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내장볶음 먹다가 나자빠질 뻔했다.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15> 전복회와 전복내장볶음

등록 2003.03.22 15:57수정 2003.03.23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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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으로만 차린  한상
전복으로만 차린 한상김규환
집 나오면 고생이라 했던가? 훈련소 시절 2달 여를 포함하여 여행으로 일 주일 가까이 집을 떠나 생활하기는 이번이 처음 만은 아니다. 드물게 한 번 씩 있는 장기간의 여행. 이래저래 낯설고 생소해서 심신이 피로해지는 게 여행이다.


밖에서 아무리 건 음식을 먹어도 배는 왜 금방 고파와 사람을 못살게 구는지…. 눈치 안보고 다리 쭉 뻗고 누울 수 있는 집에 얼른 돌아가고 싶다. 누추한 집 생각이 간절하다. 먹고 싶으면 아무 때고 골라 먹고, 싱거우면 소금 쳐서 먹고,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집 말이다.

4일 흑산도에 머무는 동안 마땅히 내 입맛을 사로잡는 게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홍어도 한 이틀만 더 삭혔으면 하는 간절함에 애태웠다. 거의 매 끼니마다 먹은 우럭 매운탕도 싱겁기 그지없어 입맛이 확 달아났다. 현지인들과 함께 간 사람이 같이 떠먹는 판이라 소금을 달랠 수도 없었다.

흑산도 오던 뱃길에 비금도가 옛날 염전지대였다는 말까지 들었던 나로서는 '소금을 조금 만 더 치지!'라기보다 '그냥 섬은 육지보다 싱겁게 먹는구나!' 하며 체념했다. 더군다나 손님이고 얻어먹는 주제에 까탈부린다고 할까봐 그냥 몇 술 떠먹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결국 국물에 살고 국물에 죽는 놈이 말이다.

전복까기
전복까기김규환
물도 문제였다. 혼자 사는 총각 집에 머무른 터에 고교 수학여행 때 바다 근처 물을 쭉쭉 받아먹고는 3박 4일 내내 배앓이를 심하게 앓았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처음에는 물을 사다 먹을까 하다가 포기하고 지하수를 그냥 받아먹었다.(동숙을 했던 이영일 님 숙소는 바다로부터 직선 거리로 100여m 밖에 떨어지지 않아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옛날에는 바다였던 곳을 매립하여 여러 건물을 지은 까닭에 염분을 다 걸러내지 못할 것 같은 걱정을 하면서도 물을 달고 사는 사람인지라 끓이지 않은 맹물을 마셨다. 어느 정도 이골이 난 탓인지, 소화 잘되는 홍어를 하루에 두 번 이상 먹어서인지 배탈이라곤 한 번도 나지 않았다.


아직도 김치에 조선된장에 매운 고춧가루를 찾는 못된 입맛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 해외 여행을 갔다 올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못한다. 국내에서 며칠 머무르기도 힘든 놈이 며칠이나 나라 밖에서 견딜 수 있을까?

잘 생긴 전복
잘 생긴 전복김규환
흑산도 일주를 마치고 혼자된 나는 마땅히 놀거리가 없어 주변 밭과 야산에 올랐다. 겨울답지 않은 한 철을 보낸 밭에는 지난해 가을에 심어둔 무가 살아 여전히 자라고 있었고, 머위, 달래, 파, 시금치와 쑥이 제법 커 있다. 밭가 울타리는 동백꽃이 만발했다. 산은 위는 해송이 아래는 동백이 사이 좋게 영역다툼 없이 어울려 지내고 있었다.


한시간 여 이것저것 눈에 담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와 쉬고 있는데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 연평바다에 어허어 얼싸, 얼싸 좋네 얼싸 좋네 군밤이여 에헤라 생률 밤이로구나!"라는 멜로디가 들려 왔다. '얼씨구나! 누가 나를 부르는구나'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받아보니 홍어중매인 조합장님과 동행했던 후배가 뭘 먹으러 갈 것이니 집 앞으로 나오란다.

'근데, 조금 있다가 낙조 찍으러 가야되는데. 어쩌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뭔가 새로운 걸 먹는다는 기대에 무작정 집을 나섰다.

진리 읍동 바다가 지척인 곳에 이르니 주인장께서 깔끔한 안방을 손님 셋에게 내준다. 시간은 차츰 흘러 5시 20분을 넘긴 시각이었다. 건너편에 보이는 섬이 민둥산 같아서 사진을 찍으려고 부엌을 통과해 나오는데 주인 아주머니께서 무슨 조개 같은 것을 손질하고 계셨다.

