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덕지고 차진 인절미 씹는 맛, 흑산 홍어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 11>흑산 홍어 현지 취재기<2>홍어와의 만남

등록 2003.03.14 17:34수정 2003.03.14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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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홍어에 대해 설명하고 계신 중매인 조합장 신동온님. 김규환 포함 두명이 취재를 갔으니 얼마나 이후가 고달팠겠습니까?

홍어에 대해 설명하고 계신 중매인 조합장 신동온님. 김규환 포함 두명이 취재를 갔으니 얼마나 이후가 고달팠겠습니까? ⓒ 김규환

흑산섬에 사람들을 내려주고 쾌속선은 여기 대흑산도 서쪽을 붉게 물들이는 홍도(洪島)로 바삐 물갈퀴 질을 시작했다. 내린 손님을 갈매기가 반가이 맞는다.


동행한 후배는 미리 알아봐 둔 사람과 연락을 취하느라 더 바쁘다. 정신을 차리려고 여객터미널 부근에서 서성이다 물 한잔 사먹고 있는데 중매인 회장님께서 나오셨다. 이미 얼굴은 사진으로 본 터라 그리 낯설지 않다. 얼마 안 있으니 흑산도 섬소년 이영일님도 퇴근하고 나타났다.

"이영일씨가 날마다 사진기를 들고 나오길래 사진찍는 사람인줄 알았어. 우리 자주 봅시다."
"조합장님, 이영일 씨는 <흑산넷>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두 분이서 자주 만나다 보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겁니다."
"그리고 여기 김규환 기자는 서울 살고요, 프리랜서로 일하고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이기도 합니다."
"아 그래요. 우리 의기투합 한 번 해 봅시다."

a 올해 72살이신 손금순 할머니가 직접 막걸리를 거르고 있는 멋진 풍경

올해 72살이신 손금순 할머니가 직접 막걸리를 거르고 있는 멋진 풍경 ⓒ 김규환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가자고 해서 따라가 보니 터미널 부근 허름한 식당으로 안내한다. "우리음식점!" 손금순 주인 할머니는 22년 전 작고하신 내 어머니보다 한 살 많은 올해 일흔두살 잔나비띠다. 부군께서 선주여서 마흔이 안되어 인근 도초섬에 살다가 이리 옮겨와 산 지 38년째. 이곳 한자리에서 줄곧 식당을 운영한 지는 30년이 넘었다. 영감님께선 8년 전에 돌아가시고 이젠 혼자 남았다. 아들도 IMF 이후 광주 금호동에서 어머니가 보내주시는 홍어로 흑산홍어집을 차려 성업중이란다. 흑산섬에서 가장 인심 좋고 원조 맛을 내는 곳이 이곳이다.

중매인 몇 분과 선주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깃든 걸 보니 홍어가 소문대로 풍어임이 틀림없는 사실인가보다. 얼굴에 그렇게 쓰여져있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고작 한 척이었던 홍어잡이배는 이제 7곱 척이나 된다. 나가면 만선이 되어 돌아온다. 다른 한 척도 홍어잡이배로 돌린 생각을 한단다.

a 홍탁삼합을 이길 음식 어디 있을까?

홍탁삼합을 이길 음식 어디 있을까? ⓒ 김규환

마침 내가 찾아간 지난주는 폭풍주의보가 내려 며칠 고기잡이배가 이제나저제나 하며 출항 할 수 있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홍어는 일년 중 쌀쌀한 날씨가 시작되는 10월부터 잘 잡히기 시작하여 정월 설 무렵에 어획고가 최고조에 달하여 이후 양력 4월까지 성수기를 맞다가 해수 온도가 올라가면 한 동안 내리막길을 걷는다.


이 시기와 궤를 같이하여 맛도 천양지차다. 대부분의 생선과 해산물이 그렇듯 이 때는 마침 산란기라 살이 토실토실 올라 있다. 손대면 톡 하고 터질 성 싶다. 4월 보름을 넘기면 맛도 떨어지고 어획량도 줄며 볼품도 없어 가격도 뚝 떨어진다. 8kg 이상 나가는 1번치가 현지에서 60만원에 경매되는 것을 보면 보통 물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바야흐로 나 같은 사람이 홍어를 다시 만날 기회가 찾아왔다. 1~20만원도 아니니 나 같은 서민처지에 어디 입 한 번 대보겠는가? 이런 귀하디 귀한 최고급 생선을 한 번이라도 먹어볼 기회를 가진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a 좌측은 칠레산, 우측은 국산 흑산도 홍어. 목포 항동시장에 가면 세계 곳곳의 홍어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때깔이 다르지요. 다음편을 기대하세요.

