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9

혈겁의 시작 (4)

등록 2003.01.15 12:15수정 2003.01.15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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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아! 이제 알았어? 이번엔 특별히 네 봉술이 일취월장(日就月將)하였으니 용서해주지만 학문을 게을리 하면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알았어?"
"헹! 알았어. 형! 공부도 열심히 할게."

"하하! 그래, 열심히 공부해라.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을 보면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라고 하였다. 그나저나 못 박는 거 다시 한번 해봐라. 아까는 자세히 못 봤다. 헌데 못은 대체 몇 개나 박은 것이냐? 설마 천 개는 아니겠지?"


"에구…! 그래, 형 되게 유식하다. 유식해! 오늘은 웬일이래? 웬 문자를 그렇게 써? 제발 알아들을 수 있는 말 좀 해봐. 그거 우리나라 말 맞아? 설마 왜놈들 말은 아니겠지?"
"하하하! 녀석 무식이 들통나니까 무안하지? 하하! 논어는 공자님이 지으신 책으로 거기엔 학이편이 있어…"

왕구명은 하루에 두 번이나 학식을 뽐낼 수 있는 것이 무척이나 즐겁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그는 내심 캥기는 점이 있었으나 시침을 뚝 떼고 있었다.

사실 아는 문자라곤 그거 두 개뿐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어린 시절에 부친으로부터 수 없이 쥐어 박히면서 습득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알았지? 그러니까. 학문 익히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학문을 갈고 닦으면 장차 우형처럼 유식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아까 그걸 다시 해 보라니까?"
"아, 그거?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이회옥은 학문 닦기를 게을리 하였다는 꾸중을 듣자 시무룩해 있다가 얼굴을 활짝 폈다. 이제 못 박는 것은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그는 새로운 못 몇 개를 박아 넣었다.


이것을 본 왕구명은 불과 일 년만에 이런 성취를 이룬 것이 몹시도 대견하여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다가 문득 의기양양해 하는 이회옥을 보고 잠시 이맛살을 찌푸렸다.

"흐음! 못을 박아 넣는 것은 나무랄 데다 없다. 이제 조금만 더 연마하면 일 각 안에 천 개의 못을 박아 넣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하면 안 되지. 너는 못을 박을 때마다 탁자가 뒤로 밀리지만 신창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고 했어."
"말도 안 돼! 어떻게 못이 박혀드는데 탁자가 뒤로 안 밀려?"


"임마! 그건 못이 박혀드는 속도에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야. 한번 생각해봐. 만일 못을 번개처럼 빠르게 박혀들게 할 수만 있다면 탁자가 밀리겠어? 밀리기 전에 모두 박히지."
"……!"

이회옥은 왕구명의 말이 그럴 듯하게 들렸다. 하여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런 표정을 본 왕구명은 의기양양하여 입을 열었다. 이번 기회에 기를 죽이려는 것이다. 문득 조그만 성취에 기고만장하면 더 큰 성취를 얻을 수 없다던 부친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속도란 네가 얼마나 봉을 빨리 찔러 넣느냐에 따라 다르지. 지금 너는 단순히 손목과 어깨의 힘으로 찔러 넣고 있어. 하지만 허리의 반동으로 네 체중이 모두 실리게 하고, 네 근력(筋力)이 모두 실린다면 지금보다는 빠를 거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는 안 돼. 왠지 알아? 넌 아직 어려서 근육이 없기 때문이야."
"……!"

이번에도 이회옥은 침묵을 지켰다. 뭔가 현묘한 뜻이 있는 듯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왕구명의 말이 이어졌다.

"너는 이제 근력을 키워야 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늘을 들고도 버틸 수 있는 하체 근육이야. 그리고 허리지. 근육이란…"

왕구명은 입에서 침을 튀어가며 근력을 키우는 방법을 떠들었다. 즉흥적인 생각이었지만 말을 하면서 스스로 놀랄 정도로 논리가 정연하였다. 따라서 이회옥은 귀가 솔깃하여 듣고 있었다.

신창을 능가하는 고수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은 그에게 있어 왕구명의 설명은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이회옥의 두 발목과 허리에는 모래주머니가 채워졌다. 하나의 무게는 열 근 정도였다. 따라서 다 합치면 삼십 근이다. 봉술을 연마한다고 체중이 많이 줄어 몸무게가 오십 근 정도인 소년에게는 벅찬 무게였다.

하루종일 청룡무관의 연무장을 빙빙 돌며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이를 악물었다. 너무도 힘들었지만 한시바삐 봉술의 대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쉬지 않고 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의 손에는 논어가 쥐어져 있었다. 왕구명으로부터 들은 꾸지람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무식했던 여몽(呂蒙)이 박식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여몽처럼 되고 싶었다. 그래서 형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며칠 후, 이회옥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왕구명이 제법 두터운 가죽으로 만든 이상한 것을 건넸기 때문이었다.

