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세이돈, 제우스에 역전승하다

제우스신전 vs 포세이돈 신전

등록 2002.11.28 00:47수정 2002.11.2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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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 홍경선

신중의 신 제우스. 그는 티탄이라고 불리는 거인신족(巨人神族) 중의 하나인 크로노스와 그의 아내 레아의 아들이다. 천공을 지배하는 신으로 천둥과 번개를 마음대로 구사하는 그는 단순히 천상계를 지배하는 신만이 아니었다. 그는 하늘의 주인인 동시에 전세계의 통치자였다. 또한 그는 올림포스산의 신들 위에 군림하였고 그 권위는 다른 신들의 권위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위대하였다.

이런 그에게 유독 반기를 드는 신이 있었으니 바로 바다의 제왕 포세이돈이었다. 제우스의 맏형으로 하데스, 제우스와 함께 세계를 3등분하여 바다를 다스리던 포세이돈은 항상 막내동생인 제우스가 천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못마땅했다. 비록 아버지 크로노스로부터 자신을 구해줬다고 하나 동생보다 못난 것이 하나 없는 자신이 왜 하늘에서 쫓겨나 바다를 다스려야 하는지, 형 체면에 여간 창피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최후의 승리자는 제우스였고 하늘의 모든 영광 역시 제우스 차지였다. 포세이돈은 그저 바다에서만 인정받을 뿐이었다. 그렇게 신들이 세상을 다스리던 시기. 제우스를 향한 포세이돈의 라이벌의식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였을 뿐 언제나 2등의 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화를 벗어난 인간들의 세계, 즉 현실의 상황은 어떨까? 한마디로 포세이돈의 극적인 역전승이라 할수 있다.

그리스 신화의 여신 아테나에서 유래한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는 서구 문명의 발생지이자, 고전 문명의 많은 지적·예술적 사상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곳이다. 2500년이 넘는 오랜 역사와 함께 해온 아테네에는 고대 그리스의 종교적 중심지였던 아크로폴리스를 비롯하여 아고라, 올림픽 운동장, 제우스신전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이중 기원전 6세기에 착공하여 2세기에 완성했다는 제우스신전은 한때 그리스 최대의 신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고트족의 침입과 오랜 풍파로 인해 84개의 코린드식 돌기둥 가운데 현재는 15개만이 남아있다. 한때 규모적인 면에서 그리스의 여느 신전들보다 웅장했다고 전해지는 제우스신전은 그렇게 과거의 융성을 찾아보기 힘들만큼 많이 파괴되어있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로 하여금 씁쓸함과 함께 많은 실망감을 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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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해를 붉게 물들이는 노을이 인상적인 포세이돈 신전 ⓒ 홍경선

이에 비하여 아테네에서 남동쪽으로 약 70Km떨어진 아띠까반도 끝부분에 있는 수니온 곳(Cape Sounion)에는 영국의 시인 바이런도 노래했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모셔진 신전이 있다. 곶의 튀어나온 끝에 15개의 도리아식 원기둥만 남아있는 포세이돈 신전. 우연의 일치인지 신화에서 역사로 이어지는 운명의 장난인지 두 신전은 그렇게 똑같이 15개의 기둥만을 흔적으로 남겨났다. 하지만 실제 두 신전의 모습을 비교해본다면 포세이돈 신전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파란 하늘을 향해 쭉 뻗은 하얀 대리석 기둥들, 멀리 깊은 바다를 비춰주는 등대처럼 우뚝 서있는 신전터. 그 균형 잡힌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해질 무렵 신전 안에서 바라보는 석양의 아름다움 또한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있는 15개의 하얀 기둥 사이로 살며시 지는 붉은 노을은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에 금빛 길을 내고 있는 듯하다. 절벽 위의 신전에 올라가 멀리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과 마주하고 있으면 어느새 살짝 몰아치는 파도와 속삭이고 있는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주위의 많은 관광객들의 탄성도 멀리 울려 퍼지는 뱃고동 소리도 우릴 방해하지 못한다. 거기엔 오직 신전의 돌기둥과 에게해의 파란 물결과 붉게 타 들어가는 노을만이 있을 뿐이다.

수니온곶의 포세이돈 신전은 15개의 하얀 도리아식 기둥만을 남긴 채 허물어져 있었다. 아테네의 제우스신전 역시 마찬가지로 15개의 코린트식 기둥만을 남겨놓고있다. 하지만 철저하게 파괴되어 과거의 영광만을 추억할 수밖에 없는 제우스신전에 비해 포세이돈 신전은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하늘과 바다와 태양의 삼위일체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 포세이돈 신전. 그 옛날 신화 속의 포세이돈은 제우스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그는 에게해의 푸른 파도소리처럼 영원히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그렇게 저물어가는 에게해의 붉은 노을을 뒤로한 채 포세이돈의 승리를 자축하며 아테네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홀로 남겨진 신전이 황금빛으로 물들며 어두워져 가는 바다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여름 두달간의 유럽여행 도중 그리스 아테네에서의 추억입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여름 두달간의 유럽여행 도중 그리스 아테네에서의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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