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은 칠레산, 우측은 국산 흑산도 홍어. 목포 항동시장에 가면 세계 곳곳의 홍어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때깔이 다르지요. 다음편을 기대하세요.김규환
나는 현지 사투리로 '무럼'이라 부르는 흑산도 국산 홍어를 먹어본 지가 20년이 넘어 그 맛을 알지 못한다. 정확히 말해 원래 그 맛을 잃었다고 봐야 옳다. 칠레산, 우루과이산, 캐나다산, 알래스카산 홍어는 최근에 수도 없이 먹어 봐서 그 맛을 잘 안다. 입맛이 오히려 냉동 외산에 길들여졌다. 물 건너 온 것들은 육질이 억새고 그윽한 맛이 없어 부서져라 부패하기 직전까지 삭히지 않으면 질겨서 먹기도 힘들다.
할머니께선 그 말로만 듣던 흑산 홍어 삭힌 것을 항아리에서 꺼내 노련한 솜씨로 칼질을 하신다. 홍어 한 접시와 손수 담근 막걸리, 김치에 돼지고기를 각 한 접시씩 내 오신다. 다음날 그게 생각이 나 혼자서 갔더니 '인동넝쿨'을 넣어 만든 동동주를 따로 내주셨다.
'그래, 여기 있는 동안 원 없이 먹어보고 갈거야!' 그래야 '퇴비 짐 지고 장에 따라가는 격'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일단 실컷 먹고라도 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먹는데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오물오물""오물짝 오물짝" 하는데, "그래 이 맛이야!"
홍어에서 끈덕지고 차진 인절미 씹는 느낌이 났다. 흑산 홍어는 오래 삭힐 필요가 없다. 한 이틀만 항아리에 지푸라기를 뭉쳐 같이 넣고 상온에 두면 첫 느낌은 별로 톡 쏘지 않지만 씹을수록 그윽한 향이 입안에 고루 가득 퍼지면서 막힌 코를 즐겁게 뻥 뚫어준다.
외국산 홍어는 표면에 가시가 덕지덕지 가시처럼 붙어있고 까칠까칠하여 굵은 소금에 문질러 가며 껍질을 벗겨야 하지만 흑산도 참홍어는 맨들맨들하고 발그스레 홍색이 돌고 부드럽다. 그 색이 얼마나 고운지 '시집가지 않는 처녀의 유두 색과 닮았다'고들 한다.
손질할 때는 코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칼집을 내 내장을 드러내고 몇 토막 길게 잘라서 뒀다가 먹을 만한 크기로 썰어내기만 한다. 이물질이 묻었으면 헝겊으로 살살 닦아내던지 막걸리로 씻으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