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조리를 보니 옛 담양장 풍경이 떠오르네

재래시장을 찾아서<3>죽향이 물씬 풍기는 담양장

등록 2003.01.14 08:41수정 2003.01.1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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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담양 죽향축제

담양 죽향축제 ⓒ 담양군청

눈이 밤새 마른땅을 덮어 살포시 적시는 섣달이면 설쇠기 위해 대목장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급해지기 시작한다. 한가지라도 빠지면 안되는 게 조상을 모시는 사람의 몫이다. 명절 때만 되면 닷새마다 열리는 5일 장을 몇 번이고 다녀와야 직성이 풀리는 게 우리 부모님들이셨다.


20년 전 담양장으로 가보자. 여느 시골 5일 장과는 다르다. 한 두 점포에서나 팔 대 제품이 웬만한 길가를 다 막고 있다. 동짓달이 지나자마자 방방곡곡에서 전대를 차고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섣달 한달 내내 팔려 나갈 대바구니와 복조리를 한차 가득 싣고 갈 장사치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좁다란 길에 차가 빼곡했다. 천변 공터 느티나무와 팽나무 근처에도 사람과 차와 팔려 나갈 것들로 꽉 찬다. 소쿠리에 복조리를 사람이 안보일 정도로 잔뜩 지고 나르느라 바쁘다.

a 바구니

바구니 ⓒ 담양군

a 소쿠리

소쿠리 ⓒ 담양군

a 광주리

광주리 ⓒ 담양군

한 번 타지 사람들이 몰려들면 담양에서는 방을 구하기 힘들었다. 전날 미리 와서 여관을 잡아 놓고서는 바구니, 채반, 고리짝, 싸리 빗자루, 대빗자루, 광주리, 석작, 밥바구리, 죽부인, 합죽선, 대자리, 키, 삼태기, 참빗, 갈퀴, 담뱃대 등을 사러 나간다.

이곳이 이렇게 붐볐던 이유는 이곳이 죽림(竹林)의 고장 담양이기 때문이다. 한 때 대밭은 '금밭'이라고 까지 불렸다. 전남 동부 담양을 중심으로 곡성, 화순, 구례 등지서 생산된 대 제품이 이곳 담양장을 거치지 않고서는 어디다 얼굴을 내밀기 힘들 정도로 한 때 호황을 부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장터국밥을 말아 안주 삼아 삼학(三鶴) 소주와 보해(寶海) 소주 한 잔 걸치는 게 낙이었다.

죽 제품에 있어서 담양장은 도매시장이다. 다른 달은 몰라도 섣달에는 몇 동네 것을 모아 '구루마'로 실어온 조리가 필수 품목이었다. 더군다나 우리네 먹을거리가 쌀 중심인 것을 생각하면 조리, 복조리는 절대 빠질 수 없는 물건이었다.


a 채반

채반 ⓒ 담양군

a 죽부인

죽부인 ⓒ 담양군

a 키

ⓒ 김규환

쌀에 들어 있던 '뉘'야 하나씩 골라내면 되었지만 잔챙이 돌을 눈으로 식별해서 하나하나 고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지라 조리를 써야 했다. '싸래기'(좁쌀만한 쌀가루)와 흡사한 크기와 색깔을 띤 차돌가루를 골라내는 것은 아예 엄두도 못낼 지경이다. 플라스틱 조리가 나오기 직전까지는 여기로 모인 조리가 각양각지로 보내지는 건 당연했다.

차령 이남 지역은 물론 서울 이북 어느 곳에서도 쌀을 일지 않고서는 밥을 해 먹기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따라서 집집마다 늦어도 정월 대보름까지는 조리를 서너 쌍 사 놓지 않으면 안심하고 잠을 못 잤다.


솥단지 있는 집은 너나할 것 없이 솥 바로 왼쪽이나 오른쪽에 못을 박아 조리를 걸어 두었다. 밥할 때 툭툭 털어도 빠지지 않고 조리 틈에 끼어있는 모습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광주, 나주, 목포, 여수, 순천으로 꼬부랑 길을 급히 달려간 덜컹거리는 차는 다시 와서 잔뜩 싣고 전주, 군산, 이리를 넘어 논산, 대전, 천안, 수원을 거쳐 서울 사람들에게 복을 날랐다. 복을 한 쌍 안겼다.

좀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한해의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뜻에서 음력 정월 초하룻날 새벽에 파는 조리를 '복조리'라 하며 보름날 새벽까지 파는 풍속이 있었다.

a 나일론 줄로 엮은 중국산 삼태기-엉성하지요? 예전에는 삼(대마)으로 세끼를 꼬아 튼튼하게 만들었답니다.

나일론 줄로 엮은 중국산 삼태기-엉성하지요? 예전에는 삼(대마)으로 세끼를 꼬아 튼튼하게 만들었답니다. ⓒ 김규환

a 중국산 대빗자루와 수수빗자루

중국산 대빗자루와 수수빗자루 ⓒ 김규환

이제 담양에 가면 중국산 죽제품이 더 많다. 이미 자리를 내준 지 오래다. 성냥간에 가도 낫과 괭이와 쇠스랑과 도끼와 톱도 물 건너 온 것들 차지다. 덩그마니 '죽물박물관' 만이 허전한 현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올해는 복조리 선물을 한 번 해 보자.
a 대밭

대밭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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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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