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동 곱창골목엔 쫄깃한 맛이 있다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 -2] 서울 청계8가 황학동 곱창

등록 2003.01.18 11:33수정 2003.01.2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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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도깨비시장, 곱창골목 가는 길 앞 청계천 8가

도깨비시장, 곱창골목 가는 길 앞 청계천 8가 ⓒ 김규환


"황학동?"


선뜻 떠오르질 않는다. "청계천 8가?" "음… 그 음침한 곳!" 조금만 내려가면 동대문패션타운이 즐비하다. 이곳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도깨비시장'이라고 한다. 삼일아파트가 복개된 청계천을 따라 줄지어 들어선 곳, 낮에 봐도 음침하고 밤에 가서 휘파람 한 번 "휘이익~" 불면 어디서든 도깨비가 튀어나올 음침, 음산, 음울한 분위기를 띠고 있는 곳이 도깨비 시장이다. 이곳에 황학동 곱창골목이 있다. 그곳에 가면 맛이 있다.

자잘한 골목으로 들어가면 온갖 전자 제품을 파는 도깨비 시장이다. 미로여서 신당역까지 가기란 쉽지 않다. 가는 길엔 불법 복사한 테잎이 흘러간 노래부터 최신 유행 곡까지 진을 치고 있다. 국산은 주로 TV와 VTR, 가스레인지 종류고 라디오, 전축, 리모컨, 이어폰 등 미세하고 손만 조금 보면 예전 것이 새 걸로 둔갑하는 추억의 일본 제품이 주름잡고 있다.

a 곱창골목에 들어서면 허한 속이 꿈틀거린다

곱창골목에 들어서면 허한 속이 꿈틀거린다 ⓒ 김규환

신설동 5거리에서 두 개의 고가를 통과하여 도로교통공단 방향으로 직진을 하면 곱창집이 20여 개 있다. 하지만 진짜 곱창의 원조거리는 아니다. 또 한곳 서울교대 정문 건너편 서너 집이 원조를 달았지만 곱창을 잘 하는 이곳과는 비교가 안된다.

양파 한 쪽과 감자쪼가리 올려주고 솥뚜껑 뒤집어 기름기 질질 모이게 하여 기름 속에서 고기만 꺼내 먹게 하는 야박한 냄새만 풍기는 구이는 미식가의 관심 끌기 힘들다. 친구들은 서너 점 먹고는 자리를 뜨자고 재촉을 했다.

a 곱창 볶기

곱창 볶기 ⓒ 김규환

청계천 8가 도깨비 시장 입구가 황학동 곱창골목이다. 연탄을 때는 국내 최장수 아파트인 삼일아파트와 붙어있고 시멘트가 부스러져 내려오고 녹이 탱탱 슨 철 구조가 언제 일그러져 무너질지 모르는 절박한 217동 입구부터 시작되는 골목이 시골 장터 느낌을 주는 곱창의 본고장이다.


종류별로 구색을 갖추고 있다. 소와 돼지, 대창과 막창, 볶음과 구이, 전골의 구분이 가능한 양쪽에 빼곡이 들어선 150여m. 국내 최대 창자 소비처이다. 세계 최대 소비처일 지도 모른다. 서양사람들이 내장은 동물을 잡자마자 폐기해 버린 까닭에 중국 어느 한 곳이나 우리나라 이곳이 진검승부를 벌여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a 야채 넣기

야채 넣기 ⓒ 김규환

미리 살짝 삶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둔 창자를 기름을 살짝 두르고 양파와 같이 지글지글 볶는다. 한 번 삶았으므로 기름기도 쫙 빠졌다. 다음 양념고추장을 듬뿍 쳐 뒤적이고 한소끔 세월을 보낸 뒤 양배추를 섞어 달짝지근한 맛을 더하고 당면이 내장에서 나온 소량의 기름기를 빨아먹고 부들부들 야들야들 보드랍게 윤기가 칠해진다. 마지막으로 쑥갓 향을 버무려 내온다. 통깨를 두르면 먹음직스러워 진다. 상추와 마늘 고추가 상에 차려있다.


"지글지글", "촤~악" 소리를 내며 잘도 익는다. 확 올라온 김에 가려 안에 주인이 있는지 조차 몰라보게 화끈한 행사가 펼쳐진다.

a 고추장을 섞어 볶아주고

고추장을 섞어 볶아주고 ⓒ 김규환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한여름 대낮에 이곳을 지나면 곱창 특유의 구린내와 어젯밤 기름이 바닥에 툭툭 떨어져 조금은 속을 느글느글하게 한 번 뒤집어 주기도 한다. 가을철 커피 색이 낙엽색을 닮아 반가워질 무렵이면 고소한 내음이 사람을 유혹한다.

