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관계로 표지석은 테니스장 옆으로 옮겨져 있다. 한편 이화학당은 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학교라 감회가 깊다.권기봉
맛도 맛이고 처음 보는 것이었을 테니 호기심이 생겼을 것이라는 걸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커피라는 것이 그저 '기호음료로서의 커피'로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던 것 같기에 하는 말이다. 정관헌에야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을 테니 논외로 치더라도 손탁호텔에서 마시는 커피는 그야말로 커피 그 이상의 무엇을 담고 있지 않았을까?
말하자면 무얼 이야기하려고 해도 손탁호텔 등 시쳇말로 '때깔 나는' 곳에서 점잖게 앉아 커피라도 한잔 하면서 해야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은연중에 당시 권세가와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나 일본 등지로 유학한 경험이 있는 이들은 그곳에서 느꼈던 분위기를 조선 땅에서도 찾고자 했을 것이란 것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비단 손탁호텔과 커피뿐만 아니라 훨씬 이후이긴 하나 1920년대 초반, 지금과 같은 콘크리트 구조물로 완공된 서울역 2층의 양식당에도 서재필이나 김지미, 최무룡 등 당대의 유명 인사들이 자주 출입했다는 것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닐 게다.
뿐만 아니라 이런 경향은 굳이 커피와 양식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어서 양복은 물론 신식 군대나 신식 학교 등 '따라가야 할' 대상들은 넘쳐났고, 고종 역시 경운궁 안에 그리스풍의 석조전을 비롯한 서양 건물들을 지은 바 있다.
물론 이런 양상은 비단 권세가나 지식인층의 전유물만은 아니어서 일반인들 역시 이른바 '신식(新式)'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모든 서양 문물을 가리지 않고 동경하는 일이 다반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 | 서울 최초의 호텔식 다방 찾아가는 길 | | |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 | | | 지하철을 이용한다면 시청역에서부터 찾아가는 방법이 가장 쉽다. 시청역에서 내려 경운궁(덕수궁)쪽 출구로 나간 다음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정동교회까지 걷자. 네거리가 나오는데 직진하자. 얼마 안 가 오른쪽에 정동극장이 보이고 이어 왼쪽으로 이화여고 담장이 보인다. 특히 공사를 알리는 장막이 쳐져 있기에 찾기가 쉽다.
한편 광화문역과 서대문역 사이의 강북삼성병원과 정동 스타식스 극장 쪽에서 시작한다면 정동길로 접어들자마자 얼마 안 가 오른쪽으로 이화여고를 볼 수 있다.
물론 초행길이라면 주변 사람들이나 상점에 들러 물어보는 것이 가장 나을 듯 하다. / 권기봉 | | | | | |
이는 '동북아에 우뚝 선 중심 국가'를 표방한다는 요즈음에도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특히 젊은이들의 경우 한식집이나 전통찻집도 정갈하고 품격 있는 곳이 많지만 맞선을 보든 사업 거래를 하든 으레 호텔식당이나 호텔커피숍, 적어도 그럴싸한 서양식 패밀리 레스토랑 정도에는 가줘야 체면이 산단다.
거리를 나가보면 자동차 이름은 온통 영어뿐이고 학원이든 심지어 적지 않은 전통찻집들도 어떤 전통을 파는지는 모르지만 영어 간판을 달고 있다. 또 유럽에서 비행기 타고 날아온 명품은 이미 전문 중고매장마저 생겨나 성업 중이라 하니, 명품이 정말 좋긴 좋은 것인가? 아니면 그저 속물근성과 사대의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가?
물론 당신은 길손의 편협함에 코웃음을 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한번 잘 보시라. '빅맥'이나 '코카콜라'가 단순히 햄버거와 탄산음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듯 손탁이 가져온 커피 역시 '커피' 그 자체는 아니었다.
이나영이 탐스런 구름을 땄던 곳도 우리나라는 아니요, 이미연과 이정재가 끝났던 사랑을 다시 시작하려는 곳도 유럽 한복판 체코 프라하의 카를다리 위다. 그러니 "당신은 국수주의자에 지나지 않아!"하고 욕하기 전에 한번쯤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우리네 무의식 속에 '신식'이라는 애칭을 얻은 무조건적인 서구 추종 의식이 있는 것은 아닌지.
그나저나… 이미연과 이정재의 사랑은 이루어질까?
덧붙이는 글 | 권기봉 기자의 홈페이지는 www.freechal.com/finlandia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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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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