입고 쓰고, 그리고 슈퍼스타즈 가방에 과자와 콜라를 챙겨 메고 인천 공설운동장으로 갔다. 그날은 슈퍼스타즈가 '청룡'팀과 경기를 하는 날이었을 것이다.

어린이 회원증을 제시하면 30%쯤 되던가,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한 천 원 남짓 입장료를 내고 표를 끊어 경기장으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내 친구가 먼저 검표를 받고 안으로 달려들어갔고, 나도 표를 내밀었다.

표를 내고 운동장 안으로 막 한 발 들려놓는 순간, 검표원 옆에 서 있던 경찰아저씨가 나를 잡아 세우더니 전혀 뜻밖에도 나에게 가방을 열어보라고 했다. 경찰들이 흔히 지나다니는 대학생 또래 형이나 누나들 가방을 습관적으로 뒤지던 시절이었지만, 나는 국민학생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채 나는 가방을 열었고 이것저것 휘적거리던 그 의경은 의기양양하게 콜라병을 꺼내들었다.
"이건 갖고 들어가면 안돼."

흔히 과열되던 그때 프로야구 경기들. 유리병을 집어던지는 취객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히던 시절이었다. 정말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하던 일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여기서 다 마시고 들어가든가."

순간 신나게 뛰어들어간 친구를 불러 세우려 했지만, 역시 야구장에 처음 와보는 그 친구의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야속하게도 그 녀석은 이미 경기장 안으로 사라져버린 후였다. 그리고 그 친구 뒷통수가 사라진 바로 코 앞의 그라운드에서는 후끈 달아오른 환호성이 새어나오고 있었고, 손목에 찬 까만 플라스틱 전자시계 숫자는 경기 시작 십여분 전을 표시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나는 그 자리에서 콜라 병을 따서 마시기 시작했다.

"꼬마야, 좀 비켜서서 마셔라."
쥐방울만한 꼬마가 버티고 서서 실랑이를 하는 바람에 입장을 못하고 밀려 서 있던 아저씨들이 이제는 콜라까지 마시며 여유를 부리는 모습을 보며 기가 막혀 소리를 질렀고, 나는 화들짝 놀라 비켜섰다. 궁시렁거리며 구경하듯이 눈길을 던지는 사람들의 행렬 한 쪽에서 나는 급한 마음으로 콜라를 삼켜대고 있었다.

그런데 다 큰 지금도 나는 콜라 한 병을 다 비우지 못한다. 콜라뿐 아니라 탄산이 들어간 음료는 다 그 모양인데, 술로 치면 소주 한 병을 마시는 한이 있어도 맥주 한 잔을 '원 샷'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꼴깍거릴 때마다 따갑다 못해 쓰린 식도. 그것을 1.5리터씩 한 번에 들이키는 사람들은 신기하다 못해 기괴해 보인다.

그래서 바로 그날, 나는 그 의경 앞에서 콜라 한 병을 비우느라 무슨 사약이라도 마시는 듯 굳은 얼굴로 딱 한 모금씩 뱃속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한 모금 삼키고 숨 한 번 몰아쉬고, 또 시계 한 번 보고 경찰 얼굴 한번 쳐다보는 식이었다. 그러나 마셔도 마셔도 콜라병은 가벼워질 줄 몰랐고 매운 트림만 이따금 콧잔등을 할퀴어댔다.

그렇게 입에는 콜라병을 붙인 채로, 야구장 앞에 혼자 남겨진 것이 서러운 데다 목구멍까지 따끔거려 눈물도 한방울 맺힌 눈은 의경과 마주치고 있었다. 어쩌면 학교 선생님들이 흔히 그러듯이 그 경찰도 내 수고가 가상하다고 느껴질 때 쯤 되면, '됐다, 이제 그만 들어가라'고 말하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결국 지금도 쉽지 않을 콜라 한 병 마시기를 마치고서 나는 야구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필 나만 찍어 가방을 뒤지고는 곤욕을 안긴 경찰아저씨가 야속했는지, 나의 곤란은 돌아보지도 않고 먼저 뛰어들어간 친구녀석이 얄미웠는지 속절 모를 눈물이 찔끔 돌았다.

또 아니면 거푸 올라오는 트림이 매워서 그랬을 수도 있고, 알지도 못하면서 유리병 음료수를 챙겨준 엄마가 미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입구 통로를 빠져나가기 전에 몰래 손바닥으로 눈도 꾹꾹 눌러 말리고 뛰어들어가서는, '플레이볼'이 외쳐지기 직전에 간신히 친구를 찾아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다.

청룡의 유격수 김재박이 매번 그림같은 점프와 슬라이딩으로 안타성 타구를 건져 올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옆에 있던, 어디에 담아와 마셨는지 벌건 얼굴로 소주 냄새를 풍기던 아저씨가 앞에 서 있던 경찰에게 "아저씨, 재박이 좀 잡아가요"하며 실없는 농담을 던지던 것도 기억난다.

지금 생각하면 몇 모금 마시다가 그냥 버리고 들어갈 수도 있었겠다. 아니, 버릴 것까지는 없더라도 그 의경에게 주어버렸어도 됐을 것이다. 어쩌면 후끈한 여름 오후, 공설운동장 입구에서 입장객들과 시비하느라 피곤했을 그 경찰관 아저씨도 내가 꾸역거리며 넘기는 콜라를 보며 군침을 삼켰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 백원 안 하는 콜라 한 병도 소풍과 운동회에나 어울리는 귀한 음식이던 때였다.

그래서 그렇게 식도를 혹사하고 눈물까지 그렁대며 욕심껏 마신 콜라 덕에 그날은 9회 말 끝날 때까지 더운 줄을 몰랐고, 트림과 딸꾹질은 집에 오는 버스에서도 멎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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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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