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목포항이 그랬다면 뱃길이 끊기는 건 당연하지요.김규환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목포여객터미널이다. 배가 언제 뜰지 모르기 때문에 확인을 해두자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웬걸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폭풍주의보로 배가 언제 뜰지 모른다는 거다. 목요일 당일은 이미 글렀고 다음날인 금요일도 쉽지 않다는 얘기에 모든 일정을 포기하고 서울로 돌아갈 생각을 몇 번을 했지만 여기까지 내려온 이상 그냥 발길을 돌릴 수는 없었다.
첫날 목요일을 공치고 둘째 날에도 더 폭풍이 거세 출항이 어려웠다. 같이 간 사람은 하루를 숙소 근처 PC방에서 죽 때리고,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유달산 훑기에 나섰다.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몰아 부는 날 아침을 먹고 모자를 눌러쓴 채 나가 해가 떨어지고 난 후에 내려왔으니 족히 구두를 신고 9시간을 넘게 걸은 셈이다.
노적봉, '목포의 눈물' 노래비, 유선각, 유선각에서 만난 할머니, 야생화 전시실, 난(蘭)의 그윽한 향기가 발길을 머무르게 하매 매번 같이 노닐다가 조각공원에서 저녁 해를 보았다. 탱탱 부은 발 때문에 돌아올 때는 더 걷지 못 할 상태가 되었다. 택시를 타고 와 동행자를 만났다. '세발낙지'에 점심을 거른 빈속에 술을 마시니 취기가 확 돌았다. 세병을 나눠 마시고 보리밥 집을 찾아 들었다. 큰 대접을 달라해서 비벼 먹으니 고향 그 맛이다. 항동 시장을 얼마나 쏘다녔는지 그쪽 지리와 사람을 여럿 사귀게 되었다.
저녁 무렵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토요일에도 힘들 거라는 소리만 한다. 항구에 나가봐도 여기가 이 정도면 두 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는 가히 짐작이 되었지만 목숨걸고 배를 빌려 타고 들어갈 수도 없다. 날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늦은 아침을 맞고 있는데 흑산도 섬소년 이영일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섬소년은 35살 먹는 총각이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이기도 하는데 흑산도에 가도 잠자리는 걱정 없다.
"배 올 시간 됐는데 첫배 타셨습니까? 거기다가 밤새 연락을 드려도 핸드폰이 꺼져 있네요."
아침 배가 떴다면 분명 점심 배도 뜬다. 마음이 바빠졌다. 얼마나 기다린 배였던가!
-"방송국에서 흑산도 가는 관광객과 같이 가기로 해서 점심 때나 출발하려고 합니다."
-"1시 15분에 출발하면 늦어도 4시 이전에는 도착할 것 같군요."
"일단 오셔서 여객터미널 다방에 가 계세요. 4시까지는 근무 마치고 갈 생각입니다."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들뜬 맘으로 배에 오르고김규환
이틀 동안 그렇게 한적했던 여객터미널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터미널 약국에는 생전 처음 들어본 '보미롱'과 '보간환'이라는 멀미약을 사먹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마다 표를 사서 신상명세를 적느라 바쁘다.
배는 1시 20분에 출발했다. 주말 관광객에다 사흘만에 뜬 배라 350석을 가득 채웠다. 목포항을 출발하여 용머리섬을 좌측에 두고 서서히 속력을 내 36노트의 빠른 속도로 물을 가르며 간다. 갠 다음날이라 물빛이 더 반짝반짝 빛난다. 사람들은 신기하여 창 밖 곳곳에 떠 있는 섬을 구경한다. 보리밭도 보인다. 곰솔이라 했던가 흑송(黑松)이라 했던가? 해송(海松) 천지다.
한 분이 반짝이는 물결을 보며 "갈치가 많아!" 하자 다른 관광객이 "갈치 튀나 한 번 봐봐!" 응대한다. 잔잔한 물결에 몇 몇은 벌써 잠에 곯아 떨어졌다.
하동에서 온 사람들, 익산에서 온 사람들이 배 주인노릇을 단단히 하며 "홍도오야 우지마라 오빠가 이~읻따..." 노래를 부르고 술도 거나하게들 취했다. 조용히 하라는 통제실의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관광지에서 봐왔던 터라 별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흥겨워서 좋다.
▲배 멀미가 아니라 사람을 뒤집어 놓았습니다김규환
이윽고 짠 바닷물이 창에 부딪혀 이내 말라서 소금을 덧씌우니 밖이 희미해진다. 꼼짝없이 안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중간 쯤 섬 사이를 연결한 다리 두 번 째 비금도와 도초에서 사람을 바다 위에서 작은 배가 싣고 온 손님을 번갈아 타고 내린 후 흑산도를 향해 간다.
안내실에서 "지금부터 물살이 거세질 것이니 승객여러분 께서는 자리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멀미를 하시는 분들을 위해 승무원이 비닐 봉지를 나눠드리고 있으니 받으시기 바랍니다."는 방송이 나오기가 무섭게 심한 파도에 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어~"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엄마~"하는 소리와 남자들은 "음."하며 신음소리를 낸다. 마침 배 안 공기가 너무 더웠다. 더운 온도와 일렁이는 파도에 250톤 배가 위에서 아래로 푹 꺼졌다 위로 솟구쳤다가를 반복한다. 좌우로 "뒤둥" 상하로 "찌우뚱" 하자 이곳저곳에서 "웩-" 소리가 들린다. 옆 사람은 땀을 뻘뻘 흘리며 어쩔 줄 몰라한다. 나라고 성할 리 없다.
▲신안군청과 보건소 등 기관은 목포에 있습니다. 흑산도와 홍도는 소흑산도는 위도와 경도를 달리 표시하여 사각함에 들어 있습니다.김규환
"더러운 놈의 배가 사람죽이는 배 아녀?"
