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다음 차례는 당신일지 모르오

[문화유산답사 54] 연세대 ‘연신원’ 철거에 대한 단상

등록 2003.02.05 21:55수정 2003.02.1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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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1월 27일 새벽 1시 30분, 두 대의 굴삭기와 20여 명의 장정이 나타나 연세대 안에 있는 ‘연합신학대학원’ 건물(이하 연신원)을 부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1월 27일 새벽 1시 30분, 두 대의 굴삭기와 20여 명의 장정이 나타나 연세대 안에 있는 ‘연합신학대학원’ 건물(이하 연신원)을 부수는 일이 벌어졌다. ⓒ 권기봉

지난달 1월 27일(월) 새벽 1시 30분, 연세대에 두 대의 굴삭기와 20여 명의 장정들이 나타나 한 벽돌 건물을 부수는 일이 벌어졌다. 무너진 건물은 ‘연합신학대학원(이하 연신원)’ 건물로 지난 1964년 세계교회협의회(W.C.C.)의 도움으로 세워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철거를 두고 연세대는 물론 문화연대와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까지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저 ‘한 건물을 부수고 새 건물을 들인다’는 것인데 왜 이렇게 소란스러울까? 아무래도 이번 연신원 건물 철거가 단순히 대학 구내의 한 건물을 부수는 차원은 아니었던 듯 하다.


새벽 1시경에 건물 철거를 한다?

a 5시간에 걸쳐 벌어진 철거 작업으로 인해 연신원은 현관 부분을 제외하고는 알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철거 공사는 현재 중단된 상태다.

5시간에 걸쳐 벌어진 철거 작업으로 인해 연신원은 현관 부분을 제외하고는 알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철거 공사는 현재 중단된 상태다. ⓒ 권기봉

이미 지난 1995년 연세대 이사회는 연합신학대학원이 이용해 오던 연신원 자리에 6천여평 규모의 ‘연세신학선교센터’를 재건축하기로 결정하고 같은 해 10월 기공식까지 치른 바 있으나, 사정에 의해 착공이 연기돼왔다. 그러다가 지난 2001년 구체적인 설계도가 나왔고, 이를 확인한 문과대 교수들은 곧바로 “연신원을 헐고 큰 빌딩을 짓는 것은 주변 경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연세대의 역사성을 훼손하는 일”이라며 ‘연신원 지키기 및 에코 캠퍼스를 위함 모임(이하 연신원 모임, 공동대표 이신행·정현종·조한혜정)’을 결성, 지금까지 연신원 옆에 천막을 치고 철거를 막아왔던 것이다.

그러던 중 지난 1월 13일(월) (주)대우건설이 시공 계약을 따냈고 결국 27일 ‘새벽 철거’로 비화됐다. 새벽녘의 기습적인 철거에 대해 연세대 부총장 이성호씨는 “일단 시공사가 선정되면 그 후의 공사과정에는 학교측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며 (주)대우건설 측에 책임을 넘겼으나, 연신원 모임은 “연신원 건물이 부서지긴 했지만 건축학자에 따르면 지금의 잔해로도 충분히 복구할 수 있다”며 “새벽 철거의 책임자 사과와 연신원의 원상 복구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연신원이 철거된 지금도 그 앞에서는 천막 농성이 계속되고 있으며, 철거 잔해 처리 작업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문과대 vs 신과대 ?

a 연신원은 지난 1964년 세계교회협의회(W.C.C.)의 도움으로 세워진 건물이다. 공간이 비좁고 낡아 지상?지하 8층 규모의 연세신학선교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연신원은 지난 1964년 세계교회협의회(W.C.C.)의 도움으로 세워진 건물이다. 공간이 비좁고 낡아 지상?지하 8층 규모의 연세신학선교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 문화연대

그러나 연신원 문제를 두고 ‘문과대와 신과대간의 다툼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일단 연신원 모임에 소속된 교수들이 대부분 문과대 출신일 뿐만 아니라, 그동안 신과대의 열악한 교육환경에 대해 다른 단과대학에서는 무관심한 자세로 일관해 왔다는 것이다.