전복을 까서 통째 씻어야 합니다.
전복을 까서 통째 씻어야 합니다.김규환

"아주머니, 이게 뭐랍니까?"
"이거요? 전복이지 뭐다요. 아저씨 전복 안 잡숴 봤소?"
"전복 죽은 두어 번 먹어봤지만 이렇게 살아있는 걸 직접 보기는 처음인데요. 햐~ 정말 희한하게 생겼네요? 생김새가 꼭 홍합 같구만요."
"그래도 홍합하곤 다르게 생겼제…."
"근데, 이건 얼마나 자란 건 가요?"
"한 3년은 자랐을 것이구만이라~"
"자그마한 전복 새끼를 갖다 넣어두면 그렇게 자랍니까?"
"10원 20원 하는 것을 넣어도 되지만 그건 크는 게 더딘깨 80원 짜리는 넣어야 될 것이요."

"아까 저기 곤리를 지나 비리 쪽에 오다보니 가두리 양식장이 있던데 그게 다 전복 양식하는 곳인가요?"
"우럭도 키웅께 꼭 글지는 않지라우~. 그래도 우리나라 전복 6할은 여기서 나온다고 생각하먼 될 것이요."
"예. 이 놈들 세 개가 함께 붙어 있네요."
"잡아각고 옴시롱 같이 붙어서 논다요"

다슬기나 우렁이가 빨판을 대고 서로 같이 엉겨 붙어 놀고 있는 형국이었다.

무지개빛 전복 껍데기-전복 팔 때 껍데기 까지 포함된 무게라는 걸 명심하십시오.
무지개빛 전복 껍데기-전복 팔 때 껍데기 까지 포함된 무게라는 걸 명심하십시오.김규환
칼로 푹 쑤셔 입을 벌리고는 알맹이를 꺼내 놓으면서 말씀을 이어갔다.

"글고 이 전복은 썰어서 씻으면 맛을 버려부요. 긍께 통째로 씻고 나서 썰어야 제 맛이요."

남의 안방에서 피워댈 수 없어 밖으로 나가 담배 한 대를 피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먼저 두툼하게 썬 전복 한 접시와 파릇한 배추에 파를 듬뿍 넣고 담근 정갈한 김치와 초장에 소주 3병이 나왔다. 김치 맛도 좋았다.

나는 소, 돼지, 닭, 개, 흑염소 골까지 생(生) 걸로 다 빼 굵은소금에 찍어 먹어본 사람이다. 동네에서 돼지 지라는 항상 내 차지였다. 홍어에 반 미치다시피 한 요즘의 행보는 대단한 어떤 것이라도 내 관심을 끌기는 글렀다. 별미 중의 별미를 즐기는 내 특이한 이력에 근거한다면 전복이라고 별 맛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생김새를 갖고 딴지를 걸었다.

전복 회  한 접시
전복 회 한 접시김규환
"아까 전복 깔 때 보니까요 마치 거시기 닮은 것 같습디다."
"머냐 홍합이 더 거시기 닮았제…."
"저도 홍합을 많이 보았지만 전복도 비슷하던데요 뭘…."

이 한 접시가 보통 사람들에게 팔 경우 7만원은 줘야 한단다. 넷이서 소주 한 잔씩을 따라 전복을 입에 넣는 순간! 나는 내 입맛이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그래 이 맛이야!'를 속으로 외쳤다.

어제 횟집에서 먹은 전복과는 딴판이었다. 결코 물러터지지 않은 단단함에 너무 딱딱하지도 않아 알맞게 씹히는 즐거움이 있다. 음식에 대한 칭찬에 인색한 내가 처음 제대로 전복회를 먹고 칭찬을 아끼지 않자 주인장과 조합장이 흥겨워 한다.

전복과 파 김치
전복과 파 김치김규환
"진짜 전복은 살에 작은 구멍이 3개가 나 있어야 진짜배기지. 이 구멍은 그냥 보면 잘 안 보여. 여기 보이죠?"
"아, 예. 정말 3개네요."
"이 구멍이 있는 중앙부위에 영양가가 다 있지."

잔이 몇 잔 돌았다. 해넘이 구경에 손수 남의 차를 몰고 가야하는 터에 술을 맘껏 마실 생각을 버렸지만 따라주는 것까지 마다할 수는 없었다.