"사람 죽일 껴?"
"아이고 아무 데나 내려놓고 가랴 그랴~"
"냄새 때문에 못살겠어."
"아아 음. 내려줘잉~"하는 사람과 화장지 찾는 사람으로 2층 객실은 안절부절.
하필 2층에 타서 웬 고생이란 말인가? 2층 앞쪽 두 번째 좌석에 앉은 나도 이성을 반 잃었다. "이런 먼길 위험한 뱃길에 오려했다면 미리 유서라도 쓰고 올 걸. 허나 어쩌랴 이미 이 위험천만한 배를 타버린 걸..."
연암 박지원 선생의 열하일기(熱河日記)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중 긴 구절이 저리 가란다. 보는 것이 심란하게 할까봐 눈을 감아도 소용없다. 이미 한 번 뒤집힌 속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바이킹처럼 안전띠라도 달아주지 않았기에 위도를 건널 때 서해훼리호가 당했던 참사가 생각났다. 이러다 정말 모든 사람들이 한 쪽으로 쏠리든가 멈춰서든가 뱃머리를 급히 돌리면 영락없는 물귀신이 되고 마는 것이다.
예정보다 30여 분 늦게 오후 3시 40분에야 잔잔한 흑산도에 도착했다. 섬 전체가 멀리서 보아 검다. 이 섬은 일년에 두 계절밖에 없다. 겨울엔 더 검다. 동백과 해송으로 둘러 쌓여 눈만 내리지 않으면 칠흑(漆黑) 같다 해서 흑산도라 했던가? "아, 흑산도(黑山島)!" 부두에 200여 마리의 갈매기가 마중을 나와 한 숨 돌리고 정신을 가까스로 추스렸다. "그래, 내가 이 섬에 온 이유는 홍어를 만나기 위해서야!" 여기까지 오는데 꼬박 3일이 걸렸다.
▲첫날 흑산도에 해가 지고 있네요김규환
| |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 | | 열하일기(熱河日記) 中 | | | | '물을 건널 때 사람마다 모두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속으로 사람들이 고개를 젖히고 하늘에 조용히 기도를 올리는가 생각했는데 훨씬 뒤에야 알았지만 물 건너는 사람들이 강물이 넘실거리고 빙글빙글 빨리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마치 자기 몸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고 눈은 강물과 함께 따라 내려가는 것만 같아서 갑자기 빙그레 도는 듯 현기증이 생기면서 물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고개를 젖히고 우러러보는 것은 하늘에 대고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곧 물을 피하여 보지 않으려고 함이다. 역시 그렇다. 어느 겨를에 경각에 달린 생명을 위하여 기도를 드릴 경황인들 있을 것이랴. 이토록 위험하다 보니 물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다. 모두들 말하기를 요동벌은 넓고 펀펀하기 때문에 물소리가 요란하게 나지 않는다고. 이는 물을 모르는 말이다. 요동 땅 강물들이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밤에 건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낮에는 눈으로 물을 볼 수 있으므로 눈은 오직 위험한 데만 쏠려 바야흐로 으스스 떨면서 오히려 눈이 있는 것을 걱정하는 판인데 어찌 귀에 들리는 소리가 있을 것인가.
오늘 나는 밤중에 물을 건너는지라 눈으로 위험을 볼 수 없으니 그 위험은 외곬으로 듣는 데만 쏠려 귀가 바야흐로 무서워 부들부들 떨면서 그 걱정을 이기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오늘에서야 그 이치를 깨달았도다. 마음의 눈을 감는 자, 곧 마음에 선입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육신의 귀와 눈이 탈이 될 턱이 없고, 귀와 눈을 믿는 사람일수록 보고 듣는 힘이 더욱 까탈스러워서 더욱 병통이 되는 것이라고.
오늘 내 마부가 말발굽에 발이 밟혀서 뒷수레에 실렸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혼자 말의 고삐를 늦추어 강물에 띄우고 무릎을 굽혀 발을 모으고 안장 위에 앉았는데 한 번만 까딱 곤두박질치면 그대로 강물 바닥이다. 강을 땅으로 생각하고, 물을 옷이라 생각하고, 강을 내 몸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성정(性情)이라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에라 한 번 떨어지기를 각오했다. 그랬더니 내 귓속에는 강물 소리가 없어져 무릇 아홉 번이나 강물을 건너는데도 아무런 근심이 없었다. 마치 안방의 궤석 위에서 앉아 눕고 기동하는 것 같았다.
옛날 우(禹) 임금이 강물을 건너는데 타고 있던 배가 황룡(黃龍)의 등에 올라앉는 위험을 당했다. 그러나 죽고 사는 판가름이 이미 마음 속에 분명해지니 그는 앞에서 용인지 지렁인지 그 크기는 족히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소리와 빛깔은 바깥 사물에서 생겨난다. 이 바깥 사물이 항상 귀와 눈에 탈을 만들어 이렇게 사람으로 하여금 똑바로 보고 듣게 하는 힘을 잃도록 만든다. 더구나 한 세상 인생살이를 하면서 겪는 그 험하고 위태함이야 강물보다 훨씬 심하여 보고 듣는 것이 문득문득 병이 됨에 있어서랴. 내가 사는 연암협 산골짝으로 돌아가 다시 앞 개울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이를 증험해 보니 영락없이 맞았다. 그리하여 이로써 사람이 제 몸 건사하는 처세술에 능란하고 제 자신의 듣고 보는 총명만을 자신하는 것을 경고하는 바이다.'
/ 연암 박지원 | | | | |
덧붙이는 글 | 하니리포터, 뉴스비젼, 조인스닷컴메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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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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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가는 뱃길 "유서라도 써두고 올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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