찬바람이 불고 눈이 펄펄 오고 난 한겨울 주말에 이곳을 찾으면 대낮부터 사람들로 북적인다. 곱창 맛을 아는 사람들은 땅이 꽁꽁 언 날 일부러 찾는다. 같은 값을 치르고서도 식당 안으로 기어들어 가서 먹는 것보다 바깥 조리대 근처에 쳐진 포장마차에서 시린 등을 소주한잔 마셔주며 먹는 게 제일이다.

길가에 펼쳐진 풍경과 맛난 조리 과정도 맛볼 수 있고 따끈하게 갓 해낸 곱창볶음을 먹을 특권을 얻는다. 조금 식었다 싶으면 얼른 데워달라면 된다. 볶음 한 접시에 소주 한잔을 걸치지 않고서 이곳을 유유히 벗어날 장사가 대체 몇이나 될까?

그냥 지나치기엔 고역인 이 거리는 신설동역에서 걸어가면 조금 멀고 동대문운동장역에서 접근하기도 쉽지 않다. 신당역에서 가자니 걷기에 벅차다. 이곳을 가자면 동묘역에서 관우장군 사당이 있는 동묘를 지나 청계고가도로가 보이면 무작정 건너 직진을 하면 된다. 이곳을 지나치면 신당동 중앙시장으로 넘는 야트막한 고개가 기다리고 있다.

a 당면과 쑥갓을 곁들인 곱창볶음을 따로 내왔습니다

당면과 쑥갓을 곁들인 곱창볶음을 따로 내왔습니다 ⓒ 김규환

이곳은 말 그대로 도깨비를 판다. 그것도 새것은 취급하지 않는다. 2~30년 전 것을 팔기도 하고 작년에 누가 쓰다 버린 것을 주워서 수리하여 볼품 있게 새것으로 만드는 귀신들이 몰려 사는 지역이다.

대학 4학년이 되던 해에 삼일아파트에서 한 겨울을 난 적이 있다. 신설동 로터리 수도학원 앞에서 카세트 테잎을 팔던 1990년 1월 22일은 마침 민정, 민주, 공화 3당 야합이 있었던 날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신설동에서 리어카에 테잎을 팔고 있었다. 카바이트 한 덩이에 물을 부어 주위를 밝히면서 말이다.

스피커에선 "저기 보이는 노란 찻집, 오늘은 그녀를 세 번째 만나는 날~"로 시작하는 '그녀를 만나기 100m 전' 이라는 노래와 '나는 그런 여자가 좋더라'라는 노래를 매일 틀었다. 손님이 떨어질 새벽 한 시가 되면 정태춘 박은옥의 노래를 틀고 자리를 파하고 손을 호호 불며 청계천으로 돌아왔다.

a 비닐 쳐진 포장마차에서 먹으면 더 맛있습니다

비닐 쳐진 포장마차에서 먹으면 더 맛있습니다 ⓒ 김규환

저녁 해질 무렵부터 예닐곱 시간을 추위를 무릅쓰고 돌아와 이틀이 멀다하고 조카님(고모 손자), 형과 함께 소주 한잔으로 몸을 녹였다. 곱창이란 게 날이 추우면 더 땡기기도 하지만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아파트에 들어가 잠을 청하기가 마치 외양간에서 자는 듯한 기분이었기에 거나하게 술에 취해 소주로 몸을 미리 풀고 들어가지 않으면 싸늘한 냉기에 눈을 붙일 수 없었던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에 온 뒤 내 단골 음식이 곱창이다. 그 인연의 시작은 1987년 쯤이다. 데모를 나갔다가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다. 악세사리 가게가 밀집되어 있던 '동대문극장' 주변 곱창집으로 황급히 도망쳐 들어가 소주 한잔을 털어 넣고 잠잠해질 때 다시 나와 합류하던 날부터 그 쫄깃한 곱창을 질겅질겅 즐겨 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청계천 복원 사업이 본격화되면 옛맛을 잃을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신림동 순대의 퇴락에서 교훈을 얻고 실패를 미리 짐작하고 예견하고도 남는다. 음식은 맛과 분위기가 조화로울 때 가장 맛있는 행세를 한다. 특급 호텔에서 고상한 모양을 하고 먹을 게 따로 있다.

a 대창도 한 번 맛보세요

대창도 한 번 맛보세요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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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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