"형, 이건 뭐야? 뭔데 이렇게 생겼어?"
"후후! 뭐냐고? 일단 걸쳐봐. 네 근력을 늘려줄 놈이니까. 이제부턴 늘 착용하고 있어야해. 절대 풀어서는 안 돼. 알았지?"
"윽! 이걸 하니까 팔이 제대로 안 펴져. 형, 조금 짧은 것 같다. 그리고 뒤에서 끼우는데 어떻게 풀어? 풀고 싶어도 못 풀겠다."

단단하게 채워진 것을 확인한 왕구명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후후! 짧은 게 아니야.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거야. 이제부터 넌 이걸 착용하고 봉술을 연마하도록 해. 하루에 아무리 적어도 천 번은 찔러야 해. 알았지?"
"이걸 하고 봉으로 찌르라고?"

"그래! 그렇게 하면 네 팔에 근육이 점점 더 붙을 거야."
"으음! 그래서… 알았어. 그렇게 할게. 고마워 형!"
"하하! 고맙긴. 자, 난 이제 출근한다."

이회옥은 왕구명이 왜 이런 것을 만들어 왔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의 눈길을 보냈다. 가죽띠의 길이는 팔 길이보다 짧다. 따라서 봉으로 찌르기를 하려하면 방해가 될 것이다.

처음엔 어렵지만 차츰 근육이 붙으면 언젠가는 가죽띠가 방해하는 힘을 능가하게 될 것이다. 완전한 찌르기가 가능해 질 때 가죽띠를 벗겨내면 상상도 못할 속도로 찌르기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 상태에서 못을 박으면 신창이 이뤘다는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것은 짐작하였기에 이회옥은 출근하는 의형의 뒷모습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형…! 여러모로 신경 써줘서 정말 고마워. 언젠가는 반드시 이 은혜를 갚을게.'

오랜만에 또 눈 시위가 뜨거워지고 콧날이 시큰해지자 이회옥은 얼른 곁에 있던 봉을 들고는 찌르기를 해 보았다.

"얍! 얍! 얍!"

예상대로 가죽띠의 방해 때문에 찌르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회옥은 조금 더 힘을 주어 찌르기를 해 보았으나 아직은 가죽띠의 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다음 날, 이회옥은 연신 두 팔을 주물렀다.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연마를 멈출 수는 없다 생각하였기에 잠시 주무르고는 또 다시 찌르기를 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앞으로는 일과에 따라 무공 연마를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매일 매일의 훈련량을 정확히 기록하기로 하였다. 일단 찌르기는 하루에 천 번을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매일 열 번씩을 늘려가기로 하였다.

연무장을 달리는 것도 하루에 열 바퀴에서 시작하여 매일 반 바퀴씩 늘리기로 하였다. 그러다가 이십 바퀴가 되면 점점 더 빨리 달리기로 하였다. 이십 바퀴를 빠른 속도로 돌았는데도 숨이 거칠어지지 않으면 다시 매일 반 바퀴씩 늘려가기로 하였다. 이렇게 하여 마지막에는 오십 바퀴까지 달리기로 하였다.

왕구명은 뒤뜰 한가운데에 죽순(竹筍)을 심었다. 그리고 매일 백 번씩 뛰어 넘으라고 하였다. 세 치 정도 밖에 안 되는 그것을 보고 실소를 머금던 이회옥은 머리통을 쥐어 박히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후 죽순이 얼마나 빨리 자라는 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사색(死色)이 되었다. 설명대로라면 지금은 편하지만 앞으로 한두 달 후면 그것을 뛰어 넘느라 죽을 똥을 싸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고된 훈련을 하면서도 하루에 반드시 세 시진은 서책을 읽기로 하였다. 왕구명은 사내라면 모름지기 문무(文武) 두 가지 모두 출중해야 한다 하였다. 그래야 이 다음에 출세를 할 수 있다 하였다.

그는 아직 어린 이회옥을 친동생처럼 여기고 있었다. 하여 진심으로 그가 잘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 어떤 서책을 보아야 할지 알아오기도 하였다.

이렇게 세월은 흐르고 있었다. 세월과 함께 이회옥의 몸과 마음, 그리고 머리는 성장하고 있었다. 마굿간에 있는 비룡 역시 성장하여 이제는 등 높이가 팔 척에 달하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자라면 완전히 다 자란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알리는 말씀]

드디어 "<풍자무협소설>전사의 후예"가 오마이뉴스로부터 고정 연재실을 배정 받았습니다.
현재 "문화면" 좌측 연재 목록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 "잉걸"이나 "생나무 목록"에서 찾는 수고를 조금이나마 덜어 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연재의 성실도, 독자의 반응, 기사의 수준을 고려하여 메인 화면 좌측에 있는 "오마이뉴스 시리즈"로 배치되기도 한다는군요.
한시바삐 그곳에 자리를 배정 받아 여러분들의 수고를 조금 더 덜어드렸으면 하는 것에 제 소망입니다.

늘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앞부분을 못 보신 분은 죄송하지만 앞부터 읽어 주십시오.
나중에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되시길 기원하면서...

제갈천 배상

덧붙이는 글 [알리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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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바삐 그곳에 자리를 배정 받아 여러분들의 수고를 조금 더 덜어드렸으면 하는 것에 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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