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아이, 끼인 중년, 초라한 노년

<차이나소프트 문화 7> 중국의 광범위한 세대차, 골이 크다

등록 2003.01.18 00:40수정 2003.02.0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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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교 후 노점에 호기심을 가진 아이들.

하교 후 노점에 호기심을 가진 아이들. ⓒ 조창완

우리에게도 세대차이란 말이 있다. 그 축은 크게 45년 해방, 50년 한국전쟁, 60년 4.19혁명, 72년 10월 유신, 80년 광주, 87년 6월 항쟁 등의 그 분수령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세대간 구분 차는 한국전쟁을 넘어가면 경계가 그다지 뚜렷하지 않다. 물론 386세대 불리는 현재 40~45세 전후의 세대가 사회변혁의 한 축에 서 있지만 이는 구세대와 신세대의 접점에 있는 세대일 뿐 사회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4.19혁명 이후의 분수령들은 개인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보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객관자가 되어 응시하는 수준에 머물렀지 국민 전체가 주체가 되어 그것을 움직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중국은 어떨까. 중국의 세대를 구분하는 큰 축은 49년 공산화와 66년에서 76년까지로 대별되는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89년 톈안먼(天安門)으로 인해 중국에도 386과 비슷한 세대가 생기기는 했지만 사회주의 체제라는 거대한 틀 거리가 바뀌지 않은 상태여서 그 둘을 구분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와 달리 66년부터 76년까지 지속된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은 세대의 구분 정도가 아니라 중국인들의 의식에 전반적인 영향을 주는 계기였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교육기관은 문을 닫았고, 그 결과 이 시기에 교육을 받아야할 대부분의 세대는 큰 공백기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 낳아 잘 길렀더니...

a 산속 오지 마을에 사는 아이. 이들은 소황제와 달리 힘든 일생이 예고되어 있다

산속 오지 마을에 사는 아이. 이들은 소황제와 달리 힘든 일생이 예고되어 있다 ⓒ 조창완

따라서 중국의 세대는 크게 3세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문혁(文革)이 끝난 이후에 초등학교에 들어간 세대이다. 그들은 어린이부터 이제 30세 정도까지의 나이다. 이 세대는 직접적이지 않다고 해도 독생자녀 제도의 시행으로 형제도 없이 독자인 세대들이다. 따라서 자신의 학업능력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최상의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집에서는 황제가 되었던 세대다. 도시의 중산층 가정에 산다면 세뱃돈으로 부모의 한달 월급을 넘는 1000위안 정도를 받아서 돈을 쓸 줄 아는 세대다. 3살 정도면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손에 안겨 유아원에 다녔다. 집에서 황제였다면 학교에서는 절대 군주와 같은 역할을 하는 선생님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자율과 통제를 비교적 배울 수 있었다.

초등학교 나이 때 까지는 구단위 정도에 세워진 ‘소년궁’(少年宮)에 가서 사회주의적 색채가 짙은 놀이를 즐겼고, 조금 크면 대형 쇼핑몰의 꼭대기 층에 빠짐없이 만들어진 오락실에 가서 놀았다. 최근에는 새롭게 생겨난 왕빠(網吧 PC방)에 가서 네트워크 게임을 즐길 줄 아는 세대다. 그들에게는 유명 메이커를 즐길 수 있는 황제와 같은 능력이 있지만 자신의 등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6명의 어른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는 세대다.


지금은 자신을 떠받들지만 얼마 있지 않아서 퇴직하면 자신에게 최소한의 책임이라도 올 것이 뻔한데 마음이 편할 리 있을까.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황제에서 백성으로 전락하는 가장 혼돈스러운 세대이기도 하다. 이런 중압감은 아이들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자식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부모를 살해한 사건이 종종 보도되는데 이런 현상은 전부나 아닐지라도 독생자녀 제도의 기형적 산물 가운데 하나다.

