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85

미친 늙은이 (5)

등록 2003.03.25 13:45수정 2003.03.2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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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너무 빨라도 좋지 않고 반대로 너무 늦어도 좋지 않다. 너무 서둘러 구경꾼이 너무 적을 때 생포하면 충분한 증인 확보가 되지 않고, 너무 늦으면 자칫 장일정과 호옥접이 해코지를 당한 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놈들! 어서 말하지 못할까? 안 그러면 오늘 네놈들의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노부에게 욕을 한 죄를 묻고, 껍질을 벗겨 수치가 무언지 톡톡히 느끼게 해주마!"
"캑캑! 캑캑! 먼저 이, 이것 좀 놔주고… 캑캑!"


"흥! 어림도 없는 수작! 숨이 넘어가건 말건 노부는 상관없다. 어서 어떤 놈이 노부의 배가 임자가 없다고 했는지 말해라."

반광노조의 눈에서 광인의 눈에서나 나올 법한 시퍼런 빛이 줄기줄기 뻗쳐 나오자 호옥접은 겁이 덜컥 났다. 오늘 잘못 했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 생각한 것이다.

"켁켁! 마, 말할게요. 오, 오향촌에 왔다는 곽노인이… 캑캑! 곽노인이 그랬어요. 캑캑! 어, 어서 이것 좀 놔줘요. 캑캑!"
"뭐라고? 오향촌의 곽가가…?"

"그, 그래요. 이제 말했으니 어서 이걸 좀 놔줘요."
"흥! 어림도 없는 수작. 곽가가 내 친구라는 것을 이용하여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고? 이런 괘씸한…! 곽가는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 거짓말하지 말고 이실직고를 해라. 어떤 놈이 감히 노부의 배에 임자가 없다고 했지?"

반광노조의 표정은 확신에 차 있었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친구인 곽노인은 절대 자신의 배에 임자가 없다는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한 것이다.


이 순간 장일정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 있었다. 목덜미를 움켜쥔 손아귀의 힘이 어찌나 강한지 숨을 쉴 수 없는 것은 물론 혈액조차 순환되지 못한 결과였다.

같은 순간 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장한의 얼굴엔 초조함이 배어 있었다. 어서 반광노조가 미친 듯이 날 뛰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지금으로선 손을 써서는 안 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어서 말 안 해? 어떤 놈이 이 배에 임자가 없다고 했는지…"
"으으윽! 가가, 으으으윽!"

반광노조가 또 다시 손아귀에 힘을 주자 호옥접의 얼굴 역시 시뻘겋게 변했다. 목이 졸린 결과이다.

이러한 모습을 본 장일정은 황급히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칫 호옥접이 비명횡사할까 싶었던 것이다.

"으으! 소생이 그랬소이다. 그랬으니 어서 풀어주시오. 캑캑!"
"흥! 이제야 바른 말을 하는군. 좋아, 네놈이 무슨 목적으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불어야 할 것이다."

일이 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애초에 의도한 대로 되지 않고 묘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정의수호대원은 곤혹스럽다는 표정을 짓고만 있었다. 손을 쓸 명분이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장일정과 호옥접을 움켜쥐고 있던 반광노조가 잡았던 손을 풀었기에 위험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손만 비비고 있을 뿐이었다.

같은 순간 반광노조는 장일정과 호옥접을 묶고 있었다. 그는 배를 훔쳐가려던 현행범이기에 묶은 뒤 왜 그런 범행을 저지르려 하였는지를 따진 뒤 관가로 끌고 가겠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거처로 끌고 갔다.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부에게 있어 배는 생명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상해 인근 항, 포구에서는 빈번하게 배가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잃어버린 배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곤 하였다. 그러나 그 배를 찾을 수는 없었다.

정당한 값을 치르고 구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배를 훔친 뒤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것을 팔았다는 것이다.

배란 아무리 비싸도 안방에 들여놓을 수 없는 물건이다. 그렇기에 배에서 감시를 한다고 하지만 쓸만한 배들이 사라지는 일은 종종 벌어졌다. 하여 어부들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배 도둑을 잡기만 하면 밟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오늘 장일정과 호옥접이 반광노조의 배를 노린 것 같았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의 배가 상해 포구에 있는 배 가운데 가장 낡은 배라는 것이다.

배 도둑이라면 건조된 지 얼마 안 되는 새 배를 노리기 마련인데, 가장 썩은 배를 골랐기에 고개를 갸우뚱거린 것이다.

반광노조에 의하여 질질 끌려가는 장일정과 호옥접은 너무하다 할 정도로 칭칭 동여매져 있었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곤 입술과 손가락뿐이다라고 할 정도로 칭칭 동여매진 것이다.

정의수호대원은 끌려가는 둘을 보다가 이내 등을 돌렸다. 이런 경우에 어찌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 * *

"문주!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되오."
"맞소이다. 우리를 노리는 자들이 주석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설마 잊으셨소이까? 말은 안 하지만 왜문의 승냥이 같은 자들이 호시탐탐 본문을 노리고 있소이다. 이러한 때에 이미 한물간 병장기를 구입해서 어쩌자는 것이오? 그것으로는…"

"으으으음…! 호법들의 말씀을 모르는 바는 아니오. 허나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 무림천자성은 본문과 깊은 유대를…"
"흥! 유대는 무슨 놈의 유대…? 놈들은 우리를 이용하여 세상을 속이는 간악한 자들이외다. 겉으로는 우리를 돕는 척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르오?"