즉 신과대 1천여명의 학생들은 그동안 강의시설이 부족해 아펜젤러관과 연신원에 분산돼 공부를 해왔는데, 연신원의 경우 “비가 오면 물이 샐 정도로 시설이 낡아 리모델링 등이 필요했고 공간도 상당히 비좁았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신과대에서는 “1956년 지어진 청경관을 헐고 지난 1998년 제2인문관(위당관)을 지을 때나 역시 같은 해 지어진 법과대 건물(광복관)을 헐고 새 건물을 세울 때는 가만히 있더니, 왜 신과대가 연신원 건물을 헐고 새 건물을 세우려 하니 이렇게 반대가 심한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또 연신원이 헐린 지난 1월 27일부터 항의 서명 운동을 벌여오고 있는 생활과학대 4학년 이용진씨는 “2월 5일 현재(화) 문과대생으로부터 50건 등 110여 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았지만, 신과대 재학생의 서명은 아직 단 한건도 없었다”며 자칫 문과대와 신과대 사이의 알력 다툼으로 비칠까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a ‘연신원 지키기 및 에코 캠퍼스를 위함 모임’은 헐린 연신원을 다시 복원하라고 요구하며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연신원 지키기 및 에코 캠퍼스를 위함 모임’은 헐린 연신원을 다시 복원하라고 요구하며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 권기봉

반면 연신원 모임의 교수 김용민씨(독문과)는 “연세신학선교센터 건립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장소에 지어 ‘연세신학’의 혼이 담겨 있는 장소만은 지키자”는 것이라며 “이미 대체 부지로 5곳을 제안한 바 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4일(화) 연신원 터를 찾은 문화연대 공간환경위원회 부위원장 겸 상지대 교수 홍성태씨(교양과)는 “공간의 파괴는 시간의 파괴고, 시간의 파괴는 기억의 파괴”라며 “연신원이 헐려 버려 오랜 역사에 대한 기억상실증에 걸려버릴 지도 모를 일”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연세대 구성원의 한축인 일반 학생들의 생각은 다소 다른 것으로 보였다. 도서관 앞에서 만난 이모씨(25)는 “학생들 사이에는 문과대과 신과대 사이의 힘겨루기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 것 같다”며 “실제로 학생들은 이번 연신원 사태에 대해 별 관심도 없는 것 같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소유 문제에서 오는 보존의 한계

a 연신원 바로 아래 한때 시인 윤동주가 살던 기숙사 건물이 고즈넉하게 앉아 지나가는 이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핀슨홀(현 법인사무처 건물)이라 불리는 이 건물은 1922년 4월 지어졌는데, 1938년 4월 9일 연희전문에 입학한 윤동주가 기숙하던 건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연신원과 마찬가지로 언제 헐릴 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연신원 바로 아래 한때 시인 윤동주가 살던 기숙사 건물이 고즈넉하게 앉아 지나가는 이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핀슨홀(현 법인사무처 건물)이라 불리는 이 건물은 1922년 4월 지어졌는데, 1938년 4월 9일 연희전문에 입학한 윤동주가 기숙하던 건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연신원과 마찬가지로 언제 헐릴 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 권기봉

연신원 건물이 헐려 제 기능을 잃은 지금 대두되는 문제는 ‘대학 내에서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점과 ‘한 오랜 건물을 바라보는 시각의 현격한 차이가 드러났다’는 것일 테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소유 문제에서 오는 보존의 한계’다.

이미 우리는 지난 1월 25일(토) 서울 강북구에 있는 최남선 옛집 ‘소원(素園)’이 헐려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고, 화가 고희동이 살았던 종로구 집의 운명 역시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놓여 있다. 이들은 모두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역사적 의의가 다분한 건축물이나, 개인이나 사기업이 소유하고 있던 데서 이미 영구적인 보존?보호에 한계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공기관이 그 건축물에 대해 만약 ‘더 이상의 보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게 되면 거의 예외 없이 건축업자에게 팔려 ‘개발시대의 환생’을 다시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몇 십 년이 지난 뒤의 역사적 재평가를 통해 ‘당시 보존을 했어야 한다’고 후회를 한들, 한번 헐린 건축물은 다시 세울 수 없는데도 말이다.

a 일본 유학 첫해인 1942년 잠시 귀국한 윤동주. 뒷줄 오른쪽이 윤동주인데, 1938년부터 1941년까지 당시 연희전문에서 수학했다.

일본 유학 첫해인 1942년 잠시 귀국한 윤동주. 뒷줄 오른쪽이 윤동주인데, 1938년부터 1941년까지 당시 연희전문에서 수학했다. ⓒ 권기봉

연세대의 경우라고 예외는 아니다. 서울 시내에 위치한 대학들 중에 고풍스런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 대학은 연세대가 단연 으뜸이다. 그런 연세대에서 연신원 건물 철거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특히 이 문제가 비단 연신원 건물 철거에만 미칠 계제가 아니기에 그 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돌집’ 연신원 건물은 대학 본부로 쓰이는 언더우드관이나 아펜젤러관, 스팀슨관 등과는 달리 사적 등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아, 이 같은 사태는 이미 예견됐다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재차 연세신학선교센터를 다른 곳에 짓든지, 연신원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뜯어 이전하는 등의 다른 방법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소유권자인 대학 본부 등이 나서서 건물을 허는 결정을 하게 되면 교수나 학생, 교직원은 물론 시민단체가 나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여론의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별달리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 현재로서는 사실이다.

