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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이라 치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아무래도 화장실을 ‘더러운 공간’ 혹은 아예 입에 올리기를 매우 꺼려하는 그런 불결한 장소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지금의 나에게 있어 화장실은 입에 올리기에 그다지 껄끄러운 장소가 아니다. 그보다는 보다 친근한 느낌, 안락한 느낌마저 드는 장소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나만의 공간을 가져보지 못했다. 하나 있는 형제와 공간을 나누어 쓰다 보니 자연스레 얼굴 찌푸리는 날이 많았다. 그럴 때 마다 나는 기분도 안정시키고, 보다 화내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가치 있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조용한 곳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가끔가다 열 받는 일이 생길 때, 일련의 안식처가 되어 준 곳은 조용한 도서관에 있는 화장실 칸막이 안 이었다. 고요한 화장실에 앉아서 바깥에서 들려오는 아득한 소리를 듣는 것은 묘한 느낌이 들었고, 나는 그것에 마음이 진정됨을 느꼈다. 그렇게 그곳은 나만이 있는 특별한 가치를 지닌 공간이 되었다.
이러한 이야기는 사실, 대개 생각하는 화장실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겠다. 대개 사람들이 생각하는 화장실이란 개념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일상생활의 너무도 가운데 있다보니 아무 감각이 없는 그러한 곳이리라.
여하튼 약관을 바라보는 나이를 살면서까지 그 수많은 화장실에서 느낀 단상이라 함은, 시공간에 따라서 많이 다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홍콩에서 온 ‘홍콩할매’와 일본에서 왔다는 ‘빨간 마스크’ 괴담이 크게 유행한 해가 있었다.
안 그래도 겁이 많은 성격에다가, 남의 말이라고는 곧이곧대로 믿을 나이었던 나에게 있어서 형, 누나들, 친구들이 줄줄이 늘어놓는 허무 맹랑 그 자체인 이야기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게다가 그것들이 화장실에도 출몰 한다니, 학교 화장실은 말 할 것도 없고, 집에 있는 화장실에서 조차, 불을 끄는 족족 나는 어린시절, 스스로 만들어낸 공포감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홍콩할매귀신이 공부 못하는 아이한테 어느 날 나타나서는 이제부터 백일까지, 밤마다 개나 고양이를 잡아 화장실로 갖고 와서 소변기에 집어 던지면 전교일등을 시켜준다고, 그렇지만 절대 불을 켜서는 안된다고, 그랬단다.
그래서 그 공부 못하는 놈은 말이지, 그것을 진짜로 믿고 동네에 있던 개와 고양이를 싹쓸이해서는 밤마다 화장실로 간 거지. 그런데 딱 백 일째 되던 날에 동네에 있던 개와 고양이가 다 없어져 버린 거야.
그놈은 할 수 없이, 지네 집 마당에 묶여있던 정든 돌돌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갔대. 근데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화장실 불을 켰는데 글쎄 홍콩할매귀신이 입을 쩌억 벌리고 소변기 아래 웅크리고 있었단다.”
지금에 와서 보면, 그다지 신빙성 없어 보이는 말이지만, 그때 단짝이었던 다운이라는 녀석이 꾸며댄 말을 나는 꼭 믿었다. 그렇게, 무한한 상상력으로 나는 홍콩할매귀신의 얼굴을 그려내고, 화장실에 갈 때 마다 그치의 얼굴을 보게 되지는 않을 까 매우 걱정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점점 들수록 나는,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 따위보다도 더 무서운 ‘남들의 눈’이란 것을 알게 된다.
사실 초등학교 시절, 수업시간에 화장실에 아무리 가고 싶어도, 화장실 가고 싶다고 손드는 행위는 나의 명성(?)에 금을 긋는 행위였다. 초등학교 다닐 때, 이성 친구한테 편지한번 안 받아본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하겠지만, 나는 그러한 일을 조금 자주 겪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팬 관리(?)를 위해서라도 행동을 자제해야 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러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매우 반듯한 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창 ‘성’에 눈뜰 나이에도 남들 보는 앞에서는 순진한척, 모범생인 척하느라 그런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화장실에 큰일 보러 가는 것을 의식적으로 피하는 것도 그러한 ‘척’의 일환이었다.
