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80

남곡과 북곡 (5)

등록 2003.03.20 13:47수정 2003.03.2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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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혈살마의 신신당부는 이회옥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지옥갱을 떠나 무림천자성까지 오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일절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철마당주가 부친에 대하여 물었을 때에도 태극목장 제일목부였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냉혈살마는 꼭 흉수를 찾고 싶다면 전부를 의심의 눈으로 보라 하였다. 그러다 보면 의외의 장소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으며, 간혹 의외의 인물이 흉수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아무리 친해져도 가족이 아닌 이상 절대로 타인을 믿지 말라하였다. 그가 흉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여 지옥갱을떠나 무림천자성까지 동행한 정의수호대원들은 물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었다.

그러던 이회옥은 이곳 철마당에 온 이후에는 더욱 입을 다물었다. 순수혈통을 지닌 대완구들이 우글거리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부친인 이정기가 말하길 중원에서 순수혈통을 지닌 대완구가 있는 곳은 오로지 태극목장뿐일 것이라 장담하였다.


천리준구인 대완구는 마리 당 사천 냥 정도를 호가한다. 그렇기에 웬만한 사람들은 대완구의 씨를 여기저기 뿌리려 한다. 그래야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망아지를 얻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완구와 비슷하기만 해도 충분히 속여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굳이 순종끼리의 교접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래서 순수 혈통을 지키기가 어렵다 하였다. 그런데 이곳 철마당에는 무려 일천오백여 마리에 달하는 대완구들이 있다 하였다.


이회옥은 그 점이 무척이나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여 다른 조련사들에게 쥐어 맞으면서도 어디에서 났는지를 물은 바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완구의 출처에 대하여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아는 것이라고는 어느 날 철마당주와 철검당주가 대완구들을 몰고 왔다는 것뿐이었다. 이회옥으로서는 물어볼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에 우선은 철마당주의 신임을 얻기로 하였다.

나중에 잘 알게 되면 그때 물어볼 요량이었다. 하여 일부러 그가 볼 수 있는 곳에서 비룡을 조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길이 신임을 얻는 지름길이라 생각한 것이고, 예측은 맞아떨어진 것이다. 아직은 어리기는 하지만 결코 어리석지는 않았던 것이다.

"흐으음! 외공이라… 철포삼이나 금종조보다 났다면… 뭐지?"

산해관에서 지옥갱까지의 길은 멀고도 멀었다. 지옥거에 있을 때 이회옥은 냉혈살마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그렇기에 무림에 대하여 적지 않은 지식이 축적되어 있었다.

금종조나 철포삼이 외문기공인 것을 사실이다. 이것을 익히면 전신 피부가 단단해지기에 설사 병장기에 격중 된다 하더라도 상처를 입지 않게 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며 그것을 모르는 무림인들은 아주 드물다.

그렇기에 그것을 익혔다는 것을 상대가 알게 되면 즉각 죽음의 위기에 처해지게 된다. 하여 알면서도 익히지 않는 것이 바로 철포삼이나 금종조였다.

외문기공에는 이것들 이외에도 십삼태보횡련(十三太保橫練)이나 강기일식 등이 있다.

"설마 십삼태보횡련이나 강기일식을 가르쳐 주려는 것은 아니겠지? 철포삼이나 그거나 모두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는데…"

이회옥은 무영혈편이 무엇을 가르쳐 주려고 하는지 몹시 궁금하였다. 하여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 날 저녁나절, 이회옥은 철마당주의 부름을 받았다.

"소인이 당주님을 뵙습니다."
"그래, 어서 오너라! 자, 받아라. 이게 호법께서 네게 내리시는 무공비급이다. 어서 받아라!"
"가, 감사합니다."

이회옥은 얼떨결에 철마당주가 내미는 비급을 받아 들었다.

"핫핫! 호법께서 네게 하사하시고자 특별히 장경고를 뒤지셨다. 알겠느냐? 그러니 열심히 수련해야 할 것이야."
"……!"

"너, 혹시 글자를 못 읽는 것은 아니냐?"
"아, 아닙니다. 읽고 쓸 줄 압니다."
"하하! 좋아, 그럼 가서 천천히 읽어보도록 해라. 보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봐도 좋다. 특별히 가르쳐 주마. 하하!"

이회옥 덕에 칭찬을 들은 뇌흔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지 연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감사합니다."

이회옥은 철마당주에게 넙죽 절을 하고는 물러났다.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는 동안 이회옥은 표지에 쓰인 글을 보고 실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무영혈편은 분명 자신의 단전이 파괴되었기에 내공을 운기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급의 표지에는 나한기공(羅漢氣功) 주해(註解)라 쓰여있었기에 실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권법을 크게 나누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외가권(外家拳)과 내가권(內家拳)이 그것이다.

외가권은 단련된 육체에서 나오는 근력으로 기술을 구사하는 권법이다. 근육과 뼈, 피부인 육체를 강화하는 연습을 행하기에 초기단계에서부터 높은 단계에 이르는 속도가 빠르다.

반면, 내가권은 근력에 관계없는 신체의 내부에서 나오는 내공으로 기술을 발휘하는 권법이다. 호흡법이나 기본기를 철저하게 반복 수련하여야 하기에 높은 단계에 이르는데 시간은 오래 걸리나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외가권을 능가한다.