윤동주, 다음 차례는 당신일 지도 모르오!

a 핀슨홀 아래에는 1968년 연세대 총학생회에서 세운 ‘윤동주 시비’가 서있는데, 이 시비는 핀슨홀과 그 오른쪽의 한경관, 헐려버린 연신원과 함께 고즈넉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핀슨홀 아래에는 1968년 연세대 총학생회에서 세운 ‘윤동주 시비’가 서있는데, 이 시비는 핀슨홀과 그 오른쪽의 한경관, 헐려버린 연신원과 함께 고즈넉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 권기봉

따라서 차제에 ‘내서널 트러스트 운동’ 등을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역사적 평가가 완전히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아직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개발시대의 환상’이 남아있는 지금,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은 의미 있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먼 나라 이야기 아니냐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미 전 국립중앙박물과장 고 최순우 고택 등 내셔널 트러스트운동의 성과를 눈으로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새벽의 갑작스런 철거 작업으로 무너져 버린 연신원 바로 아래에는 한때 시인 윤동주가 살던 기숙사 건물이 고즈넉하게 앉아 지나가는 이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핀슨홀(현 법인사무처 건물)이라 불리는 이 건물은 1938년 연희전문에 입학한 윤동주가 기숙하던 건물인데, 연신원이나 한경관과 마찬가지로 사적 등의 문화재로 지정된 바 없다. 즉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서는 헐릴 수도 있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물론 핀슨홀을 헐고 새 건물을 짓는 등의 계획이 있다고 알려진 바 없고 윤동주라는 ‘대스타’가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세상일을 그 누가 안다던가?

윤동주, 다음 차례는 당신일 지도 모르오!

a 현재 교직원식당으로 이용되고 있는 한경관이다. 핀슨홀 및 연신원과 함께 삼각 구도를 이루며 서있었으나, 연신원 자리에 빌딩이 들어섬에 따라 핀슨홀과 함께 다소 어정쩡한 느낌으로 서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교직원식당으로 이용되고 있는 한경관이다. 핀슨홀 및 연신원과 함께 삼각 구도를 이루며 서있었으나, 연신원 자리에 빌딩이 들어섬에 따라 핀슨홀과 함께 다소 어정쩡한 느낌으로 서있을 것으로 보인다. ⓒ 권기봉

a 연세대 대학 본부가 이용하고 있는 언더우드관으로, 1924년 4월 준공됐다. 사적 제276호로 보호받고 있어,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핀슨홀이나 한경관, 이미 헐려 버린 연신원과는 완전히 다른 처지다.

연세대 대학 본부가 이용하고 있는 언더우드관으로, 1924년 4월 준공됐다. 사적 제276호로 보호받고 있어,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핀슨홀이나 한경관, 이미 헐려 버린 연신원과는 완전히 다른 처지다. ⓒ 권기봉

a 언더우드관 오른쪽에 자리 잡은 아펜젤러관으로, 역시 사적 제277호로 보호받고 있다. 맞은편의 스팀슨관 역시 사적 제255호로 보호받고 있다.

언더우드관 오른쪽에 자리 잡은 아펜젤러관으로, 역시 사적 제277호로 보호받고 있다. 맞은편의 스팀슨관 역시 사적 제255호로 보호받고 있다. ⓒ 권기봉



"내셔널트러스트"란?
시민 모금으로 자연 문화유산을 직접 구입해 보존

▲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을 통해 확보한 전 국립박물관장 고 최순우 고택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
1895년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 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나 증여, 모금 등을 통해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유산 및 문화유산을 확보한 후 시민 주도로 영구히 보전하고 관리하는 시민운동을 말한다.

현재 영국은 국토의 1.5%, 해안지역의 17%를 내셔널 트러스트를 통해 확보하고 있으며, 회원은 250만 명, 1년 예산이 3천억 원을 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뉴질랜드 등 전세계 약 24개국에 도입된 운동으로 활발한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www.nationaltrust.or.kr)'가 출범, 전 국토의 1% 소유 및 관리를 목표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미 지난해 5월 원래 소유주(사재구씨)의 기증과 시민 모금을 통해 인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560-1번지의 '매화마름 군락지' 912평을 확보한 바 있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서울 성북구 성북2동에 있는 전 국립박물관장 고 최순우의 약 120평 규모 고택을 확보했다.

'트러스트'는 '신탁'이라는 의미로, 일반적으로는 개인이나 기업 등의 이익을 위해 이루어지지만 내셔널트러스트는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보전하고 미래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이루어지는 특징이 있다. / 권기봉

덧붙이는 글 | 권기봉 기자의 홈페이지는 www.freechal.com/finlandia 입니다.

덧붙이는 글 권기봉 기자의 홈페이지는 www.freechal.com/finlandia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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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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