그렇지만 세월이 갈수록, 그러한 것이 ‘허무한듸’라는 생각이 들었게 되었고 그 시기에 나는 남자 중학교에 진학했다. 그때부터는 화장실을 드러내 놓고 가도 괜찮을 만도 한데, 아직까지도 화장실에서 큰 일 보는 일은 금기사항이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2학년까지의 의식구조에는 변함없이 어린아이와도 같은 천진함과 짓궂음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반 친구가 화장실에 큰 일 보고 오는 낌새라도 있으면 나와 반 친구들은 맹렬히 그를 놀려댔다.)
게다가 나는, 화장실에서 피어오르는 그 흰 연기를 몹시도 증오했다.
특히 피부는 까무잡잡하고, 눈은 찢어졌으며, 매우 더러운 입을 가진 그치들이 나는 싫었고, 그네들이 화장실에서 쉬는 시간마다 내 뿜는 담배연기는 최악이었다.
나는 그런 이유로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살면서 남들 눈을 의식해서 화장실 가지 않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란 것을 오랜 시간에 걸쳐서야 깨달았다. 왜냐하면, 화장실 가는 것을 참느라고 곤욕을 치뤄야 했던 일이 속속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께서 하신 화장실 가고 싶으면 무조건 가야 한다는 지고지순한 말부터, 탈무드의 어디쯤에 나와 있는 ‘기별 왔을 때 일 보지 않는 일은 바보 짓’이라는 지혜의 목소리를 이제야, 그것도 아주 거창하게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고2때부터는 나는 아주 대담해지기 시작했다. 수업시간 중에도(심지어 여자 선생님이 계실 때도) 나는 주저 없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 나에게 별명이 하나 주어졌다. ‘똥쟁이’라고.
무슨 그런 추잡한 이야기를 사는 이야기라고 하냐고 물으신다면, 그것이 ‘사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그러한 명예스럽지 못한(?) 별명은 오늘에도 이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 2학년 9반은 현재 3학년 8반으로 고스란히, 반 친구 한명 빠지지 않고, 심지어는 담임선생님조차 같이 모시고 올라와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고민한다. 먼 훗날 성동고등학교 2학년 9반, 혹은 3학년 8반의 부부동반, 혹은 여자친구 동반 반창회가 있을 때, 문득 아리따운 그녀와 음식 집 문을 열고 들어온 멋진 나를 향해 친구들이 할 말을. “똥쟁이 왔네!”라고.
요즈음, 우리 반에서는 이러한 나를 중심으로 독특한 동호회가 등장했다. 일명 ‘똥쟁이 클럽 ’이라나? (물론 회장은 나 서강훈이다.) 나는 이러한 현상을, 별 부담 없어 서로 예뻐 보일 것도 없을 것 같은 편한 한 친구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로 여기고 내심 매우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화장실에서 잠을 청하다. 요즈음엔 학교에서 거의 살다시피 한다.
주 내내 야자도 하고 아침 일찍부터 수업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요일이 오면, 기분이 마구 풀어져서 억지로 라도 공부를 하려고 동네에 있는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에 가면 졸음이 밀려오기 쉽상. 나는 그렇지만 책상에서 엎드려 자지 못한다. 조금씩 잠자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것 같다. 그렇다 치면 아예 화장실로 간다.
월드컵의 여파로 화장실은 너무나 쾌적하고 안락하다. 오후 시간엔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이 적어서, 화장실은 정적이 감돈다. 그럴 때, 제일 마지막 칸에 들어가 발 한쪽을 양반다리하고는 턱을 괴고 존다. 이렇게 15분에서 30분 가량 있으면 상쾌한 기분으로 도서관 책상에 앉을 수 있다.
(서문에서도 말했지만, 수미상관의 미를 강조하기 위해 다시 한마디 하자면,)나에게 있어 화장실은 입에 올리기에 그다지 껄끄러운 장소가 아니다. 그보다는 보다 친근한 느낌, 안락한 느낌이 드는 장소인 듯 하다.
나는 앞으로도, 학교 화장실에 당당히 갈 것이며, 도서관에서 잠이 온다면 언제라도 화장실로 갈 것 이다. 매우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터넷 신문 '하니리포터'에도 송고할 예정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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