다시 말해 내공을 사용할 줄 알게 되면 근육을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파괴력 면에서 강한 효과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한기공은 소림의 무공으로 기(氣)로서 내장을 보호하는 무공이다. 따라서 내가기공의 한 가지이다. 물론 내공심법이 필요하며 이를 운기할 능력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한기공은 외문기공으로 알려졌다. 내장을 단단히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내가 무공을 익히는 사람들은 외가 무공 알기를 개똥만도 못하게 알고 천시한다.

그렇기에 외문기공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매우 드물었다. 하여 나한기공이 외가기공으로 잘못 알려졌는데도 이를 확인해 보지 않아 모르는 것이다.

"후후후! 호법께서 뭔가 착각하셨나보군. 그나저나 뭔지 한번 살펴나 볼까?"

호기심이 동한 이회옥은 두툼한 비급을 펼쳐들었다.


< 삼보에 귀의하옵고, 광대무변한 불법의 자비하심은 장차 온 누리를 뒤덮어 불덕이 만천하에 두루 번져나가게 하여… 중략.
이 비급을 펼치는 자는 천하제일인이 될 것이다. 나한기공은 천하제일 기공으로 내장을 금강불괴(金剛不壞)로 만드는 효능이 있다. 뿐만 아니라… 하략.
소림사 제 십일대 장문 방장 효월(曉月) 서(書) >



"후후! 후후후!"

이회옥은 서문을 읽고 또 다시 실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도 익히지 않으려 하는 나한기공이야말로 천하제일공이라 칭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림사 제 십일대 장문 방장이라고…? 이 양반이 망녕이 들었나? 흐음! 그런데 왜 이렇게 쓸데없이 두껍기만 한 거야? 흠! 그렇지 않아도 요즘 볼거리가 없어 심심했는데 잘 되었다."

기대에 못 미쳤기에 다소 실망하여 투덜거리는 했지만 이회옥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지금껏 단 한번도 무공비급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청룡무관의 실전 무공인 청룡검급은 잠들어 있는 사이에 왕구명이 가져갔기에 본 적이 없었으며, 냉혈살마로부터 잡다한 무공 구결을 전수 받기는 하였으나 이처럼 비급으로 꾸며진 것을 직접 본적은 없었던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무공비급을 접한 이회옥은 그 안에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될만한 구절들로 가득 찼다는 듯 안광을 빛내며 몰입하고 있었다.

비룡이 와서 같이 놀자고 머리를 비볐지만 귀찮다고 손으로 밀어냈다. 전 같으면 만사를 제쳐두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비룡보다 비급의 내용에 더 빠져 있었기에 귀찮다는 듯 밀어낸 것이다.

나한기공 주해에는 분명 나한기공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그 설명은 어린 아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쓰여 있었다.

그렇기에 이회옥은 읽으면서 내공이 무엇인지, 운기가 어떻게 이루어지면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등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전에 냉혈살마로부터 설명을 들은 바 있기는 하나 그 때는 요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는 상황이었다.

궁금하기는 하였으나 그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자칫 쥐어 박힐까 싶어 차마 묻지 못하던 것도 상당히 많았다. 하여 무공이란 그저 두루뭉실하게 대충 어떤 것이다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하루도 빼지 않고 운공조식을 했다.

확실히 알고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일 년이 넘도록 운공조식을 해왔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마치 아침 햇살에 안개가 걷히듯 환해지기 시작하니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밤새 비급을 들여다보던 이회옥의 입에서 나지막한 신음 비슷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으음! 내공이 이런 것이었다니… 나한기공! 그저 내장만 보호하는 무공이 아니었어."

이회옥의 얼굴에는 희열의 빛이 가득하였다. 못내 궁금해하던 것들을 깨우쳤기 때문이었다. 무리(武理)에 입문한 이회옥은 나한기공 주해를 읽고 또 읽었다.

많은 깨달음을 얻었지만 여전히 궁금한 것이 있었기에 그것을 이해하고자 탐독하는 것이었다.이러한 모습을 본 철마당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심 실소를 금치 못했다.

나한기공은 소림사에서도 천대받는 무공이었다. 그것을 익힐 경우 내장이 튼튼해지는 것은 사실이나 심각한 조문이 발생되기 때문이다.

익히기 전에는 멀쩡하던 명문혈(命門穴)과 거궐혈(巨闕穴)이 아주 약해져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절명하게 되게 되어 있었다. 뇌흔은 이회옥이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나한기공을 익히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무림천자성의 장경고가 생긴 이래 지금껏 처박혀 있었건만 표지에 붙은 제목 때문에 어느 누구의 눈길도 끌지 못했던 나한기공 주해에는 비밀이 있었다.

단순히 나한기공의 구결을 해설해 놓은 것이 아니라 무공이 무엇인지를 단순 명료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설파해 놓은 한 마디로 무공 입문 지침서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담고 있는 무리(武理)는 극상승 무공의 그것과 버금갈 정도였다.

현재 이회옥의 수준에서 본다면 더 없이 귀중한 서책이었다. 그렇기에 낮이건 밤이건 그것을 들여다보고 무엇인가를 연신 중얼대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을 본 뇌흔은 실소를 머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이 무엇인지 모르던 자에게는 대단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짐작한 것이다.

이렇게 무림천자성에서의 세월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한 소년이 잠룡으로 성장하는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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