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54

등록 2003.04.02 17:42수정 2003.04.0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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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 앞으로 불려간 왕의는 사태의 전말을 듣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진속이 병사들을 이끌고 갔다면 지금으로서는 이를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럼 어쩌면 좋겠소? 조정에 이 일이 알려진다면 큰일이오."

"오히려 좋은 기회입니다. 이렇게 해 보십시오. 귀를 좀......"

왕의는 채진의 귀에다가 무엇인가를 속삭였고 채진의 표정은 환하게 밝아졌다.

임둔군으로 진군을 개시한 주몽은 임둔군에서 농성을 준비중이라는 척후병의 보고를 듣게 되었다.

"아쉬운 일입니다. 대대로의 말씀대로 빨리 군사를 재촉했더라면 임둔군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리가 아쉬운 소리를 했으나 막상 재사는 그 점에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분명 성안의 병력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옵니다만 우리 병사들이나 장수들이 아직 성을 공략해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재사의 염려는 맞아 떨어졌다. 우선 주몽부터도 성을 바라보며 장수들과 이리저리 궁리를 해보느라 신속하게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쓸만한 공성장비, 심지어는 성문을 깨어 부실 충차마저도 준비되어 있지 않아 허겁지겁 급조된 장비를 만들어 투입했다가 성문 위의 단단한 방비 때문에 제대로 활용도 못하고 있는 상황까지 맞이했다. 결국 결정된 것은 무골과 협부가 선봉이 되어 성벽을 기어올라가고 이를 받치기 위해 성문을 공격하는 척 하여 시선을 돌리고 궁수들을 배치해 사격을 해준다는 단순한 방법이었다.

2열로 배치되어 사정거리까지 다가선 궁수들은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성 위에서도 응사가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성 위에서 내려다보고 쏘는 화살이 훨씬 더 강력하고 명중률도 높았지만 수비측의 병사 수가 적은 터라 그 기세는 거의 백중세를 이루고 있었다. 주몽은 말 위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상황을 지켜보다가 병사들을 독려하는 장수를 향해 화살한대를 날렸다. 정확히 화살은 목에 꽂혀 장수는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성 아래로 떨어졌다.

"지금이다! 가자!"

장수가 죽어 어지러운 성벽 쪽으로 협부와 무골이 사다리를 든 병사들과 함께 돌진해 들어갔다. 사다리가 걸쳐지자 무골이 첫 발을 내딛었으나 뒤에서 협부가 허리춤을 잡아 끌어내리고선 공을 다투어 먼저 올라가 버렸다. 무골은 뒤에서 욕을 내 뱉었지만 협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성위에서는 협부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선 두 명이 창하나를 잡고 위협하고 있었다.

"야 이놈들아! 이 딴 걸로 뭘 하겠다는 거냐!"

협부가 창을 잡아 밑으로 내동댕이쳐 버리자 병사들은 겁을 집어먹고 뒤로 물러섰다. 한 병사가 돌을 들어 떨어트렸으나 협부는 그마저도 가볍게 피해 버렸다.

"비켜라 비켜!"

협부가 거의 다 올라왔을 때쯤 화살에 맞아 죽은 장수를 대신하여 온 장수가 끝이 갈라진 창을 들고선 협부를 찌르는 대신 병사들과 함께 사다리를 힘껏 밀었다. 협부는 뒤에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병사들과 함께 그대로 땅바닥에 매쳐졌다.

"저런 저런!"

협부는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 물러났고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은 더 이상 성벽에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주몽은 병사들에게 물러날 것을 명했다. 결국 고구려 군은 수 십명의 사상자만 낸 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적의 수가 적다고 하나 성이 단단하고 장수들도 용맹하니 이렇게 공격해갈 것이 아니라 공성도구를 이용해 한번에 공격해야 합니다. 제가 운제 제조법을 알고 있으니 승낙해 주신다면 한번 제작해 보겠습니다."

그 주장에 주몽은 수긍하며 성밖에서 포위망을 구축하는 한편, 오이의 설계와 지휘에 따라 운제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운제란 일종의 사다리 차로 병사들이 손쉽게 성벽에 뛰어 오를 수 있게 하는 공성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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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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