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41

등록 2003.03.18 17:44수정 2003.03.18 18:22
0
원고료로 응원
"때라니, 그'때'라는 게 저들이 우리 국경을 침범해 왕성까지 이를 때인가?"

해위는 신경질적으로 부위염의 말을 억눌러 버리고선 송양에게 자신의 계획을 얘기했다.


"물론 저들이 버티고 있다면 우리로서도 공격하기에 수월치 않고 명분도 서질 않습니다. 그렇기에 저들이 먼저 공격해 오도록 유도해야 하옵니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송양도 귀가 솔깃해져 부위염의 의견은 뒤로한 채 해위의 말을 재촉했다.

"간단합니다. 소수의 병사들을 풀어 저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 후 저들이 항의를 하면 모른 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저들은 이성을 잃고 쳐들어올 것이며 그때 우리는 이곳에서 농성을 하는 한편 준비한 병력으로 그들의 땅을 점령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도가도 못하는 그들은 절로 우리에게 굴복할 것입니다."

해위의 말은 이렇다할 전략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그 속에는 비류국의 국력이 고구려의 두 배는 된다는 가정이 숨어있었다. 고구려가 비류국을 친다면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고 그때 비류국은 힘을 반으로 나누어 한쪽은 버티고 한쪽은 뒤를 끊는다면 승리에 문제가 없다는 의미였다.


그 이후로 비류국의 고구려에 대한 도발적인 행위가 계속 일어났다. 처음에는 단순히 비류국의 병사가 인접한 고구려의 영토를 침범하는 수준이었지만 날로 그 정도가 심해져 급기야는 고구려의 정찰대와 무력충돌까지 일으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강경한 입장인 월군녀가 이 소식을 듣고 가만있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월군녀는 신하들과 회의중인 주몽을 찾아가 당장 비류국을 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니 될 일입니다. 이건 저들의 수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묵거가 반대하고 나서자 월군녀는 크게 화를 냈다.

"그대는 사사건건 내게 반대만 하는 구나! 그럼 이대로 저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자는 얘기인가? 저들이 우리가 전력을 다해 쳐 들어갈 때 군사를 나누어 길을 끊는다고 해도 방법은 있다. 조금씩 진군해 나가며 주변을 장악해 나가면 되는 일 아닌가?"

월군녀도 나름대로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묵거는 조용히 고개만 가로 저을 뿐이었다.

"그렇게 되면 전쟁이 길어지고 백성들은 농사를 짓지 못해 피폐해집니다. 저들이 전쟁의 명분을 만들려고 하는데 호응해 주는 모양새 밖에는 안 되는데 어떻게든 이는 피해가야 합니다."

"하지만 왕비의 말도 틀린 것은 없지 않소 이대로 두다간 백성들의 불만이 클 것이오."

주몽의 말에 묵거는 양손을 모으며 말했다.

"폐하께서 신(臣)을 믿고 맡겨주신다면 저들이 하는 양을 중지시키면서 실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이미 예전에 비류국에 뿌려둔 씨앗이 있으니 일은 더욱 수월할 것입니다."

"어떻게 할 셈인가?"

"일단 비류국의 변경에 있는 병사들을 불러들이십시오. 그런 다음......"

묵거는 주위를 잠시 물리쳐 달라는 말을 하고선 주몽의 곁에 다가와 조용히 대책을 얘기했다. 이번에도 소외된 월군녀는 묵거가 미워 못 견딜 지경이었다.

얼마 뒤 비류국으로 흘러 들어간 부분노와 협부가 송양을 만나기를 청했다.

"신(臣)부분노와 협부, 고구려에서 비류국으로 투항하겠나이다."

송양은 반가운 나머지 맨발로 뛰어나가 부분노를 맞이했다. 그도 사람을 보는 눈이 있어 일찍이 사신으로 온 부분노를 인재로 보고 탐을 냈던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송양 앞에 엎드린 부분노는 전후사정을 얘기했다.

"고구려의 왕이 비류국을 먼저 쳐야 한다는 신의 말을 듣지 않고 자만심에 들떠 말하기를 '비류국 따위가 뭐 그리 대수냐.'라고 말하며 북옥저를 치러 출전했기에 이리로 투항하게 된 것이옵니다. 청하건대 지금 군사를 내어 고구려를 치면 손쉽게 바라는 바를 얻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송양은 이미 고구려와의 접경지대에서 병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부분노의 말을 그리 의심하지 않았다. 부위염이 송양에게 말했다.

"저자의 말을 믿을 수 없거니와 한참 농한기인 지금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좋지 못한 일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4. 4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5. 5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