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에서는 유기 양계장에 갔었다. 도착 때부터 머무는 동안 가급적이면(?) 일을 했다. 먹고입고 자는 일에 빚지지 않아야 몸이나 마음이 가벼워서 그렇다.전희식
저녁 6시쯤 세어보니 모인 사람들이 어른들만 모두 54분이었다. 뒤늦게 오거나 먼저 간 사람들을 다 합하면 일흔 분이 넘을 듯하다. 거친 재생용지에 사진 한 장, 색깔 한 점 안 들어가는 잡지지만 같은 독자라는 사실 하나로 서로가 느끼는 동질감은 아주 대단해 보였다. 구독료가 없는 월간지지만 항상 성금들이 제작비를 넘어선다고 한다. 이런데서 오는 자부심들일까? 아무하고나 인사를 나누고 자기를 소개하고 책 이야기도 한다.
생활 속에서 자본주의가 아닌 공간들을 확보하고 이를 확장 해 나가자는 이 목사의 지론이 만든 공감대라고 볼 수도 있다. ‘풍경소리’의 낯익은 필자도 몇 분 만났다.
생각지도 않았던 아는 분들도 여럿 만났다. 익산에서 농사도 짓고 음식점도 하는 녹색평론 독자모임의 정아무개 선생 부부를 1년여만에 만났고, 오랫동안 독일에서 공부하고 온 푸른꿈고등학교 음악선생부부도 달포만에 다시 만났다. 무엇보다 우리집 설계를 도와준 귀농선배이자 천연염색의 일인자 토벽선생도 여기서 만났다. 우리쌀 지키기 100일 걷기운동을 할 때 만난 서울과 대전의 소비자모임 분들도 여럿 얼굴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춘천서 오신 신부님은 여전히 너털웃음과 통기타 솜씨가 일품이었다.
나를 가르치셨던 귀농학교 본부장님도 오셨다. 지금은 녹색대학 중책을 맡으신 모양이다.
‘풍경소리’독자모임에서 나는 내가 보고자 했던 바를 보았으며 내가 듣기를 바랐던 것을 들었다. 내 기대에 맞게 모임이 진행 된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해다. 누구에게나 그러했으리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큰 울림 같은 것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모임은 조용했으나 왕성했고 진지했으나 자유롭고 부드러웠다.
진행을 맡으신 김민해 목사는 밥을 먹자는 얘기와 자자는 얘기 정도를 했다. 두 시간여 이야기를 하신 이현주 목사도 아무 준비 없이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말은 이 목사의 입에서 나오지만 듣는 사람들이 만드는 말이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으나 못 이룬 것이 없었다. 완벽한 소통이었다.
이현주 목사는 이랬다
제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어찌 기운이 좋던지 뭔가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습니다. 하루 내내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해가 지고 잠자리에 드는 기도시간에 그랬습니다. 주님 왜 마무일도 없었습니까. 예수님이 정말 아무 일도 없었냐고 물었습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래... 아무 일도 없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뭐가 있겠느냐 라고 했습니다.
나는 유치한 질문을 하나 했었다. 두 번째는 제법 수준 있는 질문이라고 너스레를 떤 후 다음과 같이 여쭈어보았다. 언젠가 선생님이 깨달음을 줄 테니 돈 가져오라는 식의 마음공부 장사꾼들이 있다고 했는데 선생님은 장사꾼 아닌 참된 영성 프로그램을 진행하실 생각은 없으시냐고 물었는데 질문자가 머쓱할 정도로 답변이 짧았다. 없다는 것이었다. 내 수준과 모임의 수준 차가 너무 큰 게 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