영화로 보는 중년들의 자화상

a 영화 '일성탄식'의 한 장면. 작가와 보조로 일하던 젊은 여자와의 사랑을 그려 많은 공감을 받았다

영화 '일성탄식'의 한 장면. 작가와 보조로 일하던 젊은 여자와의 사랑을 그려 많은 공감을 받았다

다음 세대는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당시 홍위병으로 뛰어다녔거나 문혁의 기억이 짙은 중년세대다. 그들의 일편은 최근에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한 만큼 영화를 통해 살펴보자. 우리가 아는 중국 영화는 장이머우(張藝謀), 첸카이거(陳凱歌) 등 5세대로 대표되는 예술영화가 대부분이지만 일반 중국인들에게 5세대 영화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다. 물론 중국에서 흥행하는 영화에는 할리우드 영화가 적지 않지만 그래도 경쟁력을 갖춘 영화가 있는데 바로 ‘진실극(眞實劇)’으로 불리는 생활영화이다.


허수이피엔(賀歲片)이라고 불리는 춘지에(春節 우리의 설날)개봉 영화 시장에서 거의 독보적인 위치를 갖고 있다가 2년전부터는 아예 경쟁자가 없어서 이 영화시장에 물러난 펑샤오깡(馮小剛)이나 초반에 예술영화를 만들다가 생활 영화쪽으로 방향을 돌린 황젠신(黃建新)등이 그런 감독이다. 그들의 영화에 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중국인들의 심리상태와 고민을 부분적으로 느낄 수 있어서 진실극(眞實劇)으로 부른다.

급속히 늘어나는 중국 도시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는 이혼, 혼외정사 등 부부간에 사라져 버린 애정과 아이의 양육 등 현실의 문제이다. 거기에 노인 문제와 더 나아가 사회 제도적인 문제까지도 진실극(眞實劇)이 다루는 소재 중에 하나다.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이후 문예작품은 정치적인 의식을 고취하는데 충실해야한다는 이유만으로 현실문제는 도외시하거나 5세대처럼 과거나 농촌에 회귀하는 모습이 많았다. 5세대의 반발격으로 나온 6세대는 5세대처럼 과거나 농촌에 몰입하지 않았지만 거대 담론을 영상으로 담아내는데 치중했지 당대인들의 생활을 담아내는 데까지 신경을 쏟을 겨를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영화 내에 개개인의 애정이나 가정을 담는 것은 금기에 가까웠다. 이 때문에 관객들의 시선은 점점 영화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도시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이혼율이 높아지는 등 가정문제가 심각한 중국이지만 영화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는데 많은 제약이 따랐기 때문에 영화는 남의 일들이 되기 십상이었다. 이런 가운데 영화인들에게 현실을 스크린에 담아야한다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때 현실문제의 영화화가 제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한 것은 <일성탄식 一聲歎息>의 펑샤오강(馮小剛)감독이다. 이 영화는 한 작가가 창작을 위해 머물던 하이난다오(海南島)에서 보조로 일하던 여자와 사랑에 빠져 가정에 혼란을 겪는 모습을 담고 있다. 혼외정사의 문제와 이혼을 직접적으로 다룬 이 영화는 팬들에게 깊은 공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흥행에도 성공했다. 물론 <일성탄식>에 앞서 중간 단계를 넘은 노력도 계속됐다.

옴니버스 영화 <애정마라탕 愛情麻辣燙>은 결혼을 앞둔 남녀를 비롯해 아이가 자라고 난후 가정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부부, 그리고 노년의 한 할머니가 각기 다른 3명의 할아버지를 놓고 고민하는 문제 등 중국 도시민들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 <헤어지기 어렵다 說好不分手>도 축구전문기자의 가정에 일어나는 혼외정사과 이혼에 관한 문제를 심도 깊게 다룬 영화다. 두 영화는 진실극(眞實劇) 답게 어줍잖은 화해보다는 여운을 남기는 쪽에서 결말을 맺었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a 영화 '누가 괜찮다고 하는가'. 문혁에 만난 홍위병 출신의 아내와 인텔리 후배 사이에 갈등하는 중년의 의사가 갈등의 중심이다.

영화 '누가 괜찮다고 하는가'. 문혁에 만난 홍위병 출신의 아내와 인텔리 후배 사이에 갈등하는 중년의 의사가 갈등의 중심이다.

