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40

등록 2003.03.17 18:05수정 2003.03.1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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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마주하게 되니 기쁘기 그지없소. 그나저나 간소하게 오셔서 될 터인데 꽤 많은 분들이 오시었소."

주몽이 인사를 하며 눈을 둔 곳은 무기를 숨겨온 수레들이었다. 송양은 약간 당황했지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이렇게 왕자님들이 직접 영전을 나오니 뜻밖이라서 놀랐소이다."

주몽은 송양에게 자리를 권하며 술잔을 들었다.

"자, 그럼 모두의 활솜씨를 한번 지켜보도록 합시다.

당시 지배층들에게는 특권의식과 함께 전투에서의 능력이 중요시되었고 특히 으뜸으로 삼는 것은 활을 다루는 솜씨였다. 게다가 이런 활 겨루기는 가만히 서서 화살을 날리는 것뿐만 아니라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쏘는 것도 필수였다. 현란한 활 솜씨가 이어지는 가운데 송양은 마침내 자신의 본 뜻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곳 비류수가는 두 사람이 왕을 칭하기에는 너무나 좁은 곳이오. 비류국은 오래 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왔으며 우리 선조는 선인(仙人)으로서 하늘로부터 내려온 바 이를 믿고 따르는 백성의 수만 해도 고구려와 비할 바 못되오. 지금 그대의 나라를 보니 우리 비류국에 미치지는 못하나 사람들이 굳세고 곧으니 한나라가 된다면 부여나 한(漢)나라의 요동태수조차 두려울 것이 없겠소만."


말은 공손했으나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라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주몽은 무슨 얘기냐는 듯 껄껄 웃었다.

"우리 고구려는 부여와 그 맥을 같이하면서도 또 그와는 다른 천손(天孫)의 후예들입니다. 어찌 작은 비류수 근처의 땅에 연연하겠습니까? 고구려는 앞으로 비류국은 물론 요동까지 그 힘을 뻗쳐나갈 것입니다. 비류국이 고구려를 탐낸다는 것은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정도가 지나쳐 미치지 못함과 다름이 없습니다."


송양은 주몽이 자신을 천손의 후예라고 하며 선인을 들먹인 자신보다 한 단계 더 위에 있다고 말하자 내심 불쾌했다.

'저 촌뜨기가 허풍만 세구나!'

송양은 활을 잡고 일어서 부하에게 과녁까지 백보(百步)를 재라고 일렀다. 송양은 활에 자신이 있었던 터라 이 기회에 자신의 실력을 보여줘서 천손이라고 허풍을 떠는 주몽의 콧대를 납작하게 꺾어줄 심산이었다. 노루 그림이 그려진 과녁을 응시하던 송양은 힘껏 활시위를 당겼다가 숨을 멈추며 화살을 쐈다.

"명중이오!"

송양의 화살은 의도되었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노루의 배꼽에 명중되어 있었다. 다만 시위를 당기는 힘이 부족했던 탓인지 과녁에 화살촉까지만 겨우 묻혀 있었다. 비류국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 주몽이 천천히 일어나 손에 낀 옥가락지 하나를 빼면서 시종에게 일렀다.

"이걸 과녁에 매달고 오게."

백보가 떨어진 곳에서 작은 가락지는 거의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설마하는 심정으로 송양은 주몽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시종이 가락지를 매달았다는 신호를 보내자 주몽은 그리 신중하게 과녁을 응시하는 것도 없이 화살을 얻음과 동시에 시위를 당겨 쏘았다.

"명중이오!"

화살은 옥가락지를 깨트리고 과녁마저도 완전히 뚫어버렸다. 고구려 사람들의 환호성이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송양으로서는 뭐라고 할말이 없는 완패였다.

궁술대회가 파한 뒤 씁쓸히 돌아가는 송양의 뒤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해위가 송양에게 분하다는 듯 충동질을 했다.

"오늘 저들을 보니 대국을 몰라보는 오만함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적당한 핑계를 잡아 고구려를 쳐야 합니다."

부위염의 의견은 전혀 그와 상반되었다.

"저들의 인화(人和)나 견고한 산성을 볼 때 무력으로 병탄한다는 것은 무립니다. 아직은 때를 두고 보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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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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