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56

등록 2003.04.04 17:45수정 2003.04.04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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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녀산성으로 진군을 계속하던 진속은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방금 후위가 고구려군에 의해 기습을 당한 터라 그러했다. 다행히도 말갈기병의 모습을 본 그들이 재빨리 도망가 버리는 덕분에 피해는 거의 없었으나 병사들의 사기는 뚝 떨어졌고 여기저기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찮은 놈들이 좀 찝쩍대기로 서니 뭐가 대수라고 저 난리들이냐? 내 부하들이 말갈기병의 반만 닮아도 좋겠다."


진속은 장막에게 병사들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은 뒤 오녀산성을 눈앞에 두고 행군이 느려진 것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분명 저들은 임둔군에 가 있는 주몽에게 구원병을 청하러 갔을 것이 분명했고 그 때문에 시간을 벌려 하고 있는 속셈임을 진속은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말갈병을 활용해서 저들을 무찌르면 되지 않습니까?"

"어떻게 말인가?"

"저들이 하는 양을 보니 말갈족들도 말에서 내려 쉬고있을 밤을 노릴 것 같습니다. 가짜 숙영지를 만드신 후 적당한 곳에 말갈병을 매복시켜 두십시오. 반드시 걸려들 것입니다."

진속은 될 대로 되 보라는 심정으로 장막의 말을 따랐다. 밤이 깊어지자 과연 장막의 말대로 소조가 이끄는 고구려병사들이 야습을 시도하고 있었다. 묵거가 본대로 소조는 시킨 대로만 할 뿐 창의적인 전술을 구사하는 장수는 아니었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정찰도 제대로 하지 않고 무작정 야습만을 택한 것이었다. 기세 좋게 달려들던 고구려군은 숙영지가 모두 비어있음을 알고선 당황해하기 시작했다.


"이때다. 쳐라!"

사방에서 말갈족의 기병과 병사들이 쏟아져 들어오자 고구려군은 제대로 싸울 생각도 하지 못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말갈병은 괴성을 지르며 그런 고구려군의 뒷덜미를 후려쳤다. 허겁지겁 도망가던 소조는 남은 백 여명의 병사들을 데리고 오녀산성으로 줄달음 치기 시작했다. 진속은 이 기세를 몰아 단숨에 오녀산성을 점령해 버리겠다는 듯 다음날 행군속도를 높였다.


만신창이가 된 채 쫓겨온 소조를 보며 월군녀는 크게 상심했다. 묵거는 이를 보며 함부로 월군녀를 자극하는 말은 삼가기로 했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쳐들어오는 적을 방어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었다. 우선 묵거는 성안의 싸울 수 있는 장정은 모조리 모아 성벽 위에 세웠다.

"적이 바보가 아닌 이상은 이곳 오녀산성을 함부로 치진 못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 있을 뿐입니다. 행여나 적의 도발에 넘어가거나 별것 아닌 행동에 겁을 집어먹게 된다면 낭패니 유념해야 합니다."

월군녀도 덮어놓고 묵거의 말에 반대만 할 수 없는 입장이라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오녀산성 아래 이르러 주위를 줄어본 진속은 탄식했다.

"이래서야 어디 기병을 쓸 수가 있나 아니면 공성도구를 올릴 수가 있나!"

장막이 별거 아니라는 듯 진속을 격려했다.

"성이 비록 험하고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나 적은 이미 큰 피해를 입고 쫓겨간 상태고 안에 있는 병사 수는 많아야 이백 여명 정도일 것입니다. 병사들에게 밧줄과 갈고리를 매게 한 후 성벽으로 기어올라가기만 해도 저들은 지리멸렬 할 것이 옵니다."

장막의 제안에 따라 병사들은 밧줄과 갈고리를 짊어지고 일렬로 산을 타고 올라갔다. 힘겹게 이른 오녀산성의 앞은 겨우 수십 명이 정도나 운집할 만한 공간 밖에 없었다. 한나라 병사들은 갈고리를 던져 성벽에 고정시킨 후 올라가기 시작했다.

"쏴라!"

성 위에서 화살이 쏟아지고 밧줄을 타고 올라갔던 병사들은 돌에 맞고 창에 찔려 굴러 떨어졌다. 좁은 공간에서 우왕좌왕하던 병사들은 서로 뒤엉켜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특히 묵거의 쉴 세 없는 독려는 고구려군에게 큰 힘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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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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