펑샤오강(馮小剛)과 더불어 5.5세대의 대표주자중 하나인 황젠신(黃建新)은 2001년 <누가 내가 괜찮다고 하는가(誰說我不在乎)>에서 중국 현실 문제를 다뤄 큰 공감을 받았다. 그가 이 영화에서 내세운 갈등도 결혼한 부부 사이에 벌어지는 문화차이와 남자의 외도 문제이다. 남자는 의대를 졸업한 후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으로 하방 되어 농촌에서 일하다가 홍위병이었던 여자를 만난다.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해서 도시에 사는데, 둘간에는 문화적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 당연했다. 정신과 의사인 남자의 직장에서 일하는 아름다운 후배 여의사가 남자이게 관심을 쏟고, 사라진 결혼증서 파동으로 인해 이 가정은 혼란에 빠진다.

딸의 시각으로 그려가는 이 영화는 문화격차와 외도를 다루면서 화해를 시도한다. 하지만 딸의 가출로 얻어지는 화해는 뭔가 씁쓸한 맛이 든다. 날로 늘어가는 이혼이나 혼외정사 등 현실과는 좀 갭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독생자녀 세대와 문혁(文革)세대의 중간에 현재 30~40세 정도의 청년층이 존재한다. 이들은 층이 두텁지 않지만 중국의 개방을 몸으로 체험한 세대다. 비교적 빠르게 체제의 변화를 순응할줄 아는 세대들이다. 그들은 문혁세대의 공백기를 뛰어넘는 한편 문혁세대를 부양해야할 임무를 지고 있는 세대들이다.

심각한 노인문제

a 더위를 식히기 위해 나온 노인들.

더위를 식히기 위해 나온 노인들. ⓒ 조창완

한국의 노인문제나 노령화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중국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중국의 60세 이상 노인인구는 2000년 1억 3천만명을 넘어 전 인구의 10.7%를 넘었다. 2002년 8월 중국과학원이 발표한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9062만명에 달해 전인구의 7.1%를 차지했다. 한국이 2000년 7.2%를 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노령화는 이미 한국의 수준에 도달했다. 연령별 인구구조는 이미 노년형으로 접어들었다. 특히 한 자녀만 낳게 하는 독생자녀 제도가 아직도 철저히 지켜지고 있어 이런 추세는 갈수록 빨라질 전망이다.

2000년 5차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중국의 아동인구는 전체의 22.8%로 1964년 최고치의 40.7%보다 18%포인트가 줄었다. 보고서는 2025년에는 노인인구가 아동인구를 넘어서며 2050년에는 아동인구의 2배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중국 정부로서는 양로, 의료, 부양에 대한 부담을 가져와 노인문제의 압력이 방대해 질 것이라고 근심하는 게 당연하다. 이는 60세 이상의 노인뿐만 아니다.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다가 40대 후반이면 샤강(下崗) 일시 해고)을 당해야 하는 중국인들에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적지 않은 공포감을 가져다 준다.

현재 샤강 노동자들 가운데 다시 직장에서 부를 것으로 기대하는 이는 거의 없고, 기본 생활비도 되지 않는 200~400위안에 의탁하기 보다는 노점상 들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만 이들이 갈 수 있는 길은 너무 좁다. 이런 샤강(下崗) 노동자들 역시 사실상 ‘조로(早老)’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삶을 향유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우선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 베이징, 상하이 등에서 중년을 보낼 수 있었던 세대는 자신의 생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을 만들 시간이 있었다. 사회적 지위나 교육의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40~60대로 문화대혁명 당시 교육 기회를 잃었다가 사회에 적응도 하기 전에 직장을 잃어버린 세대는 세상에 대한 푸념밖에 가질 수 없는 끼인 세대이다. 앞선 노인세대는 갓 태동하기 시작한 노인 복지 정책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현재 중년의 세대는 사회복지 정책의 공백기와도 같은 시기를 살았다. 90년대 이후부터 점차 사회복지를 축소해 현재는 가장 기초적인 혜택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유가 있는 이들이라면 최근 급속히 늘어가는 주택건설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능력이 없다면 노년을 괴로울 수 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지금까지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차이나소프트’의 오마이뉴스 연재는 이번 이 마지막입니다. 이 글은 정리와 추가 작업을 마치고, 이달 말경에 ‘문화유람’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부족한 글에 많은 조언을 해주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머잖아 다른 연재로 찾아뵙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지금까지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차이나소프트’의 오마이뉴스 연재는 이번 이 마지막입니다. 이 글은 정리와 추가 작업을 마치고, 이달 말경에 ‘문화유람’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부족한 글에 많은 조언을 해주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머잖아 다른 연재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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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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