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석굴 예술의 보고 '용문석굴'

세계문화유산답사 <중국편>

등록 2002.12.07 14:21수정 2002.12.07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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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佛心)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여기 8개 왕조가 무려 400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흥망을 거듭하면서 오직 하나의 불심으로 매진한 곳이 있다. 대형 돌조각 예술박물관이라 불리우는 '용문석굴(龍門石窟)'이 바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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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허 서쪽의 용문산 석굴군 ⓒ 홍경선

2000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용문석굴은 중국 7대 고도의 하나인 낙양에서 남쪽으로 약 13km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

낙양은 하남성 서부의 황하 중류에 위치한 역사와 문화의 도시이다. 5000년에 가까운 장구한 세월동안 동주, 동한, 조위, 서진, 북위, 수, 당, 수양, 수당 등 무려 9개의 왕조가 이곳을 수도로 삼아 흥망을 거듭하였으니 명실상부한 중국 최고의 고도시라 할 수 있다.

용문석굴(龍門石窟)은 서기 494년경 북위 효문제가 대동에서 낙양으로 천도한 후 건축하기 시작하여 동위, 서위, 북제, 서주, 수, 당과 북송왕조 등 자그만치 8개 왕조를 거치는 동안 보수가 되어 완성된 석굴군이다. 이는 대동의 운강석굴(雲崗石窟), 둔황의 막고굴(莫高窟)과 함께 중국 3대 석굴로 꼽힌다. 또한 8개 왕조의 흥망과 함께 하며 그 오랜 시간의 역사를 담고 있는 불교석굴예술의 보고이기도 하다.

남북으로 고요하게 흐르는 이허의 양쪽 벼랑은 벌집처럼 구멍이 뚫려 있다. 각각 향산과 용문산이라고 불리우는 양쪽 벼랑에는 1300여개의 동굴과 10만여개의 불상, 그리고 40여개의 불탑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이허를 사이에 두고 누가 더 많이 파낼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석굴이 파져있는 것이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주로 용문석굴이라 불리는 용문산 쪽의 석굴로 향하는데 이는 예로부터 그곳의 경치가 낙양 8대 명승지 가운데 으뜸이었기 때문이란다.

많은 돌계단을 빙빙 돌아 올라가며 들여다본 각각의 석굴 안에는 다양한 불상들이 조각되어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성치 않았다. 길목의 외벽에 새겨진 불상들은 오랜 세월의 풍파와 수많은 방문객들의 손길에 길들어졌는지 검게 변해 있었다. 그중 일부는 도려져 나가기까지 했다. 주로 머리부분과 손이 많이 잘려 나가 있었는데, 오랜 세월의 모진 풍파를 견디지 못했나보다. 하지만 자로 잰 듯이 예리하게 잘려나간 흔적이 아무래도 불상의 머리를 가져가면 행운이 온다는 민간신앙 때문인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갈지(之)자 모양으로 둘러보았을까. 어느덧 넓은 광장이 나타났다. 중앙에 커다란 불상과 그 양옆으로 호위를 맡고 있는 듯 보이는 4개의 거인상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그곳은 용문석굴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봉선사였다.

이곳은 당나라 때 측천무후의 명령으로 세워졌다고 하는데 중앙에 안치된 노사방 불상의 크기는 정말 대단했다. 높이 17m의 노사방 불상은 여태후, 서태후, 장청 등과 함께 중국의 여걸 4인방 중의 하나인 측천무후가 모델이 되었다고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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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의 노사방불상 앞에서 ⓒ 홍경선

측전무후는 고종의 황후로 고종이 오랫동안 중병이 들어 정사를 돌볼 수 없게 되자 전권을 장악했다. 또한 독재권력을 휘둘렀으며, 국호를 주(周)로 개칭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중국최초의 여황제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무소불위의 여걸이었다. 특히 자신에게 적대적인 황실세력에게 간사한 책략과 잔인한 탄압을 가했던 것으로 악명 높았던 그녀는 멀어져가는 인심을 돌려놓기 위해서인지 전국 각지에 천당, 대불과 같은 대건축물을 세워 국위선양에 힘썼다고 한다. 봉선사 역시 그 중 하나이다. 어쨌거나 사치와 권력의 화신이었던 그녀의 모습이 노사방 불상의 얼굴처럼 인자함을 띠고 있는 것은 왜일까?

부드러운 눈썹 아래로 초연한 듯한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은 주위의 어떤 유혹에도 굽히지 않을 듯 했다. 축 늘어진 귓불에는 무한한 복이 듬뿍 담겨있어 모든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려는 듯하다. 또한 풍만한 몸매에서 풍겨나오는 여유로움과 입고 있는 옷주름의 부드러운 곡선에선 뼈도 무게도 없는 듯한 고아한 멋이 느껴진다.

