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순 어머니박도
오늘 새벽 당신 아드님이 저에게 두건과 상장(喪章)을 주기에 별 주저없이 받아 머리에 쓰고 팔에 둘렀습니다. 저는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학교 수업도 접어둔 채 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내 무덤을 네 발로 꼭꼭 밟아 달라”라고 저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어머님! 이제 편히 눈감으십시오. 그 동안 참으로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해방과 6.25 한국전쟁 …. 그 힘든 세월 속에 전쟁 미망인으로 네 남매를 당신의 손으로, 발로 먹이고 키우고 가르쳤습니다. 저는 당신을 너무나 잘 압니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매서운 날씨 동대문시장바닥 빙판 위에서 당신은 연탄 화덕을 껴안고 떡을 팔았고, 뒷날에는 광장시장에서 무명과 삼베를 팔았습니다. 당신 얼굴은 겨우내 찬바람에 얼어서 동상으로 시퍼랬습니다.
당신은 온몸을 던져 자녀들을 길렀고, 또 가난한 이웃을 돌보았습니다. 당신은 현대판 한석봉 어머니이십니다. 아들딸을 출가시키고서도 시름을 못 놓은 채, 저를 만날 때마다 막내 아드님을, 손자, 손녀를 걱정하셨습니다.
당신의 춘추 일흔다섯, 숙환(宿患)으로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까지 40여 년을 한결같이 동대문시장바닥을 지키셨습니다. 당신의 휴가는 불과 보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병상에서 저승사자를 기다렸던 고작 보름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죽음을 ‘돌아간다’라고 말합니다. 곧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마치 군인이 그 임무를 충실히 끝내고 고향집으로 돌아가듯, 소치는 목동이 소를 몰아 외양간으로 돌아오는 것과 똑 같습니다.
어머님, 당신은 평생 동안 혼자 무거운 짐을 지셨습니다. 이제는 그 짐을 다 풀어놓으시고, 거추장스런 당신 육신도 이 세상에 버리고, 당신의 영혼만 슬픔도 번뇌도 없는 영원한 극락 세계로 가십시오.
이 세상에 남은 저희는 당신과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없는 영결을 슬퍼하지만, 당신은 눈물도 근심도 없는 극락에서 편히 쉬시라 믿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유가족과 친지 여러분! 후일 우리가 저승에서 고인을 만나기 위해 남은 삶을 사람답게 살고 남을 돕고 살도록 고인 앞에 맹세합시다.
홍정순 어머니! 이 세상일은 모두 잊으시고, 부디 왕생극락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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