좌측은 칠레산, 우측은 국산 흑산도 홍어. 목포 항동시장에 가면 세계 곳곳의 홍어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때깔이 다르지요. 다음편을 기대하세요. ⓒ 김규환

나는 현지 사투리로 '무럼'이라 부르는 흑산도 국산 홍어를 먹어본 지가 20년이 넘어 그 맛을 알지 못한다. 정확히 말해 원래 그 맛을 잃었다고 봐야 옳다. 칠레산, 우루과이산, 캐나다산, 알래스카산 홍어는 최근에 수도 없이 먹어 봐서 그 맛을 잘 안다. 입맛이 오히려 냉동 외산에 길들여졌다. 물 건너 온 것들은 육질이 억새고 그윽한 맛이 없어 부서져라 부패하기 직전까지 삭히지 않으면 질겨서 먹기도 힘들다.

할머니께선 그 말로만 듣던 흑산 홍어 삭힌 것을 항아리에서 꺼내 노련한 솜씨로 칼질을 하신다. 홍어 한 접시와 손수 담근 막걸리, 김치에 돼지고기를 각 한 접시씩 내 오신다. 다음날 그게 생각이 나 혼자서 갔더니 '인동넝쿨'을 넣어 만든 동동주를 따로 내주셨다.

'그래, 여기 있는 동안 원 없이 먹어보고 갈거야!' 그래야 '퇴비 짐 지고 장에 따라가는 격'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일단 실컷 먹고라도 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먹는데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오물오물""오물짝 오물짝" 하는데, "그래 이 맛이야!"

홍어에서 끈덕지고 차진 인절미 씹는 느낌이 났다. 흑산 홍어는 오래 삭힐 필요가 없다. 한 이틀만 항아리에 지푸라기를 뭉쳐 같이 넣고 상온에 두면 첫 느낌은 별로 톡 쏘지 않지만 씹을수록 그윽한 향이 입안에 고루 가득 퍼지면서 막힌 코를 즐겁게 뻥 뚫어준다.

외국산 홍어는 표면에 가시가 덕지덕지 가시처럼 붙어있고 까칠까칠하여 굵은 소금에 문질러 가며 껍질을 벗겨야 하지만 흑산도 참홍어는 맨들맨들하고 발그스레 홍색이 돌고 부드럽다. 그 색이 얼마나 고운지 '시집가지 않는 처녀의 유두 색과 닮았다'고들 한다.

손질할 때는 코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칼집을 내 내장을 드러내고 몇 토막 길게 잘라서 뒀다가 먹을 만한 크기로 썰어내기만 한다. 이물질이 묻었으면 헝겊으로 살살 닦아내던지 막걸리로 씻으면 그만이다.

a 항아리에서 잘 삭은 홍어를 꺼내고 계시는 할머니. 나중에 가시더라도 이 솜씨 갖고는 가지 마세요.

항아리에서 잘 삭은 홍어를 꺼내고 계시는 할머니. 나중에 가시더라도 이 솜씨 갖고는 가지 마세요. ⓒ 김규환

홍어를 아는 사람들은 제일 먼저 신선할 때 "애"를 먹는다. 애. 애는 본디 간이니, 애간장 녹이듯 그 맛이 끝내준다. 입안에 들자마자 사르르 녹아 사라진다. 어디로 갔을까? 그런데 이런 백미(白眉)를 아무에게나 준다고 생각하면 큰 일 난다. 그 양이 한정돼 있으니 단골에게도 잘 주지 않는다.

애가 타는 게 쪼그라들어 간경화로 가는 길이고 애간장이 녹으면 간이 남아 있질 않으니 몸에 해독을 할 방법이 없어진다. 이러면 큰 일이다. 애간장이 입안에서 녹아 없어지니! 그 느낌을 어찌 글로 다 그릴 수 있을까? 그 맛을 알겠거든 누구든 홍어 애를 드리고 싶다.

