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58

등록 2003.04.07 17:34수정 2003.04.07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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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속은 급한 마음에 가슴이 터져 나갈 지경이었다. 단숨에 오녀산성을 점령할 듯이 호언장담하던 장막이 돌에 맞아 깨진 머리에 나는 출혈을 막으려 천을 둘둘 감고선 도로 산을 내려와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저 산성은 만 명이 쳐도 소용없을 듯 합니다. 제대로 싸우려면 십만 명을 동원해 산을 깎아 길을 만드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럼 어쩌란 말이냐!"

장막의 한심스런 소리에 진속은 버럭 화를 내며 길길이 날뛰었다. 주변 마을을 공략해 나간다고 하더라도 삼천 명이란 병사는 너무 적었고 시간을 끌면 끌수록 주몽이 이끄는 고구려 군의 본대와 맞닥뜨릴 가능성이 컸다. 결론은 어떻게 하든지 오녀산성을 함락시키고 안의 인물들을 볼모로 하여 고구려왕의 항복을 받아내는 수밖에는 없었다.

"결사대를 조직한다. 날래고 힘깨나 쓰는 병사들로 20명을 뽑아라."

장막은 상처를 제대로 치료할 겨를도 없이 진군의 명에 따라 병사들을 차출했다.

"너희들은 몰래 산에 올라가 있다가 밤이 되면 성벽을 타고 올라가 불을 놓고 내려오라."
"그렇다고 하더라도 뒤를 받힐 병사들을 올려보낼 방법이 없습니다."


장막의 지적에 진속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는가? 매번 이런 식으로 저들을 괴롭혀 사기를 저하시키면 저들의 원군이 도착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결판이 날 것이다."


밤을 틈타 산으로 올라간 결사대는 성 아래 이르러 허탈해 할 수밖에 없었다. 성 위는 대낮처럼 불빛으로 가득 차 있었고 묵거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그들을 굽어보며 유창한 한어(漢語)로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너희들 대장에게 다신 이런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라고 전해라."

진속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돌아온 결사대들을 보며 착잡해 했다.

"이건 이미 나 있는 산길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들킨 것이다. 뒤편의 절벽으로 올라가 보자."

하지만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보며 아무도 선뜻 올라가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진속은 성 위에 처음으로 올라가는 이에게는 막대한 상금을 주겠다고 말하고선 스스로도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솔선수범을 보이기로 했다. 그만큼 진속은 다급했다.

진속과 수백의 병사들은 갖은 고생을 다하며 절벽을 타고 올라갔다. 진속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했으나 절벽의 중간쯤에서 병사들이 멈추어 버렸다.

"무슨 일이냐? 왜 나가지 않느냐?"
"현령님, 이걸 보시옵소서."

진속이 위태위태하게 좁은 땅에 발을 디디고 올라선 곳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이곳으로 온다고 해도 소용없다. 성 아래로 이르기도 전에 모조리 죽으리라.'

진속은 마구 화를 내며 병사들을 다그쳤다.

"이런 장난질에 겁을 먹었단 말이냐! 어서 올라가라!"

멈칫거리던 병사들은 진속이 칼을 빼어들자 마지못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거의 위가 보일 때쯤 병사들의 머리위로 돌이 떨어졌다. 묵거가 오래 전부터 오녀산성의 절벽 쪽에 발판을 마련해놓고 돌을 쌓은 채 병사 서넛을 둘 만한 곳을 만들어 놓은 터였다. 한나라 병사들은 새파랗게 질린 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 했다.

"뭣들 하느냐! 어서 올라가라 어서!"

그렇지만 악을 쓰며 병사들을 다그치는 진속마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얼마 뒤 연락을 받고 밧줄을 타고 내려온 묵거가 발판 위에 서서 껄껄 웃으며 진속을 내려다보며 조롱했다.

"내가 적어 놓은 글귀를 보지 못했단 말이냐? 미련한 것 들이로고!"

진속은 잔뜩 화가 나 욕을 퍼부었지만 되돌아오는 건 돌덩이 뿐이었다. 급기야 선두에 있다가 돌에 맞은 병사 두 명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버리자 병사들은 진속의 말을 무시한 채 거꾸로 절벽을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진속도 가까스로 매달러 있는 판국이라 병사들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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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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