전복이 1/3 가량 남았을 때 잘라 둔 접시에 옅은 국물이 모였다.

"김규환씨 여기 국물 있잖소. 거무스름한 저 국물 마시면 전복 김기자가 다 먹는 거요."
"정말요?"
"마시면 떫은 맛이 있고 혀가 아르르 해질 것이구만…."
"후루룩~" 마셨다. 바닥만 동행 피디에게 마시라고 건네줬다.

이윽고 주인장께서 "여보 내장 좀 가져와봐요~"
무슨 내장이란 말인가? 이 작은 조개에 그냥 같이 따라 나왔을 걸로 알고 먹고 있었는데 내장이 따로 요리가 되어 나를 즐겁게 할 궁리를 하다니!

둥근 자그마한 접시에 전복 내장이 양파를 다지고 마늘을 빻아 넣고 참기름에 살짝 볶아져 나왔다. 마치 심장이나 콩팥 모양을 한 전복 내장은 약간 푸르스름한 빛을 띠었다. 내가 집에서 닭을 볶아 술안주로 즐기고 미역국이나 무국, 떡국을 끓일 때 쓰는 방식과 비슷한 요리법이다.

전복 내장볶음 한 번 해서 드셔보십시오. 고향의 맛 진짜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전복 내장볶음 한 번 해서 드셔보십시오. 고향의 맛 진짜를 느낄 수 있습니다.김규환
"한 번 드셔들 보쇼"
"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전복 내장.

입에 갖다 대는 순간 나는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기가 막힌 맛의 잔치였다. 입안은 즐거워라 비명을 지른다. 처음 맛 본 전복내장볶음에 무릎을 꿇었다.

"어르신 대단한 맛입니다. 제가 별 것을 다 먹어봤지만 이렇게 맛난 건 처음 먹어 봅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말을 더 하면 손해일 것 같아 손을 바삐 움직였다.

"맛있네요."
"맛있네요"만 반복하며 '허천병' 난 놈 마냥 연신 먹어댔다.

한 두 번 씹어주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이 맛이 고향의 맛 원형에 가깝지 않을까?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이 맛난 술안주에 빠져 알딸딸해지도록 술을 마셨으니 상라산 전망대에 오를 수 있을까 모르겠다.

흑산도 일대를 덮고 있는 가두리 양식장-이곳은 아마 우럭 양식장일 겁니다.
흑산도 일대를 덮고 있는 가두리 양식장-이곳은 아마 우럭 양식장일 겁니다.김규환

덧붙이는 글 | 하니리포터와 뉴스비젼21, 조인스닷컴에 송고할 계획입니다.

박수명씨 댁에 가면 흔하디 흔한 간판도 없다. 10년 전부터 흑산도에서 최초로 전복 양식을 시작한 터에 실패도 여러 번 경험했다. 박수명씨는 겨울철 3개월 동안 미역을 먹이고 나머지는 다시마를 먹여 기른다고 한다. 

막내아들과 부인 이영단 여사와 함께 1ha(약 3천 평) 양식을 직접 하여 택배로 전복을 판다. 전복 맛을 보려면 061-275-9211나 011-615-9211로 전화하는 수고는 들여야 한다. 보통 1kg에 7~8만원 선이고 택배비를 감안 4kg 이상 주문하기를 당부하고 주문 당일 오후에는 도착한다고 한다. 
  

홍어와 전복 등 맛있는 우리 전통 음식에 관심 있는 분들은 
http://cafe.daum.net/hongaclub을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하니리포터와 뉴스비젼21, 조인스닷컴에 송고할 계획입니다.

박수명씨 댁에 가면 흔하디 흔한 간판도 없다. 10년 전부터 흑산도에서 최초로 전복 양식을 시작한 터에 실패도 여러 번 경험했다. 박수명씨는 겨울철 3개월 동안 미역을 먹이고 나머지는 다시마를 먹여 기른다고 한다. 

막내아들과 부인 이영단 여사와 함께 1ha(약 3천 평) 양식을 직접 하여 택배로 전복을 판다. 전복 맛을 보려면 061-275-9211나 011-615-9211로 전화하는 수고는 들여야 한다. 보통 1kg에 7~8만원 선이고 택배비를 감안 4kg 이상 주문하기를 당부하고 주문 당일 오후에는 도착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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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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