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33

등록 2003.03.10 18:07수정 2003.03.1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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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왕의 길

주몽이 말갈족을 물리친 후 졸본천의 촌락들을 통합해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었다는 소식은 주변으로 널리 알려졌다. 비류수 하류에 위치하고 있으며 바다를 낀 기름진 땅을 가지고 있는 비류국의 왕 송양(松讓)은 이 소식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


"졸본천의 촌뜨기들을 관여하지 않고 멋대로 살게 놔두었더니 왕을 칭하는구나!"

송양이 가장 아끼는 대신인 마가(馬加) 부위염이 송양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조언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졸본천의 촌락들이 하나가 되어 나라를 이루었다는 것은 우리로서도 큰 일입니다. 당장 한족(漢族)들과 육지로의 통교가 쉽지 않으며 행인국, 북옥저와도 길이 막히게 됩니다."

"그놈들이 무슨 힘으로 우리를 막는단 말인가! 그들의 나라는 무엇이라 부르는가?"

"고구려(高句麗)라 하옵니다. 그들이 우리를 힘으로 막지는 않아도 무작정 길을 내주지 않고 우리에게 이득을 취하려 할 것입니다."


송양이 껄껄 웃었다.

"하찮은 것들이 감히 높을 고(高)자를 붙이다니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일단 사람을 보내어 그들의 동태를 알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사신으로 가겠으니 윤허해 주십시오."

옆에 있던 우가(牛加) 해위가 고개를 내저으며 부위염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렇지 않소. 사신을 먼저 보내려면 그들이 보내야지 대국에서 소국으로 먼저 사신을 보내는 것은 위신이 맞지 않소. 굳이 그들을 살펴보려면 눈치 빠른 자들을 첩자로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오."

송양이 해위의 말에 흡족한 듯 고개를 끄떡였다.

"그 말이 옳다. 사람을 뽑아 보내도록 하라."

해위의 명을 받은 비류국 사람 두 명이 장사치로 변장한 채 고구려로 흘러 들어왔다. 그들이 둘러본 고구려의 풍경과 사람들의 사는 모습은 예전 졸본천이 촌락 단위로 나뉘어 있었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들은 고구려의 왕이 살고 있다는 오녀산성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중에 그들은 농사꾼 차림의 촌부 두 명과 오녀산성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한 명은 평범한 농사꾼치고는 왠지 미끈한 얼굴이었으며 다른 한 명은 칼 한자루만 들고 있으면 영락없는 산적과 같은 모습이었다. 비류국 첩자들은 자신들이 부여에서 왔다고 소개하면서 고구려의 근황에 대해 이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대들의 왕은 다른 곳에서 왔다고 들었소. 어디에서 온 것이오?"

미끈한 얼굴의 사내가 억양에 한껏 공경의 뜻을 담아 말했다.

"우리 고구려의 국왕께서는 하늘이 내리신 분이시오."

비류국 첩자들은 아직도 채 지어지지 않은 오녀산성을 올려다 보며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하늘이 내리신 분이라면서 어찌 이리 궁벽한 곳에 살고 계신지요? 쓰러져 가는 성벽에 왕궁조차 보이질 않으니 말입니다."

산적같이 생긴 사내가 인상을 쓰며 뭐라고 하려는 것을 미끈한 얼굴의 사내가 가로채며 대답했다.

"대저 하늘은 사람을 내리시지 왕궁이나 금은보화까지 내리시는 것은 아니오. 왕궁이야 못 지을 것도 없지만 지금은 왕께서 백성들에게 노역의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것뿐이라오."

비류국의 첩자들은 아무래도 산적같이 생긴 이가 마음에 걸려 더 이상의 얘기는 하지 못했다.

봄을 맞아 땅을 갈고 파종을 하는 사람들의 바쁜 손길과 고구려의 왕 주몽이 이를 둘러보고 있는 광경이 그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때 주몽도 이들과 어울려 농사일을 하려고 했지만 묵거가 극구 말린바가 있었다.

"아직 고구려가 나라의 기강이 잡히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왕이 하는 일과 백성들이 하는 일은 구분해야 하는 법입니다. 왕께서 친히 여러 곳에 모습을 나타내어 돌보는 것으로도 백성들이 공경심을 갖도록 해야 하는 겁니다."

주몽은 모든 이가 더불어 사는 나라를 세운다는 자신의 뜻과는 맞지 않은 것이라 얘기했지만 고집 센 묵거는 여러 국가의 왕들을 예로 들며 주몽을 설득했다 급기야는 재사와 오이까지 묵거의 말이 옳다고 하니 주몽으로서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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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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