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34

등록 2003.03.11 18:06수정 2003.03.11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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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고구려의 백성들과 이를 지켜보는 주몽을 보고선 비류국의 첩자들은 속으로 비웃음을 금치 못했다. 왕이란 자의 행색이 옷만 좀 깨끗하다 뿐이지 비단 쪼가리 하나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들 사이를 서서히 지나가려던 찰나 얼굴이 미끈한 사내가 갑자기 비류국 첩자의 멱살을 잡으며 소리쳤다.

"네 놈들은 어디서 온 놈들이냐! 바른대로 고해라!"


다른 비류국 첩자가 깜짝 놀라 속에 품은 단도를 꺼내려 들었지만 이미 고구려 사람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 주몽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물었다.

"부분노 장군, 무슨 일이오?"

"출신이 불분명한 자들이 우리를 엿보고 있어 폐하께 데려 왔습니다."

비류국 첩자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시치미를 떼었다.

"출신이 불분명 하다니! 우리는 부여에서 온 장사치들일 뿐이오!"


부분노가 피식 웃으며 비류국의 첩자를 일으켜 사람들에게 보였다. 한동안 지켜보던 사람들이 웅성대더니 급기야는 웃기 시작했다.

"네 녀석의 저고리는 오른쪽으로 동여 매여 있지 않느냐! 이건 한족(漢族)들이 입는 방식이다!"


고조선부터 이어 내려온 복색은 저고리를 왼쪽으로 동여매는 방식이었고 부여 역시 저고리를 왼쪽으로 동여매고 다녔다. 하지만 졸본천의 촌락들이나 비류국은 요동에 있는 한나라의 세력과 통교하다 보니 그 영향을 받아 저고리를 오른쪽으로 하고 다니던 것을 부여에서 온 주몽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왼쪽으로 하고 다니자 새로운 나라 고구려의 이름아래 있던 뭇 백성들도 이를 따라하고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비류국의 첩자들은 사실대로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얘기를 다 들은 주몽은 크게 웃으며 부분노에게 비류국의 첩자들을 사신의 예로 접대하라고 명을 내렸다. 죽을 줄 알았더니 졸지에 첩자에서 사신으로 격상된 비류국의 첩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몽 앞에서 물러났다.

"비류국은 어떤 나라입니까?"

주몽이 좀 더 상세한 것을 알기 위해 재사와 묵거를 불렀다. 재사가 소매 속에서 지도를 꺼내 펼쳐들었다.

"지도를 보니 이곳 비류수를 거슬러 내려가면 있는데 저도 상세한 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 예부터 이곳은 조선의 땅이었다가 한나라에게 망한 후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 들었습니다. 이곳에는 여러 산물이 풍성해 많은 호구 수를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문 뒤에서 얘기를 듣고있던 월군녀가 나서서 주몽에게 대뜸 한마디를 던졌다.

"이 땅을 취하십시오. 이곳의 주인 송양은 왕을 자칭하고 있지만 사람됨이 유순할 뿐 겁이 많은 인물입니다. 한나라 요동태수 채진을 두려워해 매년 공물을 바치고 주위를 노략질하는 말갈족도 진압하지 못해 뇌물을 주어 달랠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백성들이 불안해하며 자신을 지킬 주군을 바라고 있습니다."

묵거가 수염을 조심스럽게 비비꼬면서 얘기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는 갓 나라를 세운 터이고 모든 것이 미흡합니다. 행여 힘으로 비류국을 취한다 할지라도 그곳의 백성들이 진심으로 폐하를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먼저 민심을 얻은 후 서서히 힘으로 누르면 절로 굴복해올 것이니 이것이 바로 손자(孫子)가 말한 최선의 방법인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입니다."

월군녀가 큰 소리로 묵거를 윽박질렀다.

"싸우지 않고 이기다니 무슨 소립니까? 폐하의 활로 저들을 꺾으면 백성들이야 절로 굴복해 들어올 것입니다!"

원래가 대가 센 월군녀이고 왕비다 보니 묵거는 잠시 기가 죽어 비비꼬던 수염을 놓았다가 다시 잡으며 주몽에게 고했다.

"우선 비류국 사람들에게 국서를 써서 보내십시오. 그런 다음 제가 사신으로 가 그들의 민심을 뒤흔들어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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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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