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천하 유아독존 '진시황릉'

세계문화유산답사 <중국편>

등록 2002.12.02 02:27수정 2002.12.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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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큰 묘에 잠들어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에서 묘의 크기는 그 사람의 권력에 비례한다고 볼 때 권력기반이 가장 강했던 인물을 꼽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던 황제란 소리인데, 그렇게 볼 때 황제란 칭호로 익숙한 중국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역대 통일왕조에서 가장 큰 무덤을 만들 정도로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할 수 있었던 인물.

중국 섬서성의 성도로 중국의 대표적인 관광 도시 중 하나인 서안에 가면 그 인물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인구 약 20만 명의 이 도시는 한때 장안이라는 이름으로 동양과 서양의 문화 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실크로드의 기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기원전 221년 10년간의 전쟁을 통해 크고 작은 제후국들을 정복하고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통일된 중앙집권 봉건왕조인 진나라가 건립되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 진나라 황제의 무덤이 있는 이곳 서안에서 그 유명한 진용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에 낮은 야산이 하나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198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에서 가장 큰 무덤인 진시황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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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릉 입장권 ⓒ 홍경선

진시황제 정. 그는 중원 대륙을 최초로 통일하여 '하나의 중국'이라는 의식을 중국인들의 뇌리 속에 깊게 새긴 첫 황제였다.

그런 그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 얼마 안되어 섬서성 서안시 림동 려산 북쪽에 자기의 황릉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마천에 의하면 황릉은 36년만에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그때는 이미 진시황이 죽은 후였다.

황릉을 만들 당시 그 높이가 자그마치 120미터, 부지 둘레의 길이가 2167미터나 되었고, 동원된 인부만 해도 무려 70만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이는 모두 만리장성으로 유명한 진시황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에게는 불가능을 가능하게끔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었나보다. 그것이 비록 백성들의 피와 땀을 통한 것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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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을 환영하는 진시황 동상 ⓒ 홍경선

멀리서 바라본 진시황릉은 그저 흔한 동네 야산과 같았다. 실제로 황릉 위에는 여러 가지 수목들로 무성하다. 황릉 입구에는 진시황 동상이 오른손을 높이 치켜 들고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마치 널리 만리장성을 쌓아 흉노족을 막으라고 명령하는 듯 한 그 모습에서 왠지모를 위엄이 느껴진다.

약 79m 높이의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은 한마디로 등산이라 할 수 있다. 함부로 남의 무덤 위에 오르는 것이 왠지 찜찜했지만 진시황이라고 알았으랴. 후에 자신의 능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지를.

정상으로 향하는 산길에는 초목이 우거지고 석류나무가 가득 심어져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켠에는 황릉에서 출토된 갑옷이나 무기류 등이 전시되어 있어 이곳이 산이 아니라는 것을 각인시키고 있다.

약간 숨이 차오른다 싶을 즈음에 도착한 정상에서 내려본 황릉의 규모는 정말 어마어마했다. 아직 발굴이 진행중인데도 불구하고 동서 475m, 남북 약 384m나 되는 그 면적에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이 거대한 산이 과연 한 인간이 잠들어 있는 무덤이란 말인가.

숲과 산이 있는 무덤 안에는 황실 보석창고와 거대한 석각중국지도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내부는 개발이 되지 않아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고 해도 볼 수가 없다.

황릉이 발견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내부 발굴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진시황이 무덤을 설계할 때 훗날의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기궁'이라고 하는 자동발사장치와 여러 가지 함정들을 설치해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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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릉 전경(입장권 뒷면) ⓒ 홍경선

황릉은 하나의 커다란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었다. 무덤보다는 오히려 황릉공원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정상에서 내려다본 황릉아래로 펼쳐진 주변의 경치는 뛰어났다. 산으로 향하는 계단 아래와 그 양옆으로 넓은 정원이 조성되어 있고 오른쪽에 마련된 공간에는 진용박물관에서 본 것처럼 오와 열을 맞춰 진열을 갖춘 병사들로 가득했다.

그곳의 병마용은 특이하게도 얼굴과 손이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진용박물관에서 병마용을 내려다보기만 해야 했던 것에 많이 아쉬웠기 때문에 장난삼아 그것들을 바꿔끼며 아쉬움을 달래었다. 또한 가까이서 그들과 함께 사진도 찍을수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무덤을 지켜야했던 그들의 기구한 운명이 가슴에 와 닿는 듯했다.

무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야산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은 진시황릉. 시간과 국경을 초월하여 무덤 위를 걷는다는 것은 왠지 무례한 일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황릉 위를 걸으면서 조용히 잠들고 있는 진시황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죽어서도 최고의 자리에 앉고싶은 열망으로 백성들의 피와 땀을 빨아들였던 그의 깊은 잠을 그렇게라도 깨우고 싶었다.

양 옆으로 길게 늘어진 삼각꼴의 진시황릉은 그 위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무소불위의 황제 진시황의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발끝에서 전해지는 위엄.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했지만 그는 이렇게 눈에 보이는 엄청난 위엄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있다. 죽어서도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살아생전 최고의 자리에 올라 천하를 호령했고 죽은 후에도 이곳을 찾는 천하 모든 이들의 눈을 의심하게끔 만들고 있다.

어디 이뿐이랴. 만리장성, 진용박물관 역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있는 그의 작품이다. 지나간 과거의 한 인물에 의해 세계적으로 인정된 문화유산이 세 개씩이나 만들어졌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그가 바로 진시황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이만한 인물이 어디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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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찍어준 진시황릉 방문 기념 도장 ⓒ 홍경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일보 대학생온라인신문 지키(www.zkey.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화일보 대학생온라인신문 지키(www.zkey.co.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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