"허어, 답답들 하구려. 그걸 누가 모르오? 그렇지만 무림천자성의 요구를 안 들어 주면 어찌될 것 같소?"

선무곡주인 대중존자(大中尊子)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살이 파여 있었다. 그런 그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칠대호법이 우측에는 칠장로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선무곡 의사청 안에서 벌어지는 갑론을박은 벌써 보름째였다. 눈만 뜨면 의사청에 모여 이러고 있는 것이다.

본시 하나였던 선무곡이 남곡과 북곡으로 갈라진 후 남곡은 무림천자성의 지원을 받았고, 북곡은 화존궁과 일월마교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모르는 무림인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가운데 남곡과 북곡 간에 대규모 접전이 벌어져 엄청난 인명이 살상되는 불행이 벌어졌었다. 동족상잔을 한 것이다.

이후 남곡과 북곡은 무림정파와 마도를 대신하여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었다. 무림천자성은 한시바삐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남곡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판단하였다.

적지 않은 은자가 소모되지만 그렇게 함으로서 자신들이 강호의 정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판단을 내린 이후 선무곡으로 불리는 남곡은 욱일승천의 기세로 성장을 거듭하였다. 무림천자성에서 적지 않은 은자를 지원한 결과였다.

덕분에 다 망가졌던 인삼밭이 원상 복구 된 것은 물론 삶의 질마저 좋아졌다. 마음이 편해진 선무곡 사람들은 어찌하면 질 좋은 홍삼을 생산할 수 있을까에 몰두하는 한편 여러 방면에 시선을 돌리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왜문의 통치를 받은 치욕과 북곡과의 대규모 혈전은 선무곡 사람들로 하여금 무공의 절실함을 느끼게 하였다. 그러나 무공이란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는 것도 아니며, 마음먹는다 하여 쉽게 익혀지는 것도 아니다.

설사 쉽게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익히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뭔가 묘책이 없을까를 고심하던 중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무림천자성에만 있다는 천뢰탄(天雷彈)과 같은 파괴력을 지닌 기병(奇兵)을 생산해보아야겠다는 것이다.

무림천자성에서 보유한 천뢰탄의 파괴력은 대단하였다.

그 위력이 처음으로 강호에 알려진 것은 야욕을 부리던 왜문을 박살낼 때였다. 이때 사용된 것은 단 두 알뿐이었다.

그러나 그 파괴력이 너무도 엄청났기에 왜문은 즉각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도 놀라운 파괴력에 놀란 강호에는 일대 열풍이 불었다. 그것은 무림천자성의 천뢰탄과 같은 파괴력을 지닌 병기를 개발하려 혈안이 된 것이었다.

그것이 없다면 무림천자성에 복속될 것이기 때문에 특히 마도문파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그 결과 화존궁과 일월마교 등 굵직굵직한 문파들은 천뢰탄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날 유대문이 팔래문을 그토록 핍박할 수 있는 이유는 무적검 때문이기도 하지만 은밀히 감춰둔 천뢰탄 때문이기도 하다.

팔래문과 인접한 다른 마도문파에서 마음놓고 지원하지 못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자칫 남의 집 싸움에 내 집이 불타는 꼴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팔래문 역시 그것이 없기에 번번이 당하면서도 대규모 반격을 못하는 것이다. 자칫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눈치 빠르고 약삭빠른 것으로 따지면 강호제일이라는 왜문에게 있어 천뢰탄은 한 마디로 화중지병(畵中之餠: 그림의 떡)이어야 한다. 무림천자성에게 항복할 때 다시는 무장(武裝)하지 않고 다른 문파를 먼저 공격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했기 때문이다.

왜문이 취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공격에 목숨을 잃지 않을 정도인 최소한의 무장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왜문은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림천자성은 왜문에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첫째는 같은 정파에 속하는 문파이기 때문이다. 물론 겉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둘째는 알랑방귀를 뀌며 영원한 종을 자처하는데 굳이 제재를 가하여 분위기를 냉각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셋째는 밝힐 수 없는 모종의 일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선무곡 사람들은 은밀히 천뢰탄을 개발하는 일에 착수하였다.

이일을 진두지휘한 사람은 무궁공자(無窮公子) 이위소(李偉召)였다. 어려서부터 선무곡 사람들을 경탄케 하여 귀가 따갑도록 신동(神童) 소리를 들은 그는 무천서원(武天書院) 출신이었다.

무천서원은 무림천자성에서 설립한 것으로 천하 각지에서 몰려든 영재들이 학문을 닦는 곳이다.

영재들 가운데에는 형편이 어려워 학문을 닦고 싶어도 닦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무림천자성에서는 이러한 영재들로 하여금 마음껏 학문을 닦게 하기 위하여 무천서원을 설립한 것이다.

이곳에 입원하려면 황궁에서 치르는 과시와 같은 시험을 통과하여야 하였다. 그런데 그 시험이 어찌나 어려운지 이입삼락(二入三落)이라는 말도 있다.

하루에 두 시진을 자고 나머지 시간 동안 학문에 열중하면 붙고, 아무리 열심히 학업에 열중하더라도 하루에 세 시진 이상을 자면 뛰어난 두뇌를 지녔다 하더라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황궁에서 치러지는 어전시(御前試)에서 장원급제한 자라 할지라도 무천서원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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