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다녀왔다. 교통 발달 덕분에 두 시간이면 가볼 수 있는 곳이건만 그래도 좀체로 갈 수 없는 곳인데 그곳에 다녀왔다.
날씨가 흐려 비가 흩뿌렸다. 공항에서 비행기 트랩을 내리자마자 세찬 제주도 바람이 밀려왔다. 고향이 제주인 현기영 선생이 이게 바로 제주도 바람이라며 감회가 새로운 듯 짙은 눈썹 휘날리며 먼 들을 바라보셨다.
일이 끝나자 선생과 나는 강요배라는 화가의 작업실에 가보기로 했다. 나는 언젠가 강요배 선생 이름자만 얻어들었을 뿐이었다. 도예가 고원종 선생이 마중을 나와 우리는 귀덕이라는 곳에 있다는 화가의 작업실로 향했다.
남국이라, 제주도 햇살은 강렬하다. 어느새 날씨가 개어 땅은 새까맣고 하늘을 새파랗다. 멀리 구름에 가려 있던 한라산이 어느새 선뜩 다가서 있다. 차는 달린다, 국도를 지나 지방도를. 나는 차창에 머리를 박고 바깥 풍경을 내다보느라 정신 없다.
비바람도 많고 돌도 흔해서 사람들은 밭둑에 전부 돌을 쌓아 놓았다. 정 비바람이 아니더래도 땅을 골라 농사를 짓자니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는 지천인 돌이 처치 곤란이다.
마을마다 나이 들어도 굳센 팽나무가 버티고 서서 땅의 역사를 말해준다. 팽나무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살아가던 사람들은 지금도 음력 8월 1일이면 먼 친척까지 함께 모여 모둠 벌초라는 것을 한단다. 피붙이들 다같이 모여 조상님네들 산소 머리를 깍아주는 것이다. 독특한 씨족사회의 풍습이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니 시골에서 났어도 도시 아이로 자란 내게는 무척이나 인상적일 밖에.
더욱 흥미로운 것은 강요배 화가가 작업실을 꾸린 귀덕 쪽으로 가다 보니 밭 한가운데 산소를 모셔둔 풍경이다. 제주 사람들은 밭을 돌로 에워싸듯이 그렇게 똑같이 산소를 돌로 에워싸서는 농사지을 때나 지나다닐 때나 늘 보고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풍경은 생사 초월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를 중시하는 탐라 사람의 마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러나 저 아름다운 풍경이 얼마나 갈까? 제주도를 국제관광도시로 만든다는 플랜이 떠글썩하게 발표된 게 얼마 전이니 조만간 이 아름다운 섬에 또 한 번 개발의 광풍이 몰아닥치지 않겠는가. 새까만 돌의 문화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에 깔려 모습을 감추고 밭한가운데 모셔둔 산소들은 화장(火葬)의 미덕 운운 아래 점차 사라져버릴 게 아닌가.
나 역시 나중에는 스스로를 화장하리라 생각한다. 이제 우리가 죽어서 살아갈 수 있는 집터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제주도에 매장 문화가 사라진다면 탐라의 아름다움도, 탐라의 마음도 함께 유실되어 버릴 것 같다.
생각건데 제주 섬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꽃과 같다. 제발 함부로 뜯어 바꾸려는 생각은 없어졌으면 좋겠다. 무슨무슨 계획이니 하는 발상들은 혹여 그 섬에 땅을 가진 서울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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