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설의 화재 사고를 막기 위해

등록 2003.03.31 10:00수정 2003.03.3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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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충남 천안에 있는 한 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에서 불이 나 잠자던 축구부원 8명이 숨지고 17명이 중경상을 입는 등 2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999년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참사, 2001년 경기도 광주의 대입전문기숙학원 화재사고에 이어 또 다시 교육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잊혀질 만하면 다시 이런 사고가 되풀이되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반복되는 사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정부의 미온적이고 형식적인 대응은 더 놀랍다.

되풀이되는 교육시설 화재 사고

2003년 3월 27일 천안초등학교 합숙소 전경(사진중앙부분이 유일한 출입구)
2003년 3월 27일 천안초등학교 합숙소 전경(사진중앙부분이 유일한 출입구)최원호
1999년 6월 30일 경기도 화성에 있는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숙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23명의 어린 생명이 불에 타 숨지는 사고가 벌어지자 정부에서는 이를 계기로 전국에 산재해 있는 수련원 시설을 점검한다고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2년이 지난 2001년 5월 16일, 경기도 광주에 있는 예지학원이라는 대입전문기숙학원에 불이나 8명이 사망하고 2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도 이에 대한 후속조치로 불법 기숙학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다.

이런 조치들이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이었는지는 지난 26일의 화재 사고를 통해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런 저런 사고로 고귀한 어린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정부에서는 이렇다 할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고' 있으니 이를 어찌해야 좋을는지 개탄스럽기만 하다.

근본적인 대응책 마련해야

각종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그 즉시로 발표하는 정부의 대책들이란 일회성 깜짝 이벤트에 불과할 뿐이다. 재발방지를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 고작 전국 단위의 안전 점검을 실시하는 것이며, 그마저도 최단 시일에 인력을 총동원하여 수박 겉핥기식의 진단을 내릴 뿐이다. 실질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고 이를 실행할 만한 예산이 없는 마당에 두툼한 보고서를 만들어 본들 그것은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늘 사건이 발생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이런저런 대형 사고들이 되풀이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요소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종 합숙시설에 대한 전국 단위의 안전점검을 실시하기에 앞서 보다 실제적인 근본대책을 실행해야 할 것이다.

이런 사고들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이번 기회에 과감한 교육변신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년 후, 아니 언제 또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합숙 훈련이 꼭 필요한가

지난 26일의 화재 사고를 비롯하여 각종 교육시설에서 발생한 사고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합숙이나 기숙의 형태로 교육이 이루어졌다는 데 있다. 이 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과연 기숙 또는 합숙의 형태로 교육이 이루어져야만 하는가 하고 묻게 된다.

이번 사고만 놓고 본다면, 운동선수들이라고 반드시 합숙해야 한다는 법이 있을까? 그리고 설령 합숙할 때 교육적인 효과가 높다 한들 이런 사고가 계속 생긴다면 합숙 형태의 교육훈련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당연히 폐지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더구나 수혜자 부담원칙이라는 미명하에 교통비에서부터 숙식비 일체의 온갖 잡부금까지, 소요되는 모든 비용을 학부모들이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합숙훈련으로 인한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특히 일부 초등학생의 경우 교외 행사 중에 일어난 사고에 대하여 학교 측에서는 일체의 책임이 없다는 학부모의 동의서 또는 각서까지 제출하고서야 합숙훈련에 참가할 수 있다.

학교의 무책임도 무책임이려니와 대체로 합숙소로 사용되는 건물들이 임시건물이거나 조립식 형태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합숙훈련을 해야 하는가 심히 의심스럽다.

용접된 쇠창살부터 제거해야

교육시설에서 발생한 사고의 또 다른 공통점 하나는 시설물에 비상탈출구가 있기는 하지만 쇠창살로 용접이 되어 있어 전혀 쓸모가 없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유사한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용접된 쇠창살을 철거해야 한다.

문이라는 문마다 이중삼중으로 용접하는 것이 아이들의 정신 무장에 도움이 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감옥살이를 시켜가면서까지 아이들을 교육시켜야 할 이유는 없다. 진정한 교육은 열린 공간에서의 교육을 의미한다.

폐쇄된 공간에서의 탈출구 없는 교육, 반강제적인 교육은 비참한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어린 망자들의 한맺힌 절규를 가슴깊이 새기면서 다시는 이런 사고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신문 2003. 3. 31일자 9면 독자칼럼>에 게재한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한겨레신문 2003. 3. 31일자 9면 독자칼럼>에 게재한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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