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01

분타주 개망신 당하다. (1)

등록 2003.04.10 13:34수정 2003.04.1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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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분타주 개망신 당하다.


"아씨!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저씨, 말리지 마세요.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아씨라고도 하지 마세요. 저는 이제 아저씨의 상전도 아니잖아요."


"어찌되었건 이번 결정은 옳지 않습니다. 아씨!"
"방법이 없어요. 몇 날 며칠을 생각해 보았어요. 하지만 이러지 않고는 알아낼 방법이 없어요. 흐흑! 불쌍한 아버님은 지옥 같은 곳에서 고생하실 텐데… 흐흐흑!"

"아씨! 속하도 그 방법이 가장 확실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됩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씨의 능력으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들어가면 바로 잡힐 겁니다."
"흐흑! 그럼 어떻게 해요? 아버님은 고생하고 계실 텐데…"

"아씨! 천천히 생각해 본 뒤에 움직여도 늦지 않습니다."
"흐흑! 흐흐흑!"

경장을 걸친 채 나서던 추수옥녀 여옥혜는 나직이 흐느꼈다.

남해 보타암에서 추방된 직후 이곳 산해관으로 직행하였다. 도착하기 전까지는 부친인 사면호협이 공금횡령이라는 죄를 지어 무림지옥갱에 하옥되었다는 것이 잘못된 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절대 그런 일을 벌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하여 도착 즉시 무천장으로 향하려 하였다. 이때 이를 만류한 사람은 왕구명이었다.

강호는 귀계와 음모가 횡행하는 곳이다. 다시 말해 보보(步步)마다 먹느냐 먹히느냐가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 정도로 살기가 어린 곳이다. 따라서 혹시 알지 못하는 음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판단하고 일단 청룡무관에 은신한 채 당분간 지켜보자고 강권(强勸)한 것이다.


그의 이런 결정 덕분에 추수옥녀는 신임 산해관 무천장주인 혈면귀수 마욱진이 펼쳐놓은 마수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무천장의 정보력은 가히 거미줄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사면호협이 지옥갱에 하옥된 이후 추수옥녀가 보타암에서 쫓겨났다는 것과 산해관으로 향한다는 정보가 즉각 보내졌다.

현재 산해관은 가히 혈면귀수의 세상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의 패권을 거머쥔 절대자로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궁에서 파견한 태수나 현령들도 그의 허가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 정도였다. 가히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릴 막강한 권력이었다.

그는 누구든 추수옥녀 여옥혜가 산해관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확인하는 즉시 무천장에 신고하라는 명을 내렸다.

사람들은 사면호협이 공금횡령을 하였으나 그것을 어디에 은닉하였는지 끝내 밝히지 않아 지옥갱에 하옥된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유일한 혈육인 그녀를 족치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런 명이 내려진 것으로 알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누구든 그녀의 출현을 신고하는 자에게는 은자 오백 냥을 상금을 주겠다는 방(榜)까지 내걸었다.

일반 양민들에게 있어 그것은 평생 만져보지 못할 거금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사면호협이 자신들을 어떻게 보살펴 주었는지도 잊고 그녀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보는 즉시 신고하여 횡재하려는 것이다.

방에는 용모파기가 그려져 있었다. 따라서 누구의 눈이든 뜨이기만 하면 즉각 알려질 그런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모르게 청룡무관으로 숨어 들 수 있었던 것은 왕구명이 지니고 있던 역용약 덕분이었다. 그것은 남해 보타암으로 출발할 때 사면호협이 준 것이었다.

워낙 먼 길을 왕복하여야 하기 때문에 가다보면 어떤 일이 발생될지 모른다면서 귀찮은 일을 피할 때 쓰라면서 준 것이다.

하여 산해관 권역에 접근하기 직전 추수옥녀를 낙방서생으로 탈바꿈 시켰다. 덕분에 아무 탈 없이 청룡무관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왕구명 역시 평범한 청년의 모습으로 역용하였기에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이후 산해관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첩보를 수집하였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산해관에는 워낙 외지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처음 보는 얼굴이 있어도 이에 관심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여 마음놓고 활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천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이상 정확한 사실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누군가의 음모가 아니면 사면호협이 누명을 썼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결국 정확한 사실을 알아내기 위하여 고심하던 추수옥녀는 스스로도 무모하다 생각하였지만 일단은 무천장으로 잠입해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 방법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때 이것을 눈치 챈 왕구명이 제지하고 나선 것이다.

무천장에는 적어도 오십여 명에 달하는 정의수호대원들이 있다. 그들 하나 하나는 무림천자성의 관문을 돌파한 고수들이다.

