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고주몽 3

등록 2003.02.05 19:36수정 2003.02.0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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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의 영고는 일년에 한 번씩 12월에 하늘에 제사를 치르는 의식으로 거행된다. 음식을 먹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데, 영고가 끝나게 되면 본격적인 수렵활동이 시작된다. 금와왕의 부여는 북쪽의 부여와 구별되어 동부여라고 불렸지만 그 풍속은 부여의 것을 따르고 있었다.

제사장은 소를 잡아 그 발굽을 보며 점을 치는데 이는 영고 때뿐만이 아니라 전쟁 같은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도 시행하곤 하는 일이었다. 제사장은 하늘의 뜻을 받드는 양 행동하지만 실은 왕과 귀족간의 회의 결과나 왕에 대한 신임을 백성들에게 공포하는 일종의 선전극일뿐이었다. 왕권보다는 귀족사회의 입김이 강했던 부여에서 왕이 신임을 얻지 못하면 제사장은 흉한 점괘를 내어놓았고 왕은 퇴출 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전쟁여부도 이미 결정나 있는 사안을 백성들에게 알리면서 결속력을 다지는 계기로 삼는 도구였다. 이때 소발굽의 합치 여부를 따지기 때문에 제사장은 사전에 적당한 소를 물색해 골라놓고는 했다. 현재 부여왕인 금와는 귀족들의 신임을 얻고 있었기에 점괘는 당연히 소발굽이 붙어있는 길(吉)로 나왔고 백성들은 웃고 떠들고 춤추며 음식을 차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주몽은 구석에서 쓸쓸히 이 축제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20세를 맞이한 그의 손에는 금와왕이 직접 선사한 활이 들려 있었다. 어려서부터 주몽의 손에서는 활이 떠난 적이 없었다. 주몽은 아기였을 때부터 활을 쥐어주면 울음을 뚝 그칠 정도였고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어른들을 흉내내어 잔 나뭇가지를 활에 재어 쏘고 다닐 정도였다. 그로 인해 활잘 쏘는 사람을 뜻하는 주몽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실제로 장성하고서부터 활쏘기 하나는 나라안에서 당할 자가 없었다.

어머니인 유화부인이 외지인으로서 주몽을 잉태한 후 금와왕에게로 왔기 때문에 영고 때만큼은 바깥사람에게 배타성을 보이는 부여인들에게서 주몽은 평소보다 더한 소외감을 느꼈다. 영고는 겉모습만 보아서는 단순히 놀고 먹는 축제로 보였지만 이 시기에는 각지에 흩어져 있던 영주인 호민들이 모여 나라의 대소사를 논하거나 간청하는 자리가 수시로 마련되기 때문에 외부인이나 노예들은 철저히 이 축제에서 배제되는 까닭이었다. 그나마 주몽은 금와왕의 총애를 받고 있는 등 공개적으로 소외를 당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유달리 어려서부터 민감한 감수성을 지닌 주몽은 자신이 이 나라에서 주류로서 행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어릴 때는 멋모르고 같이 놀던 금와왕의 일곱 아들에게 나이가 들수록 주몽은 늘 주눅이 들었고 우울한 표정을 지은 채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런 금와왕의 일곱 아들은 주몽을 괴롭힘의 대상으로 삼았고 그 정도는 특히 맏아들인 대소가 심했다. 대소는 주몽에게 뿐만 아니라 아랫사람들에게 함부로 행동하는 경향이 지나쳤으며 이로 인해 금와왕의 일곱 아들 중 가장 재능이 뛰어났음에도 선뜻 태자로 추대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영고에서는 대소를 태자로 정할 것인가 하는 논의가 조심스럽게 전개되고 있었다. 해부루로부터 이어온 동부여는 금와왕의 선정으로 잘 다스려져 있기 때문에 많은 수의 귀족들은 대소의 태자추대에 대해 이견이 없었지만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대소왕자는 아직 태자로서 왕통을 이어나가기에는 수양이 부족합니다."

작은 부락의 호민인 오이가 조심스레 반대의견을 밝히고 있었다. 비록 소수의 의견이지만 모두가 합의를 한 상태에서 태자를 지목해야만 뒤탈이 없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금와왕은 급할 것이 없었다. 금와왕의 마음속에는 대소를 이미 태자로 점찍고 있었고 이번 영고가 아니더라도 다음 영고 때까지 모두를 천천히 설득해 나가면 된다는 의도였다. 만에 하나 설득이 안 된다면 암묵적인 동의 하에 다른 방법도 쓸 수 있다는 계획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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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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