하여튼 애를 먹고 난 사람들은 여간해선 구경하기 힘든 물코 부분을 먹는다. 소금에 절여둔 반투명 오이 살 색깔에 가까운 이 물코를 먹고서 살을 먹고 살과 뼈가 붙은 부분을 먹는다. 질근질근 씹는 모양새가 정겨운 시골 풍경 그대로다.

뼈는 "오독! 오독! 오도독 오도독!" 씹힌다. 이내 내 살이 되어 한 몸이 된듯한 감흥을 얻는다. 남사스럽게 큰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이 맛이군요?" 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따라 홍어 좀 제대로 먹어볼까 했는데 하필 그나마 남아 있는 한 쪽 어금니 마저 말을 안 듣는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는다고 우측 어금니 없는 쪽으로 질근질근 씹어 삼켰다.

홍어 요리집에 가면 '홍탁(洪濁)'과 '삼합(三合)' 또는 '홍탁삼합'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느긋하게 잘 삭힌 홍어와 막걸리 탁주와 삶은 돼지고기를 2, 3년 묵은 신김치에 싸서 입에 가득 넣고 오물오물 씹는 것이니 한 번 먹어 본 사람은 두 번 찾고 얼마안가 또 찾는다. 이러기를 몇 번만 더 하면 홍어에 빠져 해외로 나가서도 고국의 맛, 고향의 맛으로 둔갑을 하고 마니 이를 어쩐다나?

a 일명 삐깨 또는 삐끼라 불리는 홍어 알집(태)

일명 삐깨 또는 삐끼라 불리는 홍어 알집(태) ⓒ 김규환

또한 홍어는 버릴 게 없는 생선이다. 애라고 부르는 간 먹고, 물코 먹고, 삭혀먹고 신선한 생것으로 먹고 살은 회로 먹고, 무채와 돌미나리를 넣어 매콤하고 시큼하게 무쳐먹고, 오래 삭혔다가 찜을 해 먹어도 좋다. 뼈와 내장, 꼬리는 더 삭혔다가 보리나 파래를 넣고 맵고 짤박하게 내장국이든 내장탕을 끓여 먹는다. 버릴 게 아무 데도 없다. 때아니게 도회지에선 두 개나 달린 홍어좆을 먹는다는 소리까지 있고 보면 정말 대단한 생선이다.

이내 막걸리 한 잔 씩 들어가니 서로 이물 없이 친해졌다. 서로에게 잔을 권하고 자신의 이력을 찬찬히 끄집어낸다. 선장 중 세 분은 연평도와 소청도 사이에 있는 대청도 부근이 고향이다. 지금이야 경기도에 속하지만 예전에는 황해도 연백군이었다. 이분들이 홍어잡이 끈을 놓지 않고 살았기에 다시 영광을 맛보는 것이리라.

도착하여 두 시간 먹는 동안 서울에서 온 젊은 아저씨가 옆 탁자에 앉아 홍어를 먹고 있다. 굳이 따라 오지 말라고 했는데, 멀미를 심하게 한 아내가 못마땅하다는 푸념도 늘어놓는다.

섬 소년이 낙조를 보러가자는 통에 알큰해져서 동행자를 두고 먼저 일어나 성라산 정상에 올랐다. 서쪽 대장도, 소장도, 내망덕도 사이로 저만치 홍도 깃대봉 위에 해가 걸쳐있다. 기분 좋은 하루가 이렇게 간다. 내일은 멀리서 온 사람 일주를 위해 근무시간을 조정한 섬 소년 이영일님을 따라 흑산도 일주를 할 계획이다.

우린 석양을 보고 다시 모여 홍어 한 접시에 광어회, 전복을 삼켰다. 이왕 먹을 거면 하루에 두 번은 홍어를 먹어야 먹었다는 소리라도 듣는 거다. 대낮부터 취기가 도는 건 당연한 일이다.

a 흑산도 항구 예리에서

흑산도 항구 예리에서 ⓒ 김규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비전21과 하니리포터, 조인스닷컴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홍어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http://cafe.daum.net/hongaclub 를 참고하십시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뉴스비전21과 하니리포터, 조인스닷컴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홍어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http://cafe.daum.net/hongaclub 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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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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