그들이 있는 한 잠입하려는 것은 무모한 일일 것이다. 그들 가운데 하나 조차 제대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포되면 어떤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른다. 혈면귀수가 상당히 색을 밝힌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주에 취임한 이후 무천장으로 불려간 기녀들의 수효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다.

"흐흑! 그럼, 이제 어떻게 해요? 흐흐흑!"

"아씨! 일단 은인자중하면서 기회를 엿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무슨 일이든 서두르면 제대로 안 되는 법입니다. 그러니 시간을 갖고 상황을 면밀히 파악해 보는 것이 필요할 듯합니다. 어차피 모친의 행방도 찾아봐야 하니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속하가 나가서 알아볼 터이니 이곳에서 무공 연마나 하십시오."
"흐흐흑! 흐흐흐흑!"

여옥혜는 왕구명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죄인이 되어 무림지옥갱으로 끌려갔던 부친과, 행방조차 알 수 없는 모친 때문에 나직이 흐느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왕구명은 애처롭다는 느낌에 고개를 저으면서 품에 손을 넣었다.

"아씨! 이것은 본가에 전해지는 가전검법입니다. 속하가 아둔하여 후반부를 깨닫지 못해 진전이 더딥니다. 아씨께서는 문일지십의 총명을 지니신 분이시니 한번만 보셔도 아실 것입니다. 그러니 한번 살펴보시고 속하에게 하교(下敎)해 주셨으면 합니다."
"예? 아, 예…!"

흐느끼던 추수옥녀는 얼떨결에 왕구명이 건네는 청룡검급을 받아 들었다. 잠시 후 홀로 남겨진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비급을 펼쳐들었다. 그리고는 이내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정의수호대원이 되기 위하여 보타신니로부터 전수 받은 검법은 장중함은 있으나 신랄함은 부족한 것이었다.

정파무공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따라서 무거움(重)은 있으나 가벼움(輕)이 부족하였고, 정(靜)은 있으나 동(動)은 부족하였다. 그런데 청룡검급은 달랐다.

정과 동이 조화되어 있었고, 무거움과 가벼움의 조화가 있었다. 너무도 현묘한 무리(武理)가 담겨져 있기에 대체 누가 창안한 것인가 싶었으나 그런 것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 * *

선무곡에 도착한 이후 이회옥은 심한 갈등에 잠겨 있었다.

어린 시절 이정기의 무릎에 앉아 재롱을 떨 때부터 무림천자성은 천하에서 가장 정의롭고, 자비로우며, 불쌍한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하는 문파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따라서 무림천자성에서 무엇을 하건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라고 하였다. 현실적으론 다소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옳은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선(善)이 있으면 악(惡)이 있고, 선(仙)이 있으면 마(魔)가 있는 법. 부친인 이정기는 이렇게 좋은 무림천자성에 공공연하게 대항하는 나쁜 문파들이 있다면서 쌍심지를 돋구곤 하였다.

마도 무림의 쌍두인 일월마교와 화존궁을 비롯하여 주석교와 팔래문, 구룡마보와 월빙보, 북해신마단 등이 그들이라 하였다.

물론 모두 지상에서 말살되어 마땅한 문파들이라고 하였다. 그렇기에 이회옥은 그들 문파 사람들 모두가 삼두육비(三頭六臂)이거나, 이마에 뿔이 돋은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것도 아니라면 겉으로는 멀쩡해도 속에는 지옥의 아수라가 하나씩 들어 있는 잔인무도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런 생각은 이회옥의 어린 시절부터 무림천자성을 떠나기 직전까지 일관된 생각이었다. 그것은 너무도 고착화되어 무엇으로도 깨지지 않을 그런 일종의 신념 같은 것으로 변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그렇기에 너무도 심한 갈등에 빠진 것이다.

총단을 떠나 선무곡까지 오는 동안 동행하였던 정의수호대원들에게서 두 가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보여주는 모습이다. 이때는 세상에서 가장 정의로운 사람들이었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한 목숨 정도는 초개와 같이 버려도 괜찮다면서 사람들을 감동의 도가니 속에서 열광하게 만들었다.

또 하나의 모습은 자신들만이 있을 때의 모습이었다. 물론 이회옥을 같은 식구로 생각하였기에 볼 수 있었던 모습이었다.

이때에는 노골적으로 이 세상에서 오로지 자신들만이 제일 잘났으며, 무엇이든 무림천자성의 뜻대로 되어야 한다 하였다.

세상의 중심은 자신들이고, 따라서 자신들의 의사대로 세상이 움직여야 한다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항하는 문파는 아예 쓸어서 없애 버리거나 장문인을 바꿔서라도 말을 고분고분하게 듣는 문파로 만들어야 한다하였다.

그것을 극명하게 증명해 주는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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