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김규환
까만 흑돼지가 90kg 150근을 넘기면 어른들은 나에게 "숯덩이를 갖다 주라" 하셨다. 몇 번 하다보니 돼지우리를 채울 만하게 컸다 싶으면 몰래 재미 삼아 숯을 한 덩이씩 던져 줘 "사각사각" 깨잘거리는 소리를 즐기기도 했다.
어느 날 학교에 갔다와 보면 우리집 구정물을 죄다 먹어치우던 돼지가 없어졌다. 팔려간 것이다. 소만큼은 아니어도 돼지도 꽤 좋아했었는데 말이다.
돼지 한 마리가 없어지니 온 식구가 어디로 간 듯 집안이 조용하기 그지없다. 엄마를 졸라 "엄마 장에 언제간가?", "엄마, 돼지 언제 사올라요?"하면 어머니께서는 "돌아오는 장날에 아부지가 댕겨오신단다", "장날이 언제간디요?", "낼 모레 8일 날이쟈."
지금은 광주지역 상수원으로 쓰고 있는 동복댐 물에 잠겨 다시는 가 볼 수 없는, 화순 이서 '방석굴장'에 가시는 날이면 아버지는 까맣고 귀여운 돼지 한 마리를 쌀 푸대자루에 담아 '송광여객'에 싣고 집으로 오셨다.
비포장 돌길 30여 리를 달려온 이쁜이 돼지는 멀미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죽은 듯 하던 돼지새끼가 자루를 끌러 마당에 내 놓으면 쌀뜨물로 받은 구정물통에 코를 박고 거품을 부글거리며 "쪽쪽" 잘도 빨아먹었다.
우리집 식구가 되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레쯤 밥 남긴 걸 주고 쌀겨를 한 바가지 씩 물에 띄워주면 이놈 시커먼 털도 맨들맨들 윤기가 자르르 돌고 살찌려고 준비를 단단히 한다.
이 즈음 우리 집에서는 한판 소동이 일어난다. 아버지께서는 고샅 담벼락에 가서 사기그릇 깨진 날카로운 '사금파리' 한 조각을 구해 오셨다. 12-13kg 정도 나가는 아기 돼지 수퇘지 불을 까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잘 잡그라."
"규복이는 뒷다리 잡고 무릎으로 돼지를 눌러라."
"글고 규환이는 앞다리 묶은 세끼 줄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
"예, 알았어라우~"
"어이 애 엄마! 당신은 가서 굵은 소금하고 실 좀 챙겨오소."
"꽤액∼꽥" 날카롭게 어린 돼지 우는소리가 귀청을 사정없이 때린다.
"띵"하니 잠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꽤액" 한 번 더 울자 귀가 다시 뚫린다.
그 사이 아버지는 날카로운 사금파리 날을 돼지 불알을 탱탱하게 잡아당기시고 줄을 그으신다. 안에서 뱀 알처럼 생긴 잘록한 새알 두 개를 꺼내 그릇에다 담으신다. 빠른 손놀림으로 굵은 소금을 한 줌 씩 집어넣고 바늘로 듬성듬성 꿰매 봉합을 하면 수술 끝이다. 피가 질질 흐를 틈도 없이 날쌔게 하는 일이다.
우리 이쁜 아가돼지는 이렇게 한 번 '돼지 멱따는 소리'를 한 번 지르고서야 본격적으로 성장기를 거친다. 그래야 고기 맛이 쫄깃하고 비계가 덜 붙어 단단하게 큰다. 또 하나 이유는 수컷의 본능이 제거되어야만 다른 데 관심 안 쓰고 얼른 자라 주인의 사육방침에 이바지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