이처럼 아름다운 불상의 모습이 측천무후라니.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이렇게 거의 정반대의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하므로서 이미지 쇄신을 꾀하려했던 것 같다. 중앙의 본존불인 노사방 불상 좌우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서로 바라보고 있고 그 사이에 나한입상과 천왕역사상이 엄숙한 표정으로 서있다.

봉선사의 대불들은 엄청난 크기였으면서도 저마다 정교한 조각으로 그 멋을 한층 돋구고 있었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듯한 웅장함과 눈높이의 차이에서 나오는 경건함, 이 높은 벼랑에 이와 같은 엄청난 조각을 새겨놓은 고대 중국인들의 기술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는 자의던 타의던 간에 불심으로 통일된 자발적 행동의 결실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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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5000개의 불상이 새겨진 만불동 벽면 ⓒ 홍경선

봉선사의 서쪽 절벽의 계단을 돌아 나오면 작은 석굴 속 벽 전면에 빽빽하게 새겨져 있는 불상들이 나타난다. 자그만치 1만5000개나 되는 불상이 석굴의 삼면에 바둑판 모양으로 나열되어있는데 저마다 치밀하게 조각되어 있다. 불과 수cm의 작은 크기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모습의 불상들이 상하·좌우할 것 없이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새겨져 있다. 목욕탕 벽 같기도 하고 촉촉하게 깔린 바닥 타일 같기도 한 그 모습이 그저 경이롭고 신기하기만 하다.

아! 불심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수많은 불상 너머로 또 다른 불상이 있고, 눈길이 닿는 곳마다 무수한 불상이 조각되어있다. 그렇게 정교하게 조각된 불상 하나하나에는 신실한 믿음이 심어져 있다.

봉선사와 만불동 등 용문산 일대의 석굴군을 두루 살펴본 후 용문교를 건너 이수 동쪽의 향산으로 향했다. 반대편으로 건너가보니 장장 1km에 걸쳐 펼쳐진 용문석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까이서 바라보았던 석굴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새로움이 느껴졌다. 사방으로 한없이 뚫려 그 끝을 헤아릴 수 조차 없는 석굴들. 벌집처럼 쑤셔놓은 용문산 벼랑에 새겨진 많은 불상들은 하나같이 멀리 이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유자적 흐르는 이수에 비친 그들의 표정에서 여유로움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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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석굴의 하이라이트 봉선사 전경 ⓒ 홍경선

특히 멀리서 바라본 노사방 불상의 자태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먼 곳에서 전해지는 풍만함에 묘한 황홀경마저 느껴졌다. 부드럽게 다문 입술과 인자한 눈매에서는 한없는 사랑이 전해졌다. 때론 금방이라도 달려가 안기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도 하지만 시선에 따라 부드러운 표정과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중생을 바라보는 야누스적인 눈빛에선 함부로 접근할수 없는 카리스마가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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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방불상을 지키는 천왕역사상 ⓒ 홍경선

한편 오랜 시간동안 좌우에서 노사방불상을 호위해온 나한입상과 천왕역사상의 드높은 위용은 하늘을 찌를듯했다. 다가서면 금새라도 내리칠 것 마냥 번쩍 들고있는 천왕역사상의 오른손에선 넘치는 힘이 느껴진다. 여전히 이수는 소리 없이 흘러가고 있고 하늘은 너무도 파랗건만 감히 구름 한 점 불러오지 못할 정도로 그들의 눈매가 예리하다. 그렇게 엄숙한 분위기로 중앙의 노사방 불상을 호위하고 있는 거상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경건하고 장엄한 체험이 아닐 수 없다.

현존하는 세계최고의 불교석굴인 용문석굴에는 400년 동안 끈질기게 이어져 내려온 수많은 민초들의 불심이 녹아있다. 오랜 세월동안 오직 신실한 불심 하나만으로 석굴을 파며 흘리던 땀과 눈물은 이수로 스며들어 흐르고 있다. 조용히 흘러가는 이수의 물살은 불심이 깃들어서인지 용문석굴의 불상들마냥 여유롭기만 하다. 끝없이 펼쳐지는 석굴군을 지나며 멀리서 내려보고있는 대불의 인자한 눈빛과 미소에 시선이 닿으니 마음마저 한가로워진다. 순간 절로 고개가 숙여지면서 불교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딛은 수도승처럼 나 역시 불심(佛心)에 잠시 젖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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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방불상 옆의 나한입상 ⓒ 홍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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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의 얼굴이라 여겨지는 노사방불